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은 그리스의 철학자로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이다. 엄숙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하여 그는 아파테이아의 최고의 선을 살고 간 한 사람의 현자였다. 그는 지중해 해안의 키프로스 섬에서 자랐다. 상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아테네로 간 것은 17세의 때의 일이다. 물감을 싣고 가던 배가 난파를 당하자 제논은 아테네의 어느 서적상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철학책을 보게 된다.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기>를 읽고는 소크라테스에게 매혹된다. 제논은 책방 주인에게 소크라테스의 후계자를 소개받고 싶어했다. 마침 그때 크라테스가 그의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통 속에서 살던 디오케네스처럼 그도 거처할 집도 없이 오직 철학에만 몰두하는 견유학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제논이 크라테스의 교단에 들어갔을 때 그는 머슴에 불과했다. 밥짓고 빨래하고 크라테스가 하라는대로 일하는 것 뿐이었다. 한 해가 지나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제논이 죽을 담은 큰 항아리를 이고 돌아오는데 크라테스가 거기에 돌을 던졌다. 항아리는 깨지고 죽이 흘러내렸다. 제논은 크라테스의 욕이 무서워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페니키아의 얼빠진 녀석아! 뭐가 무서워 도망을 치는 거냐?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던 제논은 발길을 멈추고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 무었 때문에? 무엇이 무서워서 그때 제논의 가슴에는 한 줄기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는 달아나던 발걸음을 멈추고 스승을 향해 큰절을 올린다. 스토아의 시조, 제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토아주의는 에피쿠로스처럼 삶의 의미를 쾌락과 향유에서 찾는게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일치에서 찾는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합일에 도달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합치되어 살게 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제논은 말한다. 즉 자기 자신과 합일하여 행동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그 본성을 실현하는 사람이 동시에 우주의 포괄적 법칙과도 합치되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탔다. 먹고사는 생활은 간단했으며 그의 남루한 외투는 혐오감을 줄 정도였다. 그래서 아무 욕심없는 사람을 철학자 제논 이라고들 한다. 우스꽝스러운 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높게 평가되었다. 마케도니아왕조차도 아테네에 체류할때마다 제논의 강의를 놓치지 않았다. 존경의 표시로 아테네인들은 그에게 황금관을 수여하고, 입상과 기념비를 건립했다. 그는 강의를 계속하는 한편 저술에 정열을 기울였다. 그의 사상은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의 세 부분으로 형성되는데 이 세 부분의 저서가 23가지나 된다. 그는 극진한 존경을 받으면서 교사생활로 생애를 마감한 92세의 죽음 또한 남다른 것이기에 소개한다.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제논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다쳤다. 그때 그는 땅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곧 갈 건데 왜 이렇게 야단이냐. 죽음의 시간을 알리는 신들의 예고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야만 하는 것처럼 지체없이 떠났다. 기원전 246년의 일이다. 그의 학통은 세네카, 절름발이 노예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