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굴성을 점령하고 있는 여이생으로부터 서신이 왔다. 이오는 그 서신에서 비로소 본국 대부들이 중이를 데리러 갔다는 것을 알았다. 이오는 즉시 괵자와 극예와 함께 어떻게 하면 나라를 중이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상의했다. 날마다 상의를 거듭하고 있는 참에 양유미 일행이 이오를 모시러 온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오는 이 소식을 듣자, 손을 이마에 대고 안절부절 초조히 기다렸다.
"하늘이 나라를 중이로부터 뺏어 내게 주심이로다!"
이오는 일변 희색이 만면했다. 극예가 옆으로 다가서며 아뢰었다.
"중이인들 어찌 나라를 탐내지 않을 리 있습니까. 그런데 그가 귀국하지 않고 거절했다는 것은 필시 의심할 만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경솔히 저들을 믿지 마십시오. 대저 국내에 있는 자들이 국외에 있는 사람을 모셔다가 군위에 앉히려는 것은 그들이 다 큰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나라에서 나랏일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이극과 비정부 두 사람입니다. 공자께서는 앞으로 그 두 사람에게 뇌물을 듬뿍 줘야겠지만 그래도 안심해선 안 됩니다. 대저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날카로운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공자도 본국에 돌아가시려면 반드시 어떤 강국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진나라와 가까운 나라 중에선 진나라가 가장 강합니다. 공자는 사람을 진(秦)나라로 보내어 원조를 청하십시오. 진나라가 원조를 허락하면 그 때 귀국하셔도 좋습니다."
이오는 극예의 말에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그 후 양유미가 도안이를 데리고 당도했다. 이오는 이극에게 분양의 밭 백만 평과 비정부에게 부규의 밭 70만 평을 각각 하사한다는 글을 써서 봉한 다음, 그 문서를 도안이에게 내주며 본국에 돌아가서 일단 알리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도안이를 데리고 온 양유미는 이오의 서신을 받아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서신을 바치고 진목공(秦穆公)에게 아뢰었다.
"우리 진나라에선 모든 대부들이 다 공자 이오를 임금으로 모실 생각입니다."
이에 진목공은 건숙과 함께 이 일을 상의했다.
"지금 진(秦)나라는 과인의 힘을 빌어 질서를 잡으려고 하는 모양이오. 뿐만 아니라 지난날 상제께서 꿈에 과인에게 징조를 보이신 일이 있소. 과인이 듣기엔 중이와 이오가 다 어진 공자라고 합디다. 과인이 그들 중에 한 사람을 골라서 진나라의 군위에 오르게끔 도와줄 생각인데 누굴 도와 주는 것이 좋겠소?"
"지금 중이는 책나라에 있고 이오는 양나라에 있으니 우리 나라에서 다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주공은 어이하사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조위하고, 그리고 두 공자의 인품에 관한 보고를 들으려 않으십니까?"
"옳은 말씀이오."
진목공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에 공자 칩이 진나라 사자로서 책나라로 갔다. 공자 칩은 중이와 만나보고 진목공의 명의로써 조문했다. 서로 조문하고, 예가 끝나자 중이는 즉시 상주의 격식을 갖춰 안채로 들어갔다. 공자 칩이 그 곳 시자에게 청했다.
"공자 중이께서 시기를 보아 본국으로 돌아가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우리 주공이 원조하시겠다고 하셨소. 그러니 이 말씀을 좀 전해 주오."
시자는 안으로 들어가서 공자 중이에게 진나라 사자의 말을 전했다. 공자 중이는 곧 조쇠와 함께 이 일을 상의했다. 조쇠가 대답했다.
"본국에서 모시러 왔을 땐 거절하고서 그러고도 외국의 원조를 받아가지고 돌아간다면 비록 고국에 돌아간댔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공자 중이는 공자 칩이 있는 사랑채로 나갔다.
"귀국 군후께서 망명중인 나 같은 사람을 조문하게 하시고 더구나 임금의 자리까지 마련해 주시려 한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라에서 쫓겨난 사람이라 지금 아무런 보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어진 사람과 친하는 것이 보배라고 생각하며 세월을 보내는 중입니다. 이제 부군이 별세하셨으니 이 맘을 표현할 길이 없구려. 그러하거늘 내 어찌 딴 뜻을 두겠소."
