허굉(1471-1529)의 본관은 양천이고, 자는 굉지, 호는 징와이다. 진주의 별장에서 출생했는데, 어떤 중이 지나다가 들러 말하였다.
"내일 이 집에 반드시 귀한 아들이 태어나고 장차 명신이 될 것입니다"
이튿날 과연 허굉이 출생하였다. 백부인 충정공 허종이 매우 중히 여기며 말하였다.
"나의 뒤를 이어 훌륭히 될 자는 반드시 이 아이다"
성종 23년(149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10년(1504)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에 보임되고 중종반정(1506) 때에는 사인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이우, 윤장, 조계형이 승지로 있었는데 반정하던 날 정원에 입직하고 있다가 개구멍으로 도망쳐 나와서 공신에 기록되기를 요구하니, 사람들이 모두 더럽게 여겼다. 허굉이 곧 항론하여 훈권을 빼앗아 버리니 모두들 다시 논의를 통쾌하게 여겼다. 쥐를 잡아 불로 지져서 세자(인종)를 저주한 적서의 변(1527)에허굉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근일 옥사가 공평하게 판결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송질이 나서서 항변했다. "신이 위관(재판관)인데, 무슨 일이 공평하게 판결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임금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하였다. 송질이 허굉을 자기 집에 불러 꾸짖었다. "옥사를 의논하는 것은 수상의 일인데, 그대가 어찌 미관으로 감히 말하는가" "미관은 수상의 말을 할 수 없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