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2. 주양왕의 즉위
규구 동맹
이 때는 송환공(宋桓公) 어설(御說)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뒤였다. 그럼 송나라 이야길 잠시 해야겠다. 송환공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세자 자부는 군위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자부는 공자 목이에게 나라를 맡아달라고 겸양했다. 그러나 공자 목이도 군위에 오르는 걸 거절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자부가 군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이번에 새로 동맹에 참석한 송양공(宋襄公)인 것이다. 이번에 송양공은 맹주인 제환공의 소집을 받고, 비록 상주의 몸이지만 열국과 맹주의 신의를 잃을 수 없다 해서 상복 차림으로 급히 규구 대회에 참석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말했다.
"송후(宋侯)는 나라를 사양한 일이 있는 참으로 덕 있고 어진 임금입니다. 더구나 상복을 입고 대회에까지 온 것은 우리 제를 크게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가히 공자 소를 위해 다음날 일을 부탁할 만합니다."
제환공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중부가 송후를 찾아가서 부탁을 좀 해주오."
그날 밤에 관중은 관사로 송양공을 찾아갔다. 그리고 제환공의 뜻을 전했다. 이튿날 송양공은 친히 제환공에게 갔다.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송양공의 손을 잡고 자기 아들 공자 소의 앞날을 신신당부했다.
"다음날 기회가 오면 군후의 힘을 받아 우리 제나라 사직이 안정되길 바라오."
송양공이 겸사했다.
"부족한 과인이 어찌 그런 큰일을 맡아 탈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송양공은 제환공이 자기를 이렇게까지 믿어 주는 데 대해서 감격했다. 그래서 송양공은 마침내 제환공의 부탁을 승낙했다. 대회 날이 됐다. 모든 제후는 의관을 정제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걸을 때마다 환패 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모든 제후가 서로 앞에 서는 것을 사양했다. 그래서 주천자의 명을 받고 참석한 주공 공이 앞에 서서 먼저 단위로 올라갔다. 그 뒤를 따라 제후들은 차례로 단 위에 올라섰다. 단(壇) 위엔 참석하지 못한 주양왕을 위해서 빈 자리가 마련되었다. 모든 제후는 왕이 앉아야 할 그 빈자리를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했다. 마치 그들은 조정에 나아가 친히 왕을 뵈옵듯이 조심스럽게 거동하였다. 절이 끝나자 그들은 각기 차례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천자의 사신인 주공 공이 주양왕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온 고기를 높은 상에 올려놓고 다시 동쪽을 향하여 비껴서서 신왕의 명을 전했다.
"천자(天子)가 문무에 일이 바쁠새 공(孔)을 대신 보내어 제후에게 이 고기를 하사하노라."
제환공은 그 고기를 받기 위해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고 몸을 돌렸다. 천사 주공 공이 돌아서는 제환공을 말렸다.
"천자께서 또 말씀하시길 방백 제환공은 연로할새 다시 벼슬과 직급에 일급을 가하노니 하배의 거동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환공은 계하로 내려가려다가 그냥 서서 받으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때 곁에 있던 관중이 깜짝 놀라 황망히 조그만 목소리로 제환공에게 속삭였다.
"주공은 겸손하소서. 신하로서 존경하는 예를 잃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제야 제환공이 즉시 큰소리로 말했다.
"천자의 위엄을 바로 지척에서 뵈옵는 거나 다름없으니, 이 몸이 어찌 거룩하신 왕명을 달게 받고 감히 신하로서의 직분을 버릴 수 있으리오."
즉시 단 아래로 내려가 재배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일어나 단 위로 올라가서 고기를 받으니, 모든 나라 제후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예의를 지키는 제환공을 보고 크게 감복했다. 제환공은 그 자리에서 각국 제후와 함께 새로이 동맹을 맺고 주오금(周五禁: 周나라가 천하에 발표한 다섯 가지 禁法)을 낭독했다.
주오금(周五禁)
첫째, 샘을 메우지 말 것
둘째, 곡식을 사고 파는 걸 막지 말 것
셋째, 자식을 바꾸어 후사를 세우지 말 것
넷째, 첩을 처로 삼지 말 것
다섯째, 여자는 국사에 간섭하지 말 것
제환공은 이를 낭독하고 나서 사람을 시켜 서사를 읽게 했다.
"무릇 우리가 함께 맹세함은 다만 친선하고 우호를 위함이로다."
모든 제후는 붓을 들어 맹세했다. 그들은 각기 제물을 높이 상 위에 바쳤다. 제환공이 새로운 법을 제의했다.
"이제부터는 맹회를 할 때 가축을 죽여 희생을 내는 것과 피를 입술에 바르는 것을 철폐합시다."
참석한 제후들이 크게 기뻐했다. 동맹의 대회를 마치고 제환공이 주공 공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건대 옛날 하(夏)나라, 상(商)나라, 그리고 주나라 초기에도 봉선(封禪)이란 것을 했다는데, 그 예식이란 어떤 것인지 좀 들려 주십시오."
왜 제환공이 갑자기 그런 걸 묻는지 몰라서 얼떨떨한 주공 공이 대답했다.
