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9. 여걸 천하(여후, 진평)
2) 도대체 여자의 욕심이란 그 끝이 어디일까?(여후)
여후는 유방이 아직 이름도 없던 때에 결혼했던 부인으로, 유방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바로 뒷날의 효혜제와 노원 공주였다. 천하 통일 후, 여후의 억센 성격은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신을 처형하고 팽월을 죽이는 등 공신들을 숙청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차츰 정치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다. 한편 유방은 한나라 황제가 된 뒤, 척희라는 미인을 얻어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척희는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바로 여의였다. 그런데 여후가 낳은 아들, 그러니까 효혜는 워낙 천성이 착하고 나약했다. 그래서 유방은 효혜가 부모의 성격을 닮지 않은 점에 매우 서운해 했으며, 효혜 대신 척희의 아들인 여의를 태자로 세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더구나 여의는 유방을 똑같이 닮아 유방도 그를 매우 아끼고 있었다. 그 당시 척희는 유방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을 때라, 유방이 궁궐을 떠나 여행을 하는 데에도 항상 곁에 있었다. 그러면서 척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아들 여의를 태자로 삼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여후는 완전히 버림받고 있는 조강지처였다. '색이 시들면 사랑도 식는다'는 말이 역시 정확했다. 여후는 유방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제대로 얼굴을 맞댈 기회조차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화살이 있어도 쏠 수가 없으니
여의를 태자로 삼아야겠다는 유방의 마음은 더욱 굳어져 가고 있었다. 초조해진 여후는 장량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에 정량은 궁궐에 들어가 유방에게 몇 번이나 태자를 바꾸지 말라고 간청했지만, 유방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장량은 생각을 바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느 날 궁중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효혜 태자도 와 있었는데, 그 뒤에는 네 명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80을 넘은 노인들로서 수염이나 눈썹까지 하얗게 새어 있었다. 그들은 차려입은 옷매무새가 마치 신선과 같았다. 그러자 유방이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냐?"
이에 네 노인이 유방 앞에 나아가 각자 이름을 밝혔다. 다름아닌 동원공, 녹리 선생, 가리계, 하황공의 상산사호였다. 이들은 실로 유방이 천하 통일 전부터 가르침을 받고자 그렇게 찾아다녔던 도인들이었던 것이다. 유방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찾았었는데.... 그간 어디 계셨소? 일부러 나를 피하는 것 같던데...."
이에 노인들이 말했다.
"황공합니다만, 폐하께서 인물을 못 알아보시고 곧잘 바보 취급하시는데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태자는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우애로 감싸며, 남에게도 겸허한 태도로 대해 주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태자를 따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랬던가...."
유방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면 앞으로도 태자를 잘 부탁하오."
네 노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유방의 장수를 기원하는 술잔을 들고 물러나갔다. 한참 후 유방은 척희를 불렀다.
"나는 정말 여의를 태자로 삼고자 했으나, 태자는 네 도인이 보필하고 있네. 태자에게도 날개가 돋아난 셈이지.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네. 그대는 내가 죽은 후 여후를 도와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척희는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유방은 노래를 읊기 시작했다.
새는 하늘 높이 천 리를 날으네
날개 어느새 굳세어 사해를 건너네
사해를 나는 날개를 어지 막으리오
화살이 있어도 쏠 수가 없으니
척희의 뺨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뒤 효혜 태자는 태자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있었다. 이 모두 장량의 도움 덕택이었다.
사람돼지
그 후 유방이 죽었다. 효혜 태자가 황제로 즉위하고, 여후는 태후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여후에겐 눈엣가시가 있었으니, 바로 척희였다. 유방의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아들 효혜의 태자 자리도 거의 빼앗길 뻔했을 정도로 항상 여후 옥죄어 왔던 척희! 실로 여후는 유방이 살아 있을 때부터 척희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방이 죽자마자, 여후는 척희를 곧장 잡아다가 궁중에서 죄지은 자만 가두는 영항이라는 토굴 감옥에 처넣어 버렸다. 그러면서 척희의 아들 여의도 즉각 입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몇 번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의는 오지 않았다. 대신 주창이라는 신하거 편지를 올렸다.
