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8.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진승, 오광)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오!
진승은 하남 사람으로 진섭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또 오광도 역시 하남 사람으로 진승의 친구였다. 진승은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야 했지만, 마음 씀씀이가 크고 배짱도 두둑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인가 그는 주인 집 밭에서 일을 하다가 밭두렁에 나와 쉬면서 탄식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출세해서도 옛 친구는 잊지 않도록 해야지..."
이때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소리 마라. 머슴사는 주제에 출세는 무슨 얼어 죽을 출세냐?"
그러자 진승은 개탄했다.
"슬프도다. 참새가 어찌 대붕의 큰 뜻을 알겠느냐."
반란의 봉화
진나라 2세 황제 원년 7월, 대규모 강제 노역이 개시되었다. 진승이 살던 지방에서도 9백 명이 징발되어 북방의 국경 지대로 끌려갔는데, 진승과 오광은 소대장격의 인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가던 도중 야영을 하고 있을 때 큰비가 왔다. 그래서 길이 완전히 물에 잠겼으며, 행군도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시간은 자꾸만 흘러 약속한 기한 내에 국경 지방으로 도착하기란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인솔 책임자는 반드시 처형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때 진승이 오광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도망쳐봤자 얼마 못 가 잡혀 죽는다. 또 사람들을 끌고 국경으로 가도 죽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일반인데, 우리 한번 나라를 발칵 뒤집고 죽는 것이 어떤가?"
그러면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지금 이 나라는 망조가 들었다. 지금의 2세 황제는 처음부터 황제 자리에 오를 자격도 없는 자였다. 원래 큰아들 부소가 당연히 차지해야 할 자리였거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부소가 아주 훌륭한 사람인 것은 알지만, 아직 죽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지. 또 유명한 항연 장군도 마찬가지일세. 그도 백성들의 인기가 대단했었는데, 초나라가 멸망당한 뒤 죽었다고도 하고, 또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소문이 분분한 형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우리가 부소와 항연 행세를 하면서 여기 패거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버리는 거다. 그러면 천하의 백성들이 호응할 것이 아닌가?"
이 말에 오광도 적극 찬성했다.
"좋다. 그럼 우리 한번 해 보는 거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때 점쟁이는 이들의 야심을 눈치채고,
"당신들의 일은 반드시 성공한다. 다만 귀신의 뜻에 잘 따라야 한다." 고 말했다.
이 말에 크게 고무된 두 사람은 그러면서도 그 '귀신이 뜻'이 도대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다가,
"옳지, 귀신의 힘을 빌어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라는 것이겠지."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는 그들은 '진승왕'이라고 붉게 쓴 헝겊 조각을 어부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뱃속에 슬쩍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물고기를 한 병사가 사가게 되었다. 그는 고기를 요리하다가 뱃속의 헝겊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이 헝겊을 보여주게 되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에 고무된 진승과 오광은 또 다른 꾀도 썼다. 야영하는 근처 숲속에 있는 사당에 오광이 들어가 밤에 도깨비불을 피우고 여우 목소리를 흉내내어,
"초나라가 일어난다. 진승이 왕--,
초나라가 일어난다. 진승이 왕--."하고 소리를 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는 일행 중에 진승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게 되었다.
왕후장사의 씨가 따로 있는가!
오광은 평소에도 동료들의 일이라면 두 손을 걷어부치고 돕는 성격으로 병사들이 그를 많이 따랐다. 어느 날 이들 일행을 인솔하는 총책임자인 장교 두 사람이 술에 취했다. 그러자 오광은 갑자기 앞으로 나가 그 장교들에게,
"나는 도망치겠다. 나는 도망치겠다."
하고 몇 번이나 소리쳤다. 일부러 장교의 화를 돋구어 시비를 걸고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꾀였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장교 한 사람이 매우 화를 내면서 오광을 채찍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장교의 칼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오광이 잽싸게 그 칼을 주워 들고 단칼에 장교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때 진승도 나머지 장교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는 진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비 때문에 길이 막혀 이미 기한 내에 도착하기는 글렀다. 가 봤자 모두 죽을 뿐이다.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개죽음을 당하다니 말이 되는가! 어차피 죽을 바에는 세상을 한번 깜짝 놀라게 해 주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모두 다 같은 인간일 뿐인 것이다. 우리라고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대찬성이오! 우리 한번 해 봅시다."하고 소리쳤다.
이렇게 되자 진승과 오광은 스스로 부소와 항연이라 칭하고, 초나라의 관습에 따라 제단을 쌓고 올라가 모두 오른쪽 어깨를 벗음으로써 한 마음임을 맹세한 뒤 국호를 '대초'로 정했다. 그리고 진승은 장군이 되었으며, 오광은 부대장이 되었다. 이들은 우선 부근 지방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무기와 병력을 확보한 후, 차츰 그 세력을 넓혀 갔다. 그런데 그 세력은 급속도로 늘어나 순식간에 전차 6대, 수레 7백 대, 기병 천여 명, 병졸 수만 명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진격해 옛날 초나라의 수도였던 진성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 진나라의 폐해가 극에 달해 백성의 대부분이 이미 등을 돌린 탓이었다. 진승은 진성을 점령한 후 지방 유지들을 모아 놓고 자기의 뜻을 설명하였다. 그랬더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장군께서 몸소 일어나셔서 천하의 불의를 내몰고 폭정을 벌하셨으며 초나라를 다시 부흥시켰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왕위에 오르셔야 합니다."라고 떠받드는 것이었다.
사실 초나라 사람들이야말로 진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높았다. 천하 통일을 사실상 겨룬 것은 진나라와 초나라였는데, 이 와중에서 초나라 회왕은 속임수에 걸려 진나라에 연금당한 채 죽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 집만 남아 있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킬 것은 역시 초나라다'라는 속담까지 생길 정도였다. 아무튼 진승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곧 왕이 되었으며, 국호는 '장초'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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