"태산에 제(祭) 지내는 것을 봉(封)이라 하고, 그 태산 줄기 중에 제일 작은 양부산(梁父山)에 제 지내는 것을 선이라 합니다. 태산을 봉하는 의식은 먼저 산 위에 흙을 쌓아 단을 세우고 금니(金泥)와 옥간(玉簡)을 차려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이것은 하늘의 공을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늘은 가장 높은 것이니, 가장 높은 산 위에다 흙을 높이 쌓는 것은 그 높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양부산을 선(禪)하는 의식은 지면을 쓸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 이것은 땅이 낮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들이란 풀로 수레를 만들고, 미자리 풀과 볏짚으로 자리를 만들고 제사를 지낸 후, 그것을 땅에 묻는데, 이것은 땅의 공을 감사하고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라, 상나라, 그리고 우리 주나라는 천명을 받고 일어났으며, 천지의 많은 도움을 입었기에 아름다운 보은 의식을 숭상했던 것입니다."
설명을 들은 제환공이 말했다.
"상나라는 밖에 도읍하고, 하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하고, 우리 주나라는 풍호(豊鎬)에 도읍을 정했기에 태산과 양부산이 도성(都城)에서 몹시 먼 지점에 있었소. 그래서 이 두 산을 봉하고 선하기에 힘들었겠지만 오늘날은 이 두 산이 과인이 다스리는 영역 안에 있소. 과인이 천자의 총애를 받아 몸소 이 봉선하는 대례를 올리고 싶으니, 모든 군후께선 뜻이 어떠하신지요?"
제환공이 기고 만장해서 교만스레 뽐내는 기색을 본 주공 공이 말했다.
"군후께서 굳이 하신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제환공이 약간 머쓱해져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내일 모든 제후와 이 일을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모든 제후는 각기 관사로 돌아갔다. 이날 관중이 묵고 있는 관사로 주공 공이 찾아갔다. 그가 관중에게 항의했다.
"대저 봉선(封禪)하는 것은 천자나 하시는 것이지 열국 제후의 자격으론 발설도 못하는 법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관정승께서는 어째서 제후가 그런 소릴 하는데도 한마디 하지 않고 끝내 간하지 않으셨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기이한 일이외다."
관중이 대답했다.
"우리 주공은 원래 승벽이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좀처럼 그 의사를 바로잡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안으로 가서 내 어떻든 한번 말해 볼 작정입니다."
그날 밤에 관중은 제환공에게 갔다.
"낮에 주공께서 봉선의 대전(大典)을 올리겠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진정이십니까?"
"왜 과인이 허튼 말을 할 리 있겠소."
"옛날로부터 봉선한 천자를 살펴보건대 무회씨를 비롯해서 주성왕에 이르기까지 겨우 일흔두 분(七十二家)이었습니다. 그들은 다 하늘의 명을 받고야 태산 양부에 가서 봉선했습니다."
제환공이 약간 화를 내면서 말했다.
"과인은 남쪽으로 초를 쳐서 소릉(召陵)에까지 이르렀고, 북으로 산융(山戎)을 무찔러 영지(令支)까지 가서 고죽(孤竹)을 평정했고, 서쪽으론 유사(流沙)를 건너 태행(太行)에까지 갔으나 모든 제후들 중에서 내 비위를 거스른 자는 없었소. 과인이 병차(兵車)로써 회(會)를 연 것이 세 번, 천하의 대세를 위해 회를 소집한 것이 여섯 번, 이렇게 모든 나라 제후를 불러 아홉 번이나 회합하고 오로지 천하를 바로잡았소. 비록 삼대(三代: 夏, 商, 周)가 천명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 하진 못했을 것이오. 태산을 봉하고 양부산을 선하여 이 일을 후대에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이 어째서 옳지 못하단 말이오?"
관중이 조용히 대답했다.
"옛날에 천명을 받았다는 것은 먼저 상서가 있고, 징조가 나타난 연후에야 물건을 갖추고 봉선하였기 때문에 그 예전이 매우 융숭했습니다. 옛날에 나타난 상서를 몇 가지 든다면, 효상산과 북리에선 한 대에 이삭이 많이 열린 나락이 생겨나서 한때 황금 시대를 이루었고, 강회(江淮) 사이에서는 이를 범상치 않게 여겨 영모(靈茅)라고 불렀답니다. 왕이 천명 (天命)을 받아야 이런 상서가 나타난다는 것은 옛 기록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 동해 바다엔 비목어(比目魚)가 몰려왔고, 서해엔 쌍쌍이 나는 비익조(比翼鳥)가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사람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저절로 나타난 이런 상서가 열다섯 가지나 있어, 다 옛 기록과 사기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봉황과 기린은 나타나지 않고, 모여드는 것이라곤 소리개와 올빼미들 뿐입니다. 훌륭하고 기이한 나락은 생겨나지 않고 잡초만 무성합니다. 이런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봉선을 한다면 모든 나라의 안목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손가락질하고 우리 제나라는 물론이고 주공마저 비웃을 것입니다."
관중의 말이 끝나자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부의 말을 알아듣겠소."
이튿날 이후부터 제환공은 어느 자리에서 건 봉선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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