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첨은 마침내 부하의 계책을 받아들여 심복 부하에게 밀서를 