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성(1487-1521)의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가진, 호는 원정이다. 19세에 속세를 떠나 멀리 유람하며 좋은 산수를 두루 구경하였다. 가는 곳마다 소나무를 켜서 거문고를 만들어 타다가 떠날 때에는 이를 부숴 버렸다. 시풍은 속세를 떠난 높은 격조가 있었으며, 또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으니 참으로 절대기재라 할 수 있다.
김식이 조광조, 김정, 김구와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최수성이 갑자기 밖에서 들어와서 오랫동안 읍을 하더니 서둘러 말했다.
"노천(김식의 자)은 나에게 술 한잔 주게" 김식이 그에게 술을 주었더니 쭉 들이켜고 나서는, "내가 부서진 배를 탔다가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하였네. 가슴이 매우 두근거렸는데 지금 술을 마시고 나니 속이 확 풀리는 듯하군" 하고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괴이하게 여기자, 조광조가 말하였다. "부서진 배의 비유는 우리들을 가리킨 것이네. 다만 자네들이 몰랐던 것뿐이네"
남곤이 산수도 한 폭을 김정에게 보내어 화제를 요청하였다. 최수성이 마침 김정을 방문했다가 그것을 보고 그 산수도 위에 글을 썼다.
지는 해는 서산으로 내려오고 외로운 연기는 먼 나무에서 나오네 은사의 차림 복건 쓴 서너 사람 망천장의 주인은 누구이냐
남곤이 그 화제를 보고 원한을 품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최수성이 시국에 대해 분개하여 시를 지어 숙부 최세절에게 올렸다.
해 저문 창강 위에 날은 차고 물결은 절로 이네 외로운 배 일찌감치 대어야지 밤이 되면 풍랑 응당 높아지리
중종 16년(1521)에 승지 최세절이 동료에게 말했다.
"조카 수성이 나에게 벼슬에서 물러나라고 권하는데 떠나가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최세절이 그 시를 외어 전하였는데, 최수성을 꺼리는 자가 이 사실을 남곤에게 말하였다. 남곤이 안처겸 옥사의 추관이 되어 임금에게 최수성도 아울러 국문할 것을 청하였다. 국청에 나온 최수성은 떳떳하게 말했다.
"사림이 불화하여 조정에 화가 생길까 두려웠으므로 숙부에게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게 하였을 뿐입니다"
남곤이 마침내 극형에 처해졌다. 평소에 친하게 놀던 벗 이달형 등이 발로 최수성의 시체를 거두어 싸서 빈 골짜기에 임시로 장사지냈다. 영상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