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6.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다(춘신군 1/2)
춘신군은 초나라 사람으로서 이름은 헐이요, 성은 황 씨이다.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으며, 초나라의 경양왕을 모시고 있었다. 경양왕은 황헐이 변론을 잘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 무렵에 진나라는 이미 백기로 하여금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무와 검중 지방 등을 탈취하였고, 언, 영 지방을 함락시켰으며, 동으로는 경릉까지 제압하여 초나라의 경양왕은 동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황헐(춘신군)은 진나라가 초나라를 없애버릴까 두려워 하였다. 이에 그는 편지를 진나라 소왕에게 보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면
"지금 천하에서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초나라를 정벌하려 하신다는 소문이 들리니 이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울 때에는 힘없는 개가 그 해를 입게 되오니 초나라와 친교를 맺는 거이 가장 나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은 극단의 상태에 이르면 다시 처음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겨울이 다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다하면 겨울이 옵니다. 위로 쌓은 것이 극단에 이르면 위태롭게 되니 바둑알을 쌓아놓는 경우가 바로 그 일례입니다. 지금 대왕의 영토는 천하에 두루 퍼져 있어서 동서의 변경에까지 걸쳐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긴 이래로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 대왕께서는 성교를 한나라에 보내셨는데, 성교는 그 땅을 가지고 진나라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대왕께서 군대를 사용하거나, 위세를 과시하지 아니하고도 백 리의 땅을 얻은 것이니 왕께서는 유능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또 군사를 일으켜서 위나라를 공격하니 드디어 위나라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대왕께서는 또 제나라와 진나라의 허리 부분을 끊고, 초나라와 조나라의 등뼈 부분을 자르니 천하의 나라가 모였으나 감히 이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대왕의 위세 또한 극도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 대왕께서 만약에 공적을 보유하시고, 위세를 지키신 채로 남을 공격하여 탈취하려는 욕심을 버리시고, 그 대신 인의 의 땅을 비옥하게 갈아 놓으셔서 후환이 없도록 하신다면 3왕에 다시 대왕을 첨가할 필요가 없을 만큼 대왕께서는 위대하신 것이며, 오패에 다시 대왕의 이름을 첨가할 필요가 없을 만큼 대왕은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만약에 자기를 따르는 백성의 많음을 믿고, 병력의 당대함에 의지하여, 위나라에 승리한 위세를 타서 힘으로 천하의 군주를 신하로 삼으려 하신다면 그 후환이 생기리라고 신은 걱정이 됩니다. "시경"은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시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도다.
그리고 "역경"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우가 물을 건너려 할 때는
그 꼬리를 물 속에 담가 본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일이란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맺기는 어려움을 뜻하고 있습니다. 옛날 지백은 조나라를 정벌하는 것의 이익되는 것만을 알았고, 유차에서 자신이 당할 화는 몰랐으며, 오나라는 제나라를 정벌하는 것의 편리함만 알았고, 월나라에게 패배하리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 두 나라는 큰 공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눈앞에 있는 이익에 빠져서 그 뒤에 있을 환난을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초나라를 무너뜨릴 것만을 생각하시느라 초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한, 위를 강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시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큰 세력을 가진 자는
먼 곳은 안정시키고 간섭하지 않는다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초나라는 우방이요, 이웃나라는 적국입니다. 또한 이런 말도 "시경"에는 있습니다.
펄펄 뛰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 사로잡히고,
다른 사람이 먹은 마음을 나는 헤아려 안다네.
지금 대왕께서는 한, 위가 대왕을 잘 대우한다고 믿고 계시니 이는 바로 오나라가 월나라를 믿은 것과 똑같습니다. 신이 듣건대, '적은 틈을 주어서는 안되고, 때는 놓쳐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한, 위에 대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베푼 덕은 없고,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원망만 있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부자와 형제들이 진나라 때문에 연이어서 죽음을 당한 것이 이미 10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조국은 피폐하게 되고, 사직은 기울었고, 종묘는 허물어졌습니다. 그들은 배를 칼에 찔려 창자가 끊어졌고, 목은 잘리고 턱은 꺾어졌으며, 머리와 몸은 분리된 채 풀밭과 진펄에 해골이 나뒹굴고, 두개골은 거꾸로 처박혀 국경선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와 노약자가 목과 손목을 묶인 채 포로가 되어서 길에 연이어 있습니다. 귀신들은 외로이 상처받고, 그들을 제사하는 유족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가족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진 채 남의 종이 된 사람이 천하에 가득 차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한, 위가 망하지 않는 것은 진나라의 우환거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그들의 힘을 빌어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니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대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하는 동안 네 나라에서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서 대왕에게 대응할 것입니다. 진, 초의 군대가 전쟁을 쉬지 않고 하는 동안 위나라는 군대를 출격시켜 공격할 것이니 그러면 옛 송나라의 땅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남쪽을 향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그러면 사방은 반드시 정복당할 것입니다. 이들 땅은 모두 사방에 통할 수 있는 평원이며, 기름진 땅인데 그들로 하여금 단독으로 공격하여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대왕께서 초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중원지방에 한, 위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고,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 위의 강대함이 진나라와 대적할 만한 것입니다. 