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군이 허성(許城)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이 소식은 곧 전해졌다. 마침내 모든 나라 제후는 허나라가 초군에게 포위됐다는 보고를 받자 과연 정나라를 버리고 허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제환공이 이끄는 연합 군대가 정나라 포위를 풀고 서둘러 허나라에 당도했을 때 이미 초나라 군사는 자기 나라로 물러가고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한편 신후는 기세 좋게 정나라로 돌아갔다. 그는 이번에 정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다 자기 공로라고 자랑하며 은근히 벼슬과 상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문공은 지난날 신후가 제.초 우호 동맹을 맺을 때 제환공에게 아첨하여 호노 땅을 받은 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후에게 벼슬과 상을 더 주지 않았다. 신후는 마음속으로 정문공을 깊이 원망했다. 그 이듬해 봄이었다. 제환공은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치러 정성으로 향했다. 이 때 진(陳)나라 대부 도도가 정나라 대부 공숙에게 서신을 보냈다. 공숙이 도도의 서신을 펴서 읽었다.
- 신후는 전날 제.초 우호를 맺을 때 정나라를 팔아 제에게 아첨하고, 홀로 호노 땅을 상 받았으며, 이번엔 또 정나라를 팔아 초나라에게 아첨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귀국 군후로 하여금 배은망덕하게 하고 스스로 싸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렇듯 불행이 정나라 백성과 사직에까지 미치게 된 것은 누구의 탓입니까. 반드시 간악한 신후를 죽여야만 제나라 군사는 돌아가리이다.
대부 공숙은 그 서신을 정문공에게 가져다가 보였다. 정문공은 전날 수지 땅에서도 공숙이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동맹하기 전에 달아나듯 돌아왔던 생각을 했다. 그 후 두 번이나 제군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정문공은 지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정문공은 마음속 깊이 신후의 행동을 믿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정문공은 단단히 마음을 다지고 분부했다.
"신후(申侯)를 불러 오너라."
한편 정문공의 부름을 받은 신후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하고 기세 좋게 궁으로 들어갔다. 정문공이 꾸짖었다.
"너는 전날 과인에게 말하기를, 오직 남방의 초라야 능히 제나라를 당적할 수 있다고 거듭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 제나라 대군이 다시 우리 나라를 치고 있다. 초나라 구원병은 어데 있느냐?"
신후는 속으로 뜨끔했으나 그럴 듯한 구변으로 변명하여 이 어려운 국면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는 얼굴을 들어 무슨 말인가 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문공은 그에게 말 한마디를 해 볼 여가조차 주지 않고 좌우의 무사에게 분부했다.
"속히 저 놈을 끌어내어 참하여라."
구변 좋고 수단 많은 신후도 드디어 운이 다했다. 무사에게 끌려나간 신후는 얼마 후 머리만 나무 함 속에 담겨 들어왔다. 공숙은 신후의 머리가 들어 있는 함을 가지고 제환공에게 가서 바치며 간청했다.
"우리 주공께서 지난날 신후의 간특한 꼬임에 빠져 맹회를 배반하고 군후를 저버리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깊이 뉘우치며 간악한 자를 참하여 신으로 하여금 이렇듯 죄를 청하게 하셨습니다. 군후께서 우리의 허물을 살피시고 용서하소서."
제환공은 원래 공숙의 현명함을 알고 있던 터라 이를 용서해 줬다. 그 후 모든 제후는 제나라 영모 땅에 모여 회합하기로 했는데, 정문공은 주혜왕의 밀서 때문에 태도를 확고히 정하지 못하고 세자 화를 자기 대신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