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진나라 사자는 염소 가죽 다섯 장을 폐백으로 가지고 초나라로 갔다. 사자가 그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초왕에게 바치고 이렇듯 온 뜻을 아뢰었다.
"우리 주공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즉 우리 나라 천한 종놈 백리해란 자가 귀국에 도망가서 숨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냅니다. 과인이 그 놈을 잡아다가 벌을 줌으로써 앞으로 도망치려는 자들을 경계하고자 합니다. 염소 가죽 다섯 장을 보내오니, 청컨대 군후께선 죄인을 잡아 보내 주십시오."
초왕은 중원 땅 제나라를 경계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다만 진나라의 환심을 잃을까 두려워서 백리해를 잡아다가 진나라 사자에게 넘겨 주라고 분부했다. 이리하여 그는 초나라 관리에게 붙들리는 신세가 되었다. 붙잡혀 가는 그를 전송 나온 동해 사람들은 그가 가서 죽는 줄 알고 모두 구슬프게 울었다. 그러나 백리해는 속으로 웃었다.
'내 듣건대 진후(秦侯)는 큰 포부를 품은 사람이라고 하더라. 종놈 한 명쯤 없어진 것이 그에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초나라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잡아갈 리 있겠는가. 이는 반드시 나를 높은 자리에 등용하려는 수작이다. 이번에 진나라로 가면 부귀할 것인데 뭣을 슬퍼하리오.'
그는 유연히 함지에 올라타고 떠났다. 울 속에 감금된 백리해를 실은 수레가 진나라 국경에 당도했다. 진나라 국경엔 이미 공손지가 수레를 준비하고 그를 영접 나와 있었다. 공손지는 즉시 그의 결박을 풀고 안내했다. 진목공이 백리해를 영접한 뒤 물었다.
"금년 연세가 몇이시오?"
백발이 성성한 백리해가 대답했다.
"겨우 70세입니다."
진목공이 탄식했다.
"참으로 아깝도다. 너무 늙었구려."
백리해가 망연히 대답했다.
"이 백리해에게 나는 새를 쫓아다니라든지 또는 사냥을 가서 맹수를 잡아오라면 이미 늙어서 별로 쓸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신에게 대부가 되어 조당에 나와 앉아서 나랏일을 맡아 보게 한다면 아직 젊습니다. 옛날에 강태공(姜太公)은 나이 80세에 위수가에서 곧은 낚시질을 했건만 그 때 문왕(文王)은 그를 수레에 싣고 돌아가서 상부(尙父)로 삼았고 마침내 주나라를 세웠습니다. 신이 오늘 군후를 뵈온 것과 그 때 강태공이 문왕을 만났을 때를 비교하면 신은 강태공보다 열 살이나 젊습니다."
진목공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우리 나라가 융적(戎狄) 사이에 있어 아직 중원과 함께 동맹을 맺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는 어떻게 과인을 이끄시려오. 우선 천하의 모든 나라 제후들에게 뒤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소."
백리해가 대답했다.
"주공께서 신을 멸망한 나라의 포로로서 또는 늙은이로서 대하지 않으시고 겸손히 물으시니,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 옹기 땅은 주문왕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산은 개 이빨 같고 들은 긴 뱀이 뻗은 것과 같건만, 주나라는 능히 이 좋은 곳을 우리 진나라에게 내줬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진나라를 도우신 것입니다. 또 융적 사이에 있으나 이것은 도리어 우리의 군사를 굳세게 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제 서융 사이에 소위 나라라고 자칭하는 것들이 수십이나 있지만, 그것들을 무찔러 합치면 족히 농사지어 식량을 풍부히 할 수 있고, 그 백성들을 모으면 어떠한 나라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원 땅 모든 나라와 비교해서 우리 나라가 유리한 점입니다. 주공께선 덕을 베푸시고 한편 힘으로써 쳐 무찔러 서쪽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든 연후에, 험난한 산천으로 방패를 삼아 중원을 굽어보며 실력을 기르고 확실 한 때가 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아간다면, 패업을 성취 못할 리 있겠습니까?"
진목공이 부지중에 벌떡 일어서서 백리해의 손을 맞잡고 크게 감탄했다.
"나에게 백리해가 있다는 것은 마치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는 것과 같도다."
진목공은 백리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서 3일 동안 서로의 흉금을 터놓고 세상사를 논했다. 진목공은 백리해의 탁월한 식견과 세상을 보는 안목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뒤로 진나라 사람은 백리해를 오고 대부라고도 불렀다. 즉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그를 얻었다는 의미이다. 또 백성들은 진목공이 소 입 아래에서 백리해를 얻었다고도 말했다. 즉 원래 소 기르던 사람을 데려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