한편 제나라는 남으로는 사수로 경계선을 삼고, 동으로는 바다를 등지고 있으며, 북으로는 황하를 끼고 있으므로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천하의 나라 중에 제, 위보다 강한 나라는 없게 될 것입니다. 제, 위가 땅을 얻고 이익을 챙겨서 진나라의 하급관리를 거짓으로 받든다면 1년 뒤에는 비록 자기들이 황제가 되지는 못한다 할 지라도 대왕께서 황제가 되는 것을 막기에는 풍부한 힘을 가질 것입니다. 생각컨대, 대왕과 같이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고, 많은 백성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처지에 전쟁을 하는 것은 대왕의 실책이라 하겠습니다. 신이 대왕을 위하여 깊이 생각하여 보건대, 초나라와 선린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진나라와 초나라가 화합하여 하나가 되어서 한나라에 대처한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복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때에 험준한 산동의 지리로써 옷깃을 삼고, 굽이치는 황하의 이로움으로써 띠를 삼는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대왕의 관문을 지키는 제후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위나라도 또한 진나라를 위하여 제후를 감시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왕께서 일단 초나라와 선린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진나라의 영향력 안에 들에 되는 두 대국 군주들이 제나라와 국경선을 같이하고 견제를 할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제나라의 오른편에 있는 땅은 팔짱을 낀 채 그대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영토가 동해와 서해를 가로질러 형성이 된다면 제, 초는 연, 조와 연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연, 조를 위협하고, 바로 제, 초를 뒤흔들어 놓는다면 이 네 나라는 가혹히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복종할 것입니다.
황헐의 글을 다 검토한 소왕은
"참으로 좋은 글이로고."
하며 칭찬하고 백기의 공격을 멈추게 한 다음 한나라와 위나라에 사과하였다. 그리고 사신으로 하여금 초나라에 예물을 바치고,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하였다.
죽고자 하는 이는 산다
황헐이 진나라왕의 약속을 바도 초나라로 돌아왔다. 이에 초나라는 황헐과 태자 완을 진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진나라는 이들을 여러 해 동안 억류하였다. 그 뒤 초나라의 경양왕이 병이 들었는데도 태자가 귀국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태자는 승상인 응후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황헐이 응후를 찾아가 설득하였다.
"승상께서는 정말 태자와 친하십니까?"
응후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황헐은 말을 이었다.
"지금 초나라 왕은 병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으니 태자를 귀국시키는 것이 가장 나을 것입니다. 이 태자가 초나라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진나라를 정성스럽게 섬길 것이며, 승상께 대해서도 무궁한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이것은 동맹국과 친교를 두텁게 하는 거이며 신임을 얻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이 태자가 귀국하지 못한다면 그는 다만 함양에 사는 평범한 선비에 불과할 뿐이니, 초나라는 다른 태자를 세우고는 이 진나라를 섬기지 아니할 것이 분명합니다. 동맹국을 잃어버리고 대국과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잘못된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승상께서는 이를 깊이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응후는 이러한 뜻을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했다.
"태자의 스승으로 하여금 먼저 포나라에 가서 왕의 병이 어떤 상태인가를 알아보고, 그가 돌아온 뒤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합시다."
이에 황헐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진나라가 태자를 붙잡아 두는 까닭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태자께서는 그들을 이롭게 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몹시 걱정하는 일입니다. 지금 국내에는 양문군의 두 아들이 있는데 대왕께서 만일에 돌아가신다면 태자께서 초나라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양문군의 아들이 반드시 왕의 자리를 물려받고 태자께서는 종묘에 제사를 받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조속히 서두르시어 사신으로 온 사람과 함께 진나라에서 도망하여 국경을 벗어나십시오. 신은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뒷일을 맡겠습니다."
그리하여 태자는 의복을 바꾸어 입고 사자의 마부로 변장하여 진나라의 관문을 벗어났다. 이때 황헐은 집을 지키고 병을 핑계로 손님을 거절한 채 며칠을 보냈다. 태자가 이미 멀리 도망하여 진나라가 추격할 수가 없다고 판단되자 그는 스스로 진나라 소왕에게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나라의 태자는 이미 귀국을 하여 국경선을 멀리 벗어났습니다. 제가 그 책임을 지고 죽어 마땅하오니 죽음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소왕은 크게 노하여 그를 죽게 하려고 하였다. 이때 응후가 이렇게 말했다.
"황헐이 신하된 의리로써 자신을 내던져 군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였으니 태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반드시 황헐을 기용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죄를 주지 마시고 그대로 귀국을 시키시어 초나라와 친교를 맺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황헐을 귀국시켰다. 황헐이 귀국한 지 3개월 뒤에 경양왕이 죽고 태자 완이 왕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바로 고열왕이다. 고열왕 원년에 황헐을 재상으로 삼고, 그를 춘신군에 봉하여 회북의 12현을 하사하였다. 그 뒤 15년이 지나서 황헐은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회북의 땅은 제나라와 국경을 접한 곳이므로 정치적으로 긴요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군으로 만드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회북의 12현을 헌납하고 강동에 임명해 주기를 청하였다. 고열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춘신군은 그 후 오나라의 옛 폐허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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