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1. 돌아오지 않은 장군(경포, 팽월, 난포)
2) 황야의 이리(팽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와는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팽월은 호숫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실제로는 청년들을 작당해 도적질을 일삼고 있었다. 진승과 항량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 소식을 들은 젊은이들이 팽월을 찾아왔다.
"지금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일어서고 있소. 우리도 이 기회에 일을 벌입시다."
그러나 팽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두 마리 용이 싸우는 셈이네. 좀더 두고 봐야지. 아직은 때가 안됐어."
1년쯤 지나자 이번에는 백여 명이 찾아와서,
"제발 두목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팽월은,
"안돼, 자네들과는 일할 수 없네."
라며 거절했다. 그렇지만 청년들이 한사코 권유하자, 팽월은 마지 못해 승낙했다. 그래서 다음날 해뜨는 시간에 모여 거사하기로 하고 늦는 자는 목을 베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막상 모여 보니 지각하는 자가 10여 명도 넘고, 심지어 어떤 자는 점심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는 것이었다. 팽월이 호통을 쳤다.
"나는 나이가 많아 거절했는데, 너희들이 하도 권하는 바람에 두목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약속을 하고도 어기는 자가 이렇게 많으니 무얼 한단 말인가! 할 수 없다. 제일 마지막에 온 자만 처형시키겠다."
팽월은 맨 나중에 온 자를 목 베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피식피식 웃으며,
"아니,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안 그럴께요."라며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팽월은 자기가 나서서 맨 나중에 온 자를 끌어내고는 단칼에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팽월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뒤 팽월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면서 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게 되었다.
유격전의 명수
유방이 북상하여 창읍을 공격할 때, 팽월도 유방을 도왔다. 그러나 유방이 공격에 실패하고 서쪽으로 군사를 돌리자, 팽월도 고향으로 돌아가 세력을 키웠다. 그 뒤 유방은 팽월에게 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요청했다. 그래서 팽월은 초나라의 소공각이 이끄는 토벌 군대와 마주쳐 크게 이겼다. 이듬 해에 팽월은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며, 유방은 그를 위나라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때부터 팽월은 각지에 신출귀몰하게 출몰하면서 유격전을 벌여 항우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유방이 형양에서 항우와 싸울 때도 팽월은 항우의 배후에서 유격전을 펼쳐 위기에 몰렸던 유방이 간신히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화가 난 항우가 팽월을 대대적으로 추격해 팽월의 부대를 크게 격파했지만, 팽월은 재빨리 후퇴해 버렸고 또다시 인근의 20개 성을 빼앗고 곡물 10여만 섬을 노획해 유방 군대의 군량미로 쓰게 했다.
여후의 꾀
천하 통일 후 팽월은 공로를 인정받아 양나라 왕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10년이 지나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방은 팽월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팽월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부하 장군에게 군사를 내 주어 나서도록 했다. 이에 유방이 노해서 사자를 파견해 팽월을 문책하자 팽월은 몸소 사과하러 낙양으로 가려 했다. 이때 장군 호첩이 말했다.
"대왕께서 처음부터 가시지 않고 문책을 받고서야 가시면 포로가 될 뿐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팽월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칭병하며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팽월이 한 부하를 크게 꾸짖고 처형하려 하자, 그는 도망쳐 장안으로 갔다. 그리고 팽월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고발했다. 유방은 몰래 군사들을 보내 팽월을 체포했다. 팽월은 장안에 끌려와 취조를 받았는데, 취조관은 이렇게 보고했다.
"반란 혐의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팽월의 과거 공적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유방은 그의 목숨만은 살려주고 서민으로 격하시켜 유배보내도록 했다. 팽월이 유배지로 가던 도중 마침 장안에서 낙양으로 행차하던 여후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팽월은 여후 앞에 끓어 엎드려 눈물로 호소하면서 자기 고향에서 살게 해 달라고 탄원했다. 여후는 그의 호소를 받아들여 그를 데리고 낙양으로 가더니 유방에게 말했다.
"팽월은 명장인데 지금 귀양 보내 살려 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죽이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팽월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한편 여후는 또 다른 사람을 시켜 팽월이 아직도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상소하도록 했다. 드디어 유방도 죽이기로 결심했다. 결국 팽월은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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