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해는 원래 우나라 태생으로서 자(字)를 백년(伯年)이라고 했다. 그는 나이 30세에야 겨우 두씨(杜氏)란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 뒤, 두 사람 사이에 아들 하나가 태어났다. 그런데 백리해는 집안이 원래부터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천하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출세할 길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서 항상 주저했다. 어느 날 두씨가 남편에게 말했다.
"사내 대장부가 천하에 뜻을 뒀으면 한참 나이에 벼슬길을 찾아야 할 것이어늘 구구히 처자만 지키고 앉았어야 쓰겠습니까. 첩이 혼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갈 테니 당신은 조금도 염려 마시고 떠나십시오."
이 때 집안엔 암탉 한 마리가 있었다. 두씨는 그 암탉을 아낌없이 잡았다. 부엌에 들어갔으나 땔감 나무가 없었다. 두씨는 쓰러져가는 문빗장을 쪼개서 닭을 삶았다. 그리고 방아질을 해서 좁쌀밥 한 그릇을 정성들여 지었다. 백리해는 아내가 정성껏 장만하여 가지고 들어온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 그가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집을 떠나는데 두씨는 한손에 어린 아들을 안고 따라나섰다. 두씨가 다른 한손으로 떠나는 남편의 소매를 부여잡고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훗날 부귀(富貴) 공명하시거든 우리 모자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백리해는 머리를 끄덕이고 처량한 심사로 아내와 헤어져 벼슬길을 찾아 떠났다. 백리해는 우선 제(齊)나라로 갔다. 그 때는 제희공이 죽고 세자 제야가 군위를 이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제양공(齊襄公) 밑에서 벼슬을 살아보려고 작정하여 각방으로 애를 썼으나 아무도 그를 유력자에게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곤궁과 탄식과 슬픔 속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제나라 질 땅에서 마침내 문전 걸식을 하는 거지 신세가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40세였다. 그 질 땅에 건숙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건숙은 자기 집 문 앞에 와서 밥을 비는 한 거지를 보았다. 그 거지의 얼굴이 매우 비범했다.
"그대는 결코 밥을 빌어먹을 사람이 아닌데, 성명을 뭐라고 하시오."
"백리해라고 합니다. 팔자가 기박해서 이러고 다닙니다."
건숙은 그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담론했다. 백리해의 말은 청산에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고 조리가 정연했다. 건숙은 그의 지견이 출중함을 보고 탄식했다.
"그대의 재주로도 이렇듯 몰락했다니, 이거야말로 운수구려. 앞으로 우리 집에서 함께 삽시다."
이리하여 그들은 의형제(義兄弟)를 맺었다. 건숙이 백리해보다 한 살 위였으므로 그는 건숙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건숙의 집도 가난했다. 백리해는 동네 소를 길러 주며 약간의 식량을 얻어와 건숙의 부담을 덜어 줬다. 이 때 제나라는 공자 무지가 제양공을 죽이고 새로 군위에 올랐던 시기 였다. 군위에 오른 무지는 널리 어진 인재를 뽑는다는 방을 제나라 각 고을에 내걸었다. 백리해는 그 방을 보자 한번 응모해 보고 싶었다. 건숙이 조용히 타일렀다.
"죽은 제양공의 동생들이 지금 타국에 있는데 무지가 주공을 죽이고 군위를 뺏었으니 이러고야 어찌 앞날이 평탄할 수 있으리오. 더욱이 무지는 불평이 많고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다고 소문이 자자한 고약한 사람이라 그 밑에서 벼슬을 살 것이 아니오."
건숙의 말을 듣고 백리해는 제나라 서울로 가려던 생각을 그만 두었다. 그 뒤, 백리해는 다음과 같은 소문을 들었다.
"주(周)나라 왕자 퇴는 소를 매우 좋아한다고 하오. 그래서 소를 잘 기르는 사람에겐 후한 대접을 해 준답니다."
이 소문을 듣고서 그는 주나라의 왕자 퇴에게 가보기로 작정했다. 또 건숙이 마땅치 않다는 듯이 말했다.
"대장부는 경솔히 사람에게 몸을 맡기면 못 쓰오. 벼슬을 살다가 그 임금을 버리면 불충한 자가 되며, 못난 임금과 함께 고생을 끝까지 한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 아우는 이번에 갈지라도 조심하고 조심하오. 집안 일을 대충 처리하고 나도 아우의 뒤를 따라 주나라로 가겠으니, 그 때 우리가 함께 왕자 퇴의 인품을 보고서 앞일을 작정하기로 하면 어떻겠소."