"선제께서 '여의가 아직 어리니 네가 지켜주어라'는 분부를 내리셨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태후께서 척희 부인을 미워하셔서 여의 왕자님까지 함께 죽이시려고 한다니, 어떻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일고 난 여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무슨 말이냐, 두말 말고 그 놈을 끌어와라!" 하고 호통을 쳤다. 드디어 여의는 궁궐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원래부터 우애가 깊었던 효혜제는 여후의 속셈을 알아채고 여의가 궁궐에 도착하기 전에 손수 궁궐밖에 나가 궁궐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잠시도 여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의를 죽일 기회만 노리던 여후도 할 수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효혜제가 사냥을 나가게 되었는데, 아직 어렸던 여의는 일찍 일어나지 못해 궁궐에 홀로 남게 되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여후는 사람을 보내 여의에게 독을 탄 술을 먹이도록 했다. 효혜제가 사냥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여의는 차디찬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후의 복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여후는 영항에 갇혀 있던 척희에게 처참하게 복수했던 것이다. 여후는 우선 척희의 수족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도려내고 귀를 찢어 태웠으며, 벙어리가 되게 하는 약을 먹였다. 그것도 모자라 변소 밑바닥에 버리고 '사람돼지'라 부르게 했다. 며칠 후 여후는 효혜제에게 그 '사람돼지'를 보여 주었다. 효혜제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척희라는 말을 듣자 통곡하다가 그대로 앓아 누웠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어 여후에게 애원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제부터 나를 아들로 여기지 마십시오. 나는 이런 식으로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후 효혜제는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가뜩이나 쇠약한 몸으로 매일같이 술과 여자에 파묻혀 지내다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23세였다.
단 한번의 사랑으로 태후가 된 여인
유방의 총애를 받던 여인들은 여후의 복수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유방의 사랑을 덜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아 끝내 황제의 어머니가 된 여인이 있었다. 바로 박희라는 여인이었다. 박희는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겨룰 때, 아버지가 항우 진영에 있었다. 그 후 전쟁에서 패하자 그 가족들은 포로가 되어 아버지는 처형당하고, 박희는 노예로 되어 베 짜는 여인이 되었다. 그 뒤 우연히 베 짜는 방에 들른 유방은 박희의 미모에 반해 박희를 후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박희의 미모도 사실은 별 뛰어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유방의 머리에서 까맣게 잊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박희는 관부인과 조자아라는 두 명의 후궁과 매우 친했다. 그래서 세 친구는 언제나, "우린 나중에 누가 먼저 귀인이 되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 꼭...."하고 약속했었다. 그 후 관부인과 조자아는 유방의 총애를 받는 몸이 되었다. 어느 날 유방과 같이 나들이하던 두 후궁은 잠시 쉬고 있을 때, 박희와의 약속을 말하며 서로 웃었다. 그러자 유방이 꾸중을 하며 왜 웃냐고 물었다. 두 후궁이 그 이유를 말하니 유방은 갑자기 박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즉시 박희를 불러내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때 박희가 조용히 속삭였다.
"지난 밤 제 배에 푸른 용이 들어오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래, 그건 길조구나. 그 꿈을 이뤄 주마."
이렇게 해서 박희는 단 한번의 정을 받고 아들을 잉태했다. 그러나 그 뒤 박희는 유방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유방이 죽고 나자 유방의 사랑을 받던 후궁들은 모조리 여후에게 앙갚음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박희는 유방과 거의 관계도 없던 '불쌍한 여인'으로 취급되어 살아 남았던 것이다. 더구나 여후가 죽은 후, 여씨의 전횡에 넌더리가 나 있던 중신들이 박희를 불러 들였고 그래서 그 아들을 황제로 세웠던 것이다. 참으로 불행이 행운으로 바뀐 경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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