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1. 수지 동맹
크게 기뻐하는 초성왕
다음날 정문공이 귀국 인사도 없이 떠났다는 보고를 받고 제환공은 크게 분노했다.
"당장 태자를 받들고 각국 군사들을 모아 정나라로 쳐들어가야겠다!"
관중이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정과 초는 서로 접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백이 이토록 무례한 이유는 반드시 주나라 사람이 와서 정을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제후 한 사람쯤 갔다고 해서 우리의 큰 계획에 지장이 될 건 없습니다. 더구나 태자를 위해 동맹할 기일도 임박했습니다. 동맹이 끝난 후에 정문공의 죄를 밝히고 대군을 일으켜 정나라를 쳐도 늦지 않습니다."
"그 말대로 하겠소."
제환공은 분노를 참았다. 수지(首止)는 위나라 땅이다. 그래서 제환공이 솟구치는 분노를 달랬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모든 나라 제후는 수지의 옛 단(壇)에서 입술에 피를 바르고 맹세했다. 그들은 제(齊),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조(曹) 일곱 나라 제후들이었다. 태자 정만 입술에 피를 바르지 않았다. 즉,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모든 제후는 태자를 조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적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맹서(盟書)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우리는 함께 동맹을 맺고
다 함께 태자를 도우며
왕실을 바르게 세운다.
이 맹세를 배반하는 자가 있으면
신명이여 그를 용서하지 마소서.
이리하여 모든 제후의 동맹은 끝났다. 태자 정이 계단을 내려와 각 제후에게 일일이 읍하며 감사했다.
"제군(諸君)이 선왕의 영을 우러러 오늘날의 주왕실을 잊지 않으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리 주나라 역대 왕께서도 다 그 당시 모든 제후의 힘을 입었으니 태자인들 어찌 모든 제후의 이렇듯이 높은 은혜를 잊겠습니까."
모든 제후는 더욱 황망하여 엎드려 태자에게 크게 절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튿날 태자 정은 크게 흡족하여 낙양 조정을 향해 귀로에 올랐다. 모든 나라 제후는 수레와 군사를 거느리고 태자 정을 도중까지 호송했다. 특히 제환공은 위문공과 함께 위나라 경계까지 가서 태자를 전송했다. 태자 정은 석별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제환공과 작별하고 떠나갔다. 한편, 정문공이 수지에서 동맹을 하지 않고 혼자 빠져 귀국해 왔다는 소문을 들은 초성왕(楚成王)은 매우 기뻐하며, 정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작정을 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을 정나라 대부 신후에게 보내어 초나라와 우호를 맺도록 지령을 내렸다. 원래 신후는 구변이 좋고 아첨하는데 능하며, 초왕을 섬기던 사람이었다. 지난날 신후가 초나라에 있을 때, 그는 초문왕의 신임을 받았었다. 초문왕은 임종 때 신후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 염려해서, 그에게 귀한 구슬을 주며 다른 나라로 가서 살도록 권했다. 이만큼 신후는 남에게 시기를 당할 만큼 초문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마침내 초왕이 죽자 화를 당할까 겁이 난 신후는 정나라로 귀화하여 그 당시 역 땅에서 불우한 처지에 있던 정여공을 섬겼다. 그후 신임과 총애를 받아, 정여공이 본국에서 복위하자 신후는 실력자가 됐다. 그래서 초나라 신하들은 거의가 옛부터 신후와 잘 아는 관계였고, 초성왕은 이를 이용해 제와 절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초성왕의 지령을 받은 신후 역시 장차 자신의 출신지 초나라와 관계를 돈독히 해두고 싶었던 차라 정문공에게 비밀히 아뢰었다.
"초가 아니면 제를 당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왕명이 있으니, 이 때 확실한 결정을 못하면 우리는 제와 초 양국에게 원수를 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세상 천지에서 의지할 곳이 없게 되옵니다."
신후의 말을 듣고 당황한 정문공은 신후를 초나라로 보내 비밀히 우호를 맺었고 이에 더욱 분노한 제환공은 동맹한 모든 나라 제후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치게 되었다. 때는 주혜왕 26년의 일이다. 제환공이 이끄는 연합군이 사방에서 정성을 철통같이 에워싸니, 정나라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구원을 청하니 그 때 초나라에 가 있던 정나라 대부 신후가 이 소식을 듣고서 초성왕에게 호소했다.
"정나라가 중원의 대열에서 떠나 귀순한 것은 초나라가 능히 제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위급한 때 우리 나라를 구출해 주지 않으시면 제가 어찌 얼굴을 들고 귀국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대왕께서는 우리 처지를 살펴 주십시오."
초성왕이 이 말을 듣고 신하들과 상의하니 영윤 자문이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전날 신이 연합군을 거느리고 소릉까지 갔을 때 허목공이 군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후는 허후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고 또한 허나라가 제나라를 위해 가장 힘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하오니 왕께서는 이 기회에 허나라를 치시면 제환공과 연합군은 반드시 허나라를 도우러 갈 것이니 정나라 포위는 저절로 풀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초성왕은 옳다구나 하여 친히 병차를 거느리고 허나라로 쳐들어갔다. 물론 허나라와 싸울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장 차림의 군대를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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