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Pascal, Blaise] - 1623.6.19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 1662.8.19 파리.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철학자, 종교사상가, 그리고 발명가이기도 하다. 39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면서 그것도 만년의 4년간은 병상에 누워지냈는데 그토록 여러 가지 일을 그는 해냈다. 10대에 벌써 그는 <음양론>과 <원뿔곡선론>을 써서 당시 최고의 과학자가 되었다. 컴퓨터 역사의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계산기를 발명한 것은 18세때의 일이다. 인간은 하나의 갈대이며, 자연에서 가장 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로 유명한 <팡세>의 저자로서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파스칼은 크리스트교가 얼마나 훌륭하고 참된 종교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팡세>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심이 두터운 아버지 밑에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회심을 결행한 것은 31세 때였다. 파스칼은 신의 계시와도 비슷한 종교적인 체험을 하게 되고 몹시 고양되어 그 날짜를 1654년 11월 23일 밤이라고 밝히고 감격한 내용을 적어 평생토록 옷속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회심한 뒤 수도원에 들어가 철저한 금욕생활과 수도생활을 하였다. 모든 시간을 성경을 읽는 데에 바치고 일체의 쾌락을 포기하며 음식까지도 생존의 기본으로 제한하였다. 누군가 맛있다 는 이야기를 꺼내면 화를 내면서 관능에 빠지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오직 금욕과 신앙을 높이는 것만이 그의 목표처럼 보였다. 파스칼은 그의 유언장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고, 죽음의 시기보다 불확실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인간의 위대함은 인간의 비참함을 자각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파스칼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을 자주 서술하며,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사(영생)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스칼은 계산기 발명에 너무 골몰해서 18세부터는 몸에 고통 없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심한 두통, 소화불량, 위의 통증, 다리 저림, 변비 등 그래서 의사는 아무 일에도 열중하지 말고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삼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파스칼은 죽음의 병석에 누워서도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상과 생각을 손수 종이에 쓰기도 하고 또 조카나 하인에게 그것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는 병의 선용 을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바쳤다. 당신께서는 당신을 섬기게 하려고 제게 건강을 주셨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세속적으로 썼습니다. 당신께서는 지금 저를 바로 잡으시기 위해서 병을 보내 주셨습니다. 부디 제가 성급하게 이 병을 사용해서 당신을 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소서. 파스칼에 있어서 죽음이란 영원한 삶의 입구 이므로 그에게는 무서워 할 것이 못되었고 오히려 병은 환영해야 할 것 이라고 그는 말했다. 견디기 어려운 통증, 그는 이 통증조차도 선용 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죽기 4년 전, 심한 치통 때문에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파스칼은 전부터 마음에 걸려 있던 수학문제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은 룰렛 이론 혹은 상크로이드 이론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원이 직선 위를 구를 때 그 원주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을 구하는 문제였다. 밤을 지새워가며 그가 이것을 풀었을 때 치통은 완전히 기시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인은 장결핵이라고도 하고 혹은 전신에 퍼진 암이었다고도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것을 참는 파스칼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마음 아파했다.
그때 파스칼은 제발 나를 동정하지 마시오. 병은 그리스도안에게 아무 문제도 안됩니다. 병은 도리어 사람에게 고통을 견디고 모든 안락과 오관의 즐거움을 끊게 하며 죽음을 기다리면서 야심도 욕심도 없이 인간에게 일생동안 따르던 모든 정욕을 끊을 수 있게 한답니다. 신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여러분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것만이 나의 소원입니다 라고 말했다. 심한 두통과 복통 끝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이것이 그의 최후의 말이었다. 1662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