말을 마치자, 중이는 엎드려 구슬프게 통곡했다. 그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공손히 공자 칩에게 경의를 표하고서 말없이 안채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자 칩은 중이의 마음이 반석 같음을 알았다. 그는 중이의 어진 마음을 찬탄하면서 책나라를 떠났다. 공자 칩은 그 길로 양나라에 가서 이번엔 이오를 조문했다. 서로 예법에 따라 조문하고 인사가 끝나자 공자 이오가 사정하듯 청했다.
"대부께서 군명을 받들어 이처럼 나라 잃은 사람을 조문하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무슨 좋은 방도가 있으시면 이 불쌍한 저에게 나아갈 길을 지도해 주십시오."
공자 칩은 이오에게 이런 좋은 기회에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이오는 머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고 곧 안으로 들어가서 극예와 상의했다.
"진(秦)나라에서 나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겠다는구려."
극예가 한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진나라에서 왜 우리를 돕겠다는 걸까요? 그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보물이나 무엇인가를 요구하려는 것입니다. 공자께선 본국 땅을 크게 떼어 그들에게 미리 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크게 땅을 떼어 주면 우리 진나라의 손해가 크지 않겠소."
극예가 강경하게 말했다.
"이러다가 공자가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시면 결국 양나라에서 한 필부로 일생을 마칩니다. 그러면 진(晋)나라의 땅 한 조각도 차지하지 못하십니다. 지금 다른 사람이 본국을 다스리고 있는 참인데 공자는 무엇을 아끼십니까?"
이오가 다시 사랑채로 나가서 이번에는 공자 칩의 손을 잡고 간절히 청했다.
"본국에서 이극, 비정부도 나에게 귀국하길 청했소. 그 때도 그들에게 적지 않은 보답을 했습니다. 진실로 진후의 사랑에 힘입어 내가 본국으로 돌아가 사직을 맡게 된다면 하서 다섯 성을 다 귀국에게 바쳐 만분의 일이나마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오는 소매 속에서 다섯 성을 바치겠다는 문서를 내놓고 후덕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 칩이 슬며시 이를 사양했다. 이오는 안타까웠다. 아니 다급하고 초조했다.
"내게 황금 사십 일과 백옥 여섯 쌍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공자가 돌아가서 귀국 군후에게 말만 잘해 주신다면 나는 공자의 은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사양만 하던 공자 칩은 문서와 황금과 백옥을 말없이 받았다. 공자 칩은 진(奏)나라로 돌아가 중이와 이오를 각각 만나보고 온 경과를 진목공에게 소상히 보고했다. 진목공이 말했다.
"중이가 이오보다 훨씬 어질구나. 내 반드시 중이를 진(晋)나라 군위에 앉히리라."
공자 칩이 물었다.
"주공이 진(晋)나라에 임금을 세우려는 것은 우리 진(秦)나라를 위해서입니까, 또는 천하에 주공 개인의 이름을 드날리기 위해서입니까."
"진나라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천하에 과인의 이름을 드날리고 싶을 뿐이다."
"주공께서 진(晋)나라를 위해서라면 어진 임금을 앉히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자 하시면 어리석은 자를 택하십시오. 그래야만 그를 조종해서 주공의 이름을 드날릴 수 있습니다. 어진 자는 우리보다 뛰어날 염려가 있습니다. 어질지 못한 자라야 우리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것을 취하시겠습니까?"
"그대의 말을 들으니 과인의 걱정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속이 시원하도다."
이에 진목공의 분부에 의해서 공손지는 수레 3백 승을 거느리고 양(梁)나라에 갔다. 그는 다시 이오를 모시고 진(晋)나라로 가서 그를 군위에 올려 세웠다. 진목공의 부인 목희(穆姬)는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진(晋)나라 세자 신생의 여동생이었다. 목희는 어렸을 때 진헌공의 차비(次妃)인 가군(賈君)의 궁에서 자랐다. 그녀는 가군의 양육을 받았으므로 매우 심성이 바르고 덕성이 높았다. 목희는 장수 공손지가 이오를 진나라 군위에 올리러 가는 편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오는 목희의 친서를 받아 읽었다.
공자께서 본국에 돌아가 진(晋)나라 군위에 오르시거든 우리 가군을 각별 후대하오. 지난날에 나를 사랑하고 길러 주신 가군의 은혜를 잊을 수 없어 부탁하는 것이오. 그리고 듣자하니 모든 공자가 타국에서 목숨을 보존한다는데 그들이 무슨 죄가 있소. 옛말에 잎이 무성해야만 뿌리가 번영한다고 했소. 모든 공자를 다 본국으로 불러들여 우애 좋게 지내시오. 그래야만 이 몸의 친정도 부강하리라 생각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