이에 백리해는 건숙의 집을 떠나 주로 갔다. 주나라에 당도한 백리해는 즉시 왕자 퇴를 뵈옵고 소 기르는 법을 설명했다. 왕자 퇴는 크게 기뻐하고 장차 백리해를 높은 자리에 등용하려고 했다. 이 때, 건숙이 질 땅에서 주나라로 왔다. 그는 백리해와 함께 왕자 퇴를 만나보았다. 건숙이 궁에서 물러나오며 간곡히 말했다.
"퇴는 뜻은 있지만 재주가 없는 사람이오. 그는 아첨하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또 쓸데없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성격인지라, 내가 보기엔 그의 앞날이 좋을 것 같지 않소. 그러니 주나라를 떠납시다."
그러나 백리해는 다시 건숙을 따라가서 신세를 지기도 곤란했다.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백리해가 건숙에게 말했다.
"집을 떠난 지 하도 오래 되어서 아내와 자식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고향인 우나라로 돌아갈까 합니다. 형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건숙이 대답했다.
"지금 우나라에 어진 신하가 있는데 이름을 궁지기라고 하오. 나와는 전부터 잘 아는 사이지. 서로 못 본 지도 오래 되었으니 동생이 만일 우나라로 돌아가겠다면 나도 동생과 함께 가서 오랜만에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소."
이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우나라로 갔다. 백리해에겐 그간 그립고 그리웠던, 정말로 오랜만의 고국 산천이었다. 귀국하는 즉시 백리해는 자기 집으로 갔다. 그러나 그 곳은 집도 없고 빈터만 남아 있었다. 그간 두씨(杜氏)는 먹고 살아갈 길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떠났던 것이다. 이웃 사람에게 돌아가며 물어봤으나 간 곳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백리해는 하늘을 우러러 길이 슬퍼했다. 한편 건숙은 궁지기와 만나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백리해가 비범한 인물이란 걸 말했다. 궁지기는 쾌히 그를 우공에게 천거했다. 이에 우공은 백리해에게 벼슬을 줬다. 그런데 백리해가 벼슬을 받는 날 건숙이 우공을 보게 되었다. 건숙이 말했다.
"내 동생을 추천하기는 했소만 오늘에서야 우공을 보니 사람이 잘고 변변치 못함이라. 앞으로 동생에게 유망한 주인이 될 것 같지 않소."
백리해가 호소하듯 대답했다.
"이 동생은 너무나 가난하고 신세가 곤궁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땅 위에 놓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형편으로는 만사 제쳐놓고 우선 한 모금의 물이라도 얻어 마셔야 살겠습니다."
건숙이 위로하듯 대답했다.
"동생이 가난해서 벼슬을 살겠다면 내 굳이 말리진 않겠소. 다음날에 만일 나를 만나고 싶거든 송나라의 명록촌(鳴鹿村)으로 오게. 그 곳은 깊숙하고 아름답고 고요한 시골 마을이오. 나는 앞으로 그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살 생각이오. 동생은 몸성히 계시게."
건숙은 백리해를 남겨 두고 떠났다. 백리해는 형을 전송하고 우나라에 머물렀다. 이 때가 제나라에서는 무지가 죽고 제환공이 군위에 올라 관중을 정승으로 영입하여 한창 새로운 정책을 펴고 경제 개혁을 시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얼마가 지나자 제나라가 크게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관중이라는 인물이 소금 증산과 국제 교역, 그리고 유통 및 물자 보관의 혁신을 일으켜 경제 정책이 크게 성공하였으므로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이 놀랍도록 윤택해졌다는 것이었다. 백리해는 제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속으로 처음부터 제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싶어한 만큼 자신의 벼슬 복없음을 탄식했다. '모든 것이 팔자 소관이구나.' 그 후 우나라가 진나라에게 망하자 백리해는 말했다.
"내 지난날 지혜가 없어 건숙 형님의 말을 듣지 않고 우공을 섬겼거늘 이제 와서 충성심마저 없다면 어찌 인간이라 할 것이냐. 모든 정성을 다 바쳐 우공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을 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