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는 바로 군후(君侯)의 다음번 위치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임금께서 어디로 행차하시면 세자가 나라를 보살피며, 또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인 군후를 문안드리는 것이 직분입니다. 지금 세자가 도성을 떠나 먼 곳에 있는 것은 옳지 못하거늘 하물며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에 나가게 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한 일입니다."
진헌공이 대답했다.
"신생은 지금까지 여러 번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운 경험이 있다."
이극이 다시 간했다.
"지난날 세자는 상감을 모시고 싸움터에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자에게만 싸움을 맡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진헌공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과인에게 아들이 아홉이라. 아직 누가 군위를 잇게 될지 모르니 경은 과도히 근심말라."
이극은 더 간하지 못하고 궁에서 물러나와 호돌에게 가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말했다. 호돌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탄식했다.
"장차 신생 공자의 신변이 위험하겠구려."
이에 호돌은 신생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편지 내용은, 싸움터에 나가지 말라는 것과 싸워서 이기면 더욱 시기를 받는다는 것과, 그러니 아예 외국으로 몸을 피하라는 권고였다. 한편 곡옥에 있는 세자 신생은 부군(父君)의 명령을 받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호돌의 서신을 받았다.
"임금이 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러 가라 하니, 이는 나를 미워하는 동시에 내 속마음을 떠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의 명령을 어기면 그 죄가 가볍지 않다. 차라리 싸움터에 나가서 싸우다가 죽으면 오히려 역사에 이름이나마 남을 것이다. 내 어찌 외국으로 피해 달아나리오!"
신생은 마침내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로 떠났다. 그리고 직장이란 곳에서 고락씨의 군사와 크게 싸웠다. 신생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다. 싸우다가 죽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싸운 지 오래지 않아 고락씨는 신생의 용맹을 당해내지 못하고 대패하여 달아났다. 신생은 장수를 보내어 아버지인 진헌공에게 승첩을 고했다. 신생이 고락씨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문을 듣고 여희가 또다시 부추겨 말했다.
"세자는 참으로 병법에도 능하고 장병들도 잘 지휘하는군요. 그러니 이젠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어떡하면 좋겠나이까?"
"아직 아무런 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증거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진헌공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한편 노대신 호돌은 장차 진나라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다. 그는 병들었다 하고 이후부터 집안의 대문을 굳게 닫고 모든 바깥일과 전연 관계하지 않았다. 한편 이 일은 곧 세작을 통해서 제나라의 관중에게 전해졌다. 관중이 세자 신생을 걱정했다.
"진나라의 노대신 호돌마저도 칭병하고 누웠다니 이제는 누가 신생을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공자 신생의 처지가 참으로 곤궁하겠구나."
그날 저녁 관중은 일부러 포숙아를 청하고 북방의 두 나라 진(晋)과 진(秦)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할 일을 부탁했다.
"장차 패권이 북방 쪽으로 옮겨갈 듯하오. 미리 대비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오."
포숙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지 땅에서 동맹을 맺는 데 진헌공을 초대하면 좋지 않겠소? 그리고 그대가 세자 신생의 일을 슬며시 이야기한다면 좋을 테고....... 그리 해 두면 진헌공도 옛 정분을 생각하여 심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게 아니겠소."
관중은 포숙아의 견해대로 따랐다. 이렇게 해서 진헌공에게도 맹회에 초대하는 서신이 전해졌으나 거리가 멀다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시일이 걸리는 바람에 진헌공이 헛걸음을 했던 것이었다. 물론 관중과 포숙아가 세자 신생을 염려한 때는 아직 맹회가 열리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