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4. 해는 중천에 뜨는 그 순간부터 기운다(주아부)
주아부는 주발의 아들로서 군사 작전에 뛰어나고 군율이 엄하기로 유명했다. 기원 전 158년 흉노가 대규모로 한나라에 쳐들어 왔다. 이에 문제는 주아부를 비롯한 세 장군을 파견해 패상과 극문, 그리고 세류 지방을 지키도록 했는데, 이때 주아부는 세류의 방어를 맡게 되었다. 세 장군을 파견한 후 문제는 친히 일선으로 가서 병사들을 위문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패상과 극문 지방에 갔는데 황제가 탄 수레가 곧장 성문으로 달려들어 갔지만 누구 하나 막아서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장군 이하 모든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나와 환영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다음으로 세류의 주아부 군대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모든 병사들이 갑옷을 입고 손에는 서릿발 같은 칼과 창을 들었으며, 성벽 위에는 화살이 겨냥된 채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윽고 문제 일행의 선발대가 성문에 도착했는데, 성문의 경비병은 그들을 막아서며 결코 들여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선발대의 한 사람이 엄숙한 목소리로,
"폐하께서 곧 도착하시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비병은,
"장군의 명령이 '군중에서는 장군의 말만 들을 것이며, 설령 폐하의 명령이 있더라도 듣지 말라'고 하셨소."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뒤 바로 문제의 행차가 도착했는데, 역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문제는 정식으로 사자를 장군에게 보내,
"짐이 오늘 병사들을 위로하고자 하노라."하고 전하도록 하였다.
이에 주아부는 비로소 성문을 열어 황제 일행이 통과하도록 허락했다. 행렬이 군영으로 들어서려는데 수문장이 호위 군관에게 이렇게 귀뜀해 주는 것이었다.
"장군이 정한 규정에 의하면 군영 안에서는 말을 달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호위 군관이 황제에게 이 사정을 말하니 황제는 말이 천천히 걷도록 말고삐를 느슨히 하였다. 드디어 황제가 본부에 도착해 보니 주아부 이하 모두가 갑옷을 입고 위풍당당히 늘어서 있었다. 주아부는 황제를 보자 두 손을 모아 눈 높이로 들며 절을 하는 것이었다.
"몸에 군장을 차렸을 때에는 절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렇게 뵙는 것을 양해해 주소서."
이에 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정중하게 답례를 했다. 나중에 황제가 성문을 나서자 황제의 수행원들이 모두 주아부가 한 행위를 비판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그 정도라야 비로소 장군이라 할 수 있다. 패상이나 극문이야 아이들 장난이지 그게 어디 군대 꼴인가?"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은 군기가 엄한 군대를 세류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는 주아부를 크게 신뢰하여 태자의 앞날을 부탁하며 말했다.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겨도 주아부라면 군대를 통솔하여 막중한 임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서 그를 거기장군에 임명하였다.
도전은 있으되 응전은 없다
그 후 오, 초 등 7개 제후국이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는 주아부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다. 이때 주아부가 황제에게 말했다.
"지금 반란군은 사납고 빨라서 정면으로 맞선다면 승패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양나라 땅을 잠시 내 준 다음 저들의 보급로를 끊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아부는 병사들을 형양 땅으로 집결시켰다. 당시 반란군은 양나라 땅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양나라는 위기에 빠지자 주아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주아부는 못 들은 척하며 군대를 양나라에 못 미친 곳에 머물게 하면서 튼튼하게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양나라 지방에서는 날마다 사자를 보내 구원병을 요청했지만, 주아부는 들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제에게 직접 글을 올려 호소하였고, 이에 황제도 양나라 지방에 구원병을 파견하라고 주아부에게 명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아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아부는 믿을 만한 부하를 시켜 날랜 기습 부대로 반란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버렸다. 그 후 보급로가 끊겨 굶주림에 시달린 반란군은 사력을 다해 싸움을 걸어 왔다. 하지만 주아부는 맞서 싸우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병사들 중 일부가 크게 소란을 피우며 떠들어 댔지만, 주아부는 장막 안 침상에 누워 잠을 자면서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 소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 잠잠해졌다. 그 뒤로도 반란군은 매일같이 공격해 들어왔지만, 주아부는 명령을 내려 절대 응전하지 말도록 했다. 반란군은 정예 부대를 투입해 성벽을 허물어뜨리려 했지만, 철통같은 방어벽을 결코 뚫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해 봐도 성과가 없자 반란군은 이제 제 풀에 지쳐 철수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이제까지 그토록 맞서 싸울 생각도 하지 않던 주아부가 전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굳게 닫혔던 성문을 열고 한꺼번에 몰려나가며 반란군을 포위해 들어갔다. 삽시간에 반란군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대패당했다. 주아부는 그 여세를 몰아 반란군을 끝까지 추적해 궤멸시켰다. 이때 반란군의 총소이던 오나라 왕비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양자강 남쪽의 단도현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그 지방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그렇게 하여 반란은 3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실로 오, 초 7국 반란의 진압에 있어 주아부는 일등 공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아부는 그 공로로 승상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 후 황제가 세상을 뜨고, 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바로 경제였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정상에 올라간 주아부의 내리막길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주아부는 자신을 과신하는 성격이었다. 특히 오, 초 7국의 반란을 진압하고 난 후 그 성격은 더욱 강해졌다. 한나라 초기에 왕조를 흔든 2대 사건으로 여씨의 전횡과 오, 초 7국의 난이 있었는데, 주아부와 그의 아버지 주발이 각각 이 위기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아부는 자기들 부자가 아니었으면 한나라가 망했으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주아부가 황제에게 간섭하는 일이 차츰 많아졌다. 율희의 아들을 태자에서 폐위시키려는 경제의 생각에 주아부는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경제의 부인인 왕부인의 오빠를 제후로 임명하려 할 때도 격렬히 반대했다.
"고조(유방)의 말씀에 유씨가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공적이 없는 사람은 제후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자 경제는 매우 기분이 상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를 제후로 임명하지 못했다. 그 뒤 흉노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던 여섯 명이 한나라에 투항해온 적이 있었다. 경제는 흉노에 대한 회유책의 일환으로 그들을 제후로 임명하고자 했다. 이때 주아부가 나서서 말했다.
"그 자들은 자기 군주를 배신하고 투항했습니다. 지금 그들을 제후로 우대한다면, 폐하께서는 장차 신하들이 배신할 때 어떻게 비난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경제는 주아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 이에 주아부는 심기가 불편해져서 병을 핑계삼으며 조정 회의에 나가지 않았고 결국 해임되었다. 그 뒤 주아부는 아버지 주발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상방이라는 곳에서 갑옷과 방패 5백 개씩을 사들였다. 무덤에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원래 상방은 궁궐에서 쓰는 물건만 만들던 곳인데, 주아부가 이를 어긴 것이었다. 그래서 주아부는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는 계속해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경제가 이 소식을 듣더니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며 바로 정위에게 넘기도록 명령했다. 이에 주아부는 자살하려고 했지만, 아내가 극구 말렸다. 주아부는 그 뒤 정위에게 끌려가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단식하다 굶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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