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 道德經 : 第十九章 (노자 - 도덕경 : 제19장)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차삼자 이위문, 부족. 고영유소속. 견(현)소포박, 소사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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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열 아홉째 장
직역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려라, 백성들의 이익이 백배가 될 것이다. 어짐을 끊고 의로움을 버려라, 백성들이 다시 효와 자애로울 것이다. 기교를 끊고 이익을 버려라, 도적이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꾸밈일 뿐이며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감이 있게 하라. 순박함을 보고 통나무를 끌어 안으니,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해석
현대에서 지식을 버리고 살 수 있는가. 그러나 지식을 버리라고 한다. 그럼 어떻게 살란 말인가. 노자는 지식과 성스러움을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속됨과 무지 또한 그대로 가치가 있다고 한다.
노자 당대에는 이 둘은 평행선에 놓여지 있지 않았다. 성스러움만을 추구하고, 속됨은 발로 짓밟았다. 그래서 노자는 성스러움과 지식을 깍아 내린 것이다. 지혜를 버리라고 한다. 성스러움은 속됨의 상대적인 표현이다. 성스럽다는 것은 속됨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이다. 차별을 두지 마라.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자체에는 성과 속이 없다. 단지 인간의 의식이 차별을 둘뿐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저것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이것은 편견이다. 독사를 나쁘다고 하는가. 뱀은 뱀의 길을 갈 뿐이다. 해충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좋은가 나쁜가에 따라서 해충과 익충이 갈라진다. 그러나 벌레는 인간에게 좋게 되고 나쁘게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본성대로 살아갈 뿐이다. 차별을 가지지 마라.
어짐과 의로움은 앞에서 다루었다.
순박함과 통나무는 근원을 의미한다. 뒤에 나오겠지만 이 통나무를 재단 하면 가구가 된다. 그리고 쓰레기가 남는다. 우리는 가구를 문명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래서 통나무들을 베어 낸다. 무수한 통나무들을 베어 낸다. 그리고 그곳에 집을 짓고 나무 의자를 들여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보아라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인간의 문명은 나무하나 만들지 못한다. 단지 나무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 볼 뿐이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을 파괴한 정도와 비례한다. 그것이 진정한 발전인가. 통나무를 잘라서 나무 의자를 만든 것은 인간에게 이롭다고 생각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계 전체에서 볼 때에 그것은 발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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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19.
아주 능숙한 재주를 끊어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은 백배로 도리 것이다. 인의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들은 효와 자애로 되돌아 갈 것이다. 기교를 버리고 이익을 포기하면 도둑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 즉 탁월한 재주와 지혜, 어짊과 올바름, 기교와 이익을 아주 포기해 버리면 문화의 혜택이 모자라므로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돌아갈 곳을 마련하기 위하여 갓 베어 낸 원목 같은 소박함을 보여 주어서 거기에 귀속시키면 사심과 욕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주
절 : 끊다, 없애다.
성지 : 탁월한 재주를 뜻함. 국가 통치의 제도와 규범을 마련하는 성인과 현자들의 지혜와 재능을 의미함.
기 : 버리다, 포기하다.
민리 : 백성의 이익.
교리 : 교의 기교, 기술. 이는 재리, 매매 이익을 의미함.
문: 이 문에 대하여는 옛날부터 연구자간에 이견이 많음. 장식품, 장식, 문장 표현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문명, 문화, 문식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필자는 문화의 혜택으로 번역하였다.
견소포박 : 소는 아직 염색하지 않은 흰 비단을 말하며 여기서는 본래대로의 순수함을 뜻함.박은 갓 베어 낸 원목 즉 통나무를 뜻하며, 여기서는 인위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사물의 원래의 모습을 의미함. 모두 도를 상징한 말임. 질소, 소박, 질박 등의 말은 노자의 가치관을 잘 대변하는 단어임. 박은 박으로 표기할 수 있다. 포박은 후세의 육조 시대에 포박 자를 저술하여 신선 사상을 선양한 갈홍의 호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사람들에게 문명의 허식과 겉치레를 벗어 던지고 알몸 그대로의 소박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주 탁월한 재주를 끊어 없애면 백성의 이익은 증대할 것이고, 인의를 버리면 백성은 효도와 자애로 돌아갈 것이며, 기교와 이익을 포기하면 도둑은 없게 된다고 노자는 그 특유의 역설적 수사를 구사하여 자신의 지론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지, 인의 , 교리를 끊어 버리면 생활이 단조롭게 되어 백성들이 마음을 쏟을 대상을 잃게 된다. 이럴 때 물감을 들이지 않은 순수한 비단이나 산에서 갓 베어 낸 거친 통나무와 같은 본래의 순박함을 보여주어 거기에 그들의 마음이 귀속할 곳을 마련해 준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의 사심과 욕구는 감소하게 될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의 겉치레 속에 스스로가 키운 간지와 욕망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을 최고의 이상으로 내세우며 일방적, 편파적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자는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적 허구성에서 탈피하여 알몸 그대로의 진실로 되돌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철인이었다. 노자의 반문화선언은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시대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과 유사함이 있다. 루소는 인류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무한하게 증대되는 욕망과 유한한 인간 능력 사이의 불균형으로 갈등을 겪게 됨을 지적하였다. 또한 예술과 학문은 모두 인간의 악덕에서 생긴다고 주장하며 부패, 문약의 병폐가 바로 문화가 가져다 준 해독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도 자연 상태를 야만 상태로 규정하여 자연에의 복귀보다는 현실 정치의 개선책(인민 주의설)쪽으로 관심사를 돌린 점에서 결국 노자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외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우주적 질서와 인간 윤리의 합치를 이상으로 삼는 우리 동양철학의 자연관과 자연을 주로 인간과 대립되는 객관적인 대상 내지는 물질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서구인의 자연관과는 현격한 관점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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