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기회를 놓치고 귀국길에 오른 진헌공이 아픈 몸으로 겨우 나라의 경계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일대의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을 나오는 것이었다. 진헌공이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기별을 하지 않았거늘, 과인이 이 때 귀국할 줄을 어찌 알았느냐?"
마중 나온 신하들이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모두가 부인의 영험한 꿈 덕분입니다."
그들은 여희가 시킨 대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진헌공은 부인의 꿈이 영험하다는데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묻고 대답을 들었는데, 사실은 이러했다.
이야기는 한참 거슬러올라가 여희가 정부(情夫) 우시와 함께 세자 신생을 죽이고, 자신이 낳은 아들 해제를 세자로 앉히려는 계교를 짜는 데서 시작한다. 여희는 언제나 대낮에 밀회를 즐기고 나서는 우시에게 애교를 떨며 상의했다. 그렇게 해야 상대가 맥을 못추고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게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 기회가 왔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우시가 여희의 벗은 몸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세 공자가 모두 먼 곳에 있는데 누가 감히 부인의 일을 방해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치운다면 어찌 성공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여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세 명 모두가 나이도 많고 따르는 부하도 적지 않다네. 또한 세상의 경험이 많은지라 섣불리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네. 감쪽같이 해치울 좋은 계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네."
우시가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한 놈씩 차례차례로 없애 버리십시오."
여희가 바짝 다가갔다.
"누구를 먼저 없애야 할까?"
우시가 대답했다.
"물론 세자인 신생부터 없애야지요. 신생은 성품이 정결(精潔)하지요. 성격이 정결한 사람은 조금만 창피를 당해도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창피당하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을 자책하고 해치기 쉽습니다. 신생의 결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부인께서는 섣불리 신생을 모략해서는 성과가 없습니다. 우선 세자의 장점을 널리 활용하십시오. 그러면서 일변 다른 계략을 섞어 쓰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잠자리에서 갑자기 울면서 주공에게 호소하십시오. 악몽을 꾸었다거나 아니면 들은 소문이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우시의 말이 끝나자 여희는 마치 모든 일이 성사된 것처럼 매우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잠자리에서 호소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시를 흥분시켜 다시 한 번 음욕을 채운 후, 그를 내보내고 여희는 몹시 흡족해 했다. 과연 그날 밤이 깊어서였다. 한밤중에 여희는 훌쩍훌쩍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잠자던 진헌공은 놀라 깨어나서 그 우는 까닭을 물었다. 물어도 대답없이 여희는 울기만 했다. 진헌공은 여러 차례 묻다가 급기야는 속이 답답해서 왜 대답을 않느냐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요즘 와서는 잠자리에서 제대로 사내 구실조차 못하는 만큼 진헌공의 신경이 매우 예민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여희가 늘어지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첩(妾)이 대답한들 상감은 저를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첩이 우는 까닭은 별것이 아닙니다. 오래오래 상감을 모시고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헌공이 놀라 물었다.
"무슨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는고?"
여희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첩이 듣건대 신생은 그 성품이 밖으론 인자하고 안으론 참을성이 많다 합니다. 그는 곡옥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기 때문에 백성들이 신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사양치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생은 그 백성들을 적절한 때에 이용할 것입니다. 어찌 그걸 알 수 있는가 하면 신생은 사람들에게 곧잘 이런 소릴 한답니다. '아버지는 첩년에게 정신을 모조리 뺏겼소. 두고 보시오. 앞으로 우리 진나라에 큰 난(亂)이 있을 것이오.' 이건 소첩만이 들어 아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알 건만 유독 상감만이 모르고 계십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파가 일어나면 장차 그 재앙이 상감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첩을 죽여 주십시오. 그래야만 신생에게 사과(謝過)도 되려니와 그들의 공작(工作)을 미연에 막을 수 있습니다. 보잘것 없는 첩년 때문에 상감의 체통에 금이 가고 장차 백성들을 혼란의 구덩이로 몰아넣지 마십시오."
진헌공이 말했다.
"신생은 백성에게도 인자하다는데 어찌 아비를 거역하고 반역하겠는가."
여희가 더욱 정색하며 대답했다.
"첩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깥 사람들이 말하기를, '필부(匹夫)의 어진 것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의 어진 것과는 결코 같지 않다. 필부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으로 인(仁)을 삼지만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국가를 위하는 것으로 인(仁)을 삼는다.' 고 말합니다. 그러니 인자한 일과 부모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진헌공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라 감싸는 게 결코 아니오. 신생은 결백한 걸 좋아하니 어찌 누명(陋名)을 듣고자 원하리오."
여희가 슬며시 옛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주유왕(周幽王)은 의구를 죽이지 않고 신(申)나라로 추방했기 때문에 나중에 신후가 견융을 끌어들여 유왕을 여산 아래서 죽이고 의구를 군위에 세웠으니, 그가 바로 주평왕이며 동주(東周)의 시조입니다. 그후 오늘날까지 유왕이 덕없고 포악하다는 말은 있어도 아비를 죽게 한 평왕을 나무라고 나쁘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진헌공은 그제서야 머리끝이 갑자기 쭈뼛해졌다. 그는 덮고 있던 이불을 제치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부인 말이 옳소. 그러면 어찌해야 좋을 것 같소?"
여희가 대답했다.
"상감은 늙었다 핑계하시고 나라를 신생에게 내주십시오. 신생이 나라를 물려받고 뜻을 이루면 혹 상감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옛날에 곡옥과 익은 서로 한 조상의 핏줄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선군 진무공께선 익(翼)의 애후(哀侯)와 소자후(小子侯)를 죽이고 우리 진나라를 하나로 통일하셨습니다. 신생이 지금 뜻하는 바도 옛날의 상감이 하셨던 것과 추호도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속히 이 나라를 신생에게 넘겨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진헌공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 될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武)와 위(威)로써 모든 제후를 대했다. 내가 번연히 살아 있으면서 나라를 잃는다면 이는 무(武)라 할 수 없으며, 자식을 누르지 못하면 이는 위(威)라 할 수 없다. 무와 위를 잃으면 남의 지배를 받는 법이니, 그러고야 차라리 목숨을 끊어 죽느니만도 못하다. 앞으로 내가 달라질 것이다. 그대는 조금도 근심말라. 내 장차 이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리라."
여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근래 적적족(赤狄族)인 고락씨가 자주 우리 나라를 침범해서 두통거리인데 이왕이면 왜 신생으로 하여금 적적(赤狄)을 치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신생이 능히 장병을 잘 부리는지 못 부리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싸워서 지면 신생을 처벌할 수 있는 명목이 섭니다. 또 싸워서 이기면 장병을 잘 부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신생은 자기의 공로와 실력을 믿고 반드시 딴 뜻을 품을 것입니다. 그가 딴 뜻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그 때에 신생을 처벌하면 백성들도 다 복종할 것입니다. 좌우간 신생이 적을 무찔러 변방(邊方)을 평정한다면 또한 세자(世子)로서의 능력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공은 왜 신생을 곡옥 땅에 내버려 두고 그 능력을 부리지 않습니까."
"그 말이 옳다."
마침내 진헌공은 머리를 끄덕였다. 날이 밝자 진헌공은 서둘러 곡옥으로 사자를 보내면서 단단히 전하라고 다짐하며 말했다.
"즉시 곡옥에 가서 과인의 명령을 세자 신생에게 전하되, 곡옥 장병들을 모조리 거느리고 가서 적적족인 고락씨를 쳐부수라고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