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1471-1531)의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정지, 호는 소요당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8년(150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종반정 때에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어 화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대배하여 좌상에 이르렀다.
기묘사화(1519) 뒤에 소요정에 물러나 있을 적에 시를 지어 판에 새겨 정자 문미에 걸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젊어서 사직을 붙들었고 백수에 강호에 누웠도다
어느 날 밤 꿈에, 젊은 협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심정의 머리카락을 꺼두르고 죄목을 열거하며 꾸짖었다.
"네가 사화를 일으켜 착한 선비들을 거의 다 죽여서 종묘 사직이 쓰러질 뻔하였는데, 네가 어찌 감히 '사직을 붙들었다'느니 '강호에 누웠다'는 등의 말로 시를 지어 건단 말인가. 네가 만일 '부'자와 '와'자를 빨리 고치지 않으면 내가 네 목을 벨 것이다"
심정이 엎드려 사죄하면서 말하였다.
"'부'자는 '위태롭다'는 '위'자로, '와'자는 '엎드려 숨어 있다'는 '칩'자로 고치는 것이 어떻겠소?" 젊은 협객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글자로 고쳐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기 바라오" "'부'자는 '기울어져 망하다'는 '경'자로 고치고, '와'자는 '더럽히다'는 '오'자로 고치라" "명령대로 따르겠소" 심정은 협객이 말한 그대로 고쳐 놓았다.
심정의 5세손 노가 지은 '소요정감고시'의 한 연구에 옛 한은 바닷물도 씻기 어렵고 새 시름은 술로 풀려 한다 하였으니, 대개 선조(심정을 말함)의 허물을 생각하면서 한탄의 뜻을 담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