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적(狄)이 쳐들어왔습니다. 위성(衛城)이 위태롭습니다. 구원병을 보내 주십시오."
위나라 사자는 다급하게 청했다. 그런데 제환공은 선뜻 응하지 않았다.
"오랑캐 산융을 친 여독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도다. 좀더 버텨 보라고 하여라. 과인이 열국의 제후들과 연락하여 구원할 방도를 찾아보겠노라."
의외의 말을 듣고서 제나라 대부들은 깜짝 놀랐다. 그 때까지 다른 나라에서 구원을 청해 오면 두말없이 구원병을 일으켜 몸소 나섰던 제환공이 아니었던가. 대부들은 차례로 나아가 '위나라를 구원하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제환공은 거듭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부들은 몰려서 관중의 부중으로 갔다.
"위나라를 구원해야 합니다."
대부들이 주장했다. 관중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요. 오랑캐로부터 구해야지요."
대부들은 그제서야 관중을 앞장 세워 제환공에게 가서 곧 위나라 구원병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관중은 뒤로 빼는 것이었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 위나라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
그런 정도의 뜻을 슬며시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대부들은 막무가내로 관중을 졸랐다.
"위나라를 구원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급한 일입니다. 자칫 오랑캐가 중원에 진출하게 되면 이는 방백인 우리 제나라의 수치가 됩니다."
대부들의 주장은 모두가 이러했다. 대부들의 주장을 듣고 있던 관중이 그들을 돌아보면서 슬쩍 물었다.
"대부들께서는 마치 사람처럼 녹(祿)을 받는 학대부(鶴大夫), 그 다음의 녹을 받는 학선비, 학장군(鶴將軍)이란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대부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대꾸를 못했다. 그때서야 관중이 위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 하늘에 정의가 있다면 이 놈의 나라는 크게 혼날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했다.
이것이 위나라 백성들이 궁중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날에 세자 급자(急子)가 원통하게 죽은 걸 매우 동정하면서부터였다. 결국 급자와 공자 수가 죽고 군위에 오른 것은 성질이 고약한 위혜공 삭(朔)이었다. 백성들은 이 때부터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이 놈의 세상은 착하면 손해 보고 악독하면 득을 보는 형편없이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욕했다. 그후 공자 예와 직이 들고 일어나 위혜공을 몰아내고 급자의 동생 금모를 새로운 군위에 앉혔다. 백성들은 이를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제양공이라는 희대의 난봉꾼이자 여동생을 정부삼아 매부를 죽인 자가 연합군을 모아가지고 위혜공을 복위시키자 백성들은 더욱 궁중을 저주했다. 위혜공은 복위한 이후 별 업적이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왕실의 반란자를 돕는 등 오히려 잘못만 많이 범했다. 그리고 죽었다.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적립(赤立)이 군위에 오르니 그가 위의공이다. 위의공은 원래가 천성이 게으르고 이상하게도 날짐승을 특히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는 국사를 돌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짓거리만 했다. 그러다 보니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위의공에게 잘 보이려면 빛깔이 깨끗하고, 모양이 맑고, 능히 울고 춤을 잘 추는 학(鶴)을 진상하면 된다."
사냥꾼들은 백방으로 쏘다니며 학을 잡아다 위의공에게 바쳤다. 그 때마다 위의공은 사냥꾼에게 큰 선물을 내렸고, 학을 기르기 위해 특별한 먹이를 구했다. 마침내 위나라 백성들은 학을 위해서 굶주릴 지경이 되었다. 대부 석기자와 영속은 누차 위의공에게 학 기르기를 그만두라고 간했다. 위의공은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공자 훼가 간했다. 위의공은 오히려 화를 냈다. 공자 훼는 그래서 제나라로 망명했다. 백성들은 공자 훼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 훼가 위의공에게 쫓겨나다시피 외국으로 가버린 것이다. 백성들은 이후 위의공을 극도로 미워하게 되었다. 그 공자 훼가 지금 제나라에서는 어떠한가? 그는 제환공의 맏사위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공자 훼가 선강과 공자 석 사이에 태어났으니 제환공에게는 누님의 아들, 즉 조카이다. 그리고 공자 훼는 현명하고 덕이 있었다. 그런데 제나라에 와 있는 위나라 공자가 또 있었다. 그가 바로 개방으로서 위의공의 큰아들이다. 그 개방이 6년 전에 제환공을 따라와서 지금은 제나라의 대부 벼슬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