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침(1493-1564)의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중옥, 호는 청송이다. 풍채와 자품이 화기롭고 순수하며 학문과 행실이 순진하고 모든 것을 두루 갖추었다. 대신이 세속을 떠나 고상하게 사는 그의 청덕을 천거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사대부들이 당세의 운둔한 현인인 일민(학문과 덕행이 있으면서도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파묻혀 사는 사람)을 논할 적에 성수침을 으뜸으로 삼았다. 벼슬은 적성현감에 이르렀다.
백악산 밑에 살 적에 황혼 무렵 혼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집의 한쪽 구석에 와 서 있었다. 그 물체는 몸에 검은 무명 이불을 둘렀는데 그 길이가 발꿈치에 이르고,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땅에 드리워서 바람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어지러운 머리카락 사이에 옥고리 같은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성수침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묵묵히 있으며 대답하지 않자, 성수침이 다시 말하였다. "앞으로 오너라" 마침내 그 물체가 창 앞에 가까이 왔는데,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네가 만일 도적이라면 우리 집에는 물건이 없고 네가 만일 귀신이라면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니 속히 가거라" 그가 말을 마치자, 그 물체가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