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꿈을 빙자하여 형의 재산을 빼앗은 심의
심의(1475-?)는 좌상 심정의 아우이다. 자는 의지이고 호는 대관재이며, 문장에 능하였다. 중종 2년(1507)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벼슬은 이조 좌랑에 그쳤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바보로 자처하며 자기 재능을 숨기고 삶으로써 화를 면하였다. 한번은 형 심정의 집에 이르러 쥐구멍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형에게 말하였다.
"형이 훗날 이 쥐구멍으로 나가려 하여도 잘 안 될 것이니, 오늘 시험삼아 나가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심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뒤에 심정이 복성군 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자, 심의가 와서 울며 말하였다.
"쥐구멍이 저기 있는데 형은 어디로 갔습니까"
심정이 비록 남을 시기하고 해치기는 했으나, 형제간의 우애는 천성으로 지극하였다. 심정이 한번은 남곤과 조그마한 정자에서 무슨 일을 상의하고 있는데, 심의가 창문을 밀어젖히며 말하였다.
"두 소인이로다"
남곤이 크게 노하여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심정은 태연히 말하였다.
"내 아우가 본디 천치이니, 공은 용서하시오"
심의는 형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성대하여 전지와 동산을 많이 지닌 것을 보고 마음으로 매우 좋지 않게 여겨 꾀를 내어 속임수로 뺏으려 하였다. 하루는 심의가 새벽에 일어나서 울며 말하였다.
"꿈에 부모님을 뵈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작은 아들이어서 아무 데에 있는 전지와 아무 종을 너에게 주려 하였는데 미처 조치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 일이 가슴에 맺혔구나' 하시므로 제가 돌아가신 아버님 때문에 슬피 웁니다" "부모님이 너를 생각함이 지극하셨는데, 내가 어찌 이 재산들을 아껴 지하의 부모님 영혼을 위로하지 않겠느냐"
심정이 크게 감동하여 즉석에서 문서를 만들어 심의에게 주었다. 심정이 뒤에 심의에게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 심의의 뜻을 시험하고자 하여 또한 새벽에 일어나서 거짓 슬퍼하는 체하면서 말하였다.
"꿈에 아버님께서 말씀하기를 '전지와 집, 노비를 너에게 모두 부쳐 주려 하였는데, 미처 조치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쳤다' 하시니, 내가 이 때문에 슬피 운다" "봄꿈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심의가 말하자 심정은 크게 웃을 따름이었다. 심의가 서경덕, 성세창과 벗이 되었는데, 성세창은 그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 심의가 그의 정원에서 세 필의 명주를 볕에 바래는 것을 보고 몰래 가져가자, 성세창의 여종이 소리를 쳤다.
"심 좌랑이 명주를 다 가져갔습니다"
성세창의 부인이 재빨리 다른 명주 세 필을 보내면서 말하였다.
"그것은 웃옷을 만들려 하던 것이니, 이것으로 바꿉시다" "이미 웃옷감을 얻고 또 속옷감마저 얻었으니, 부인이 내 마음을 압니다"
심의가 짐짓 사례하고, 대여섯 몫으로 갈라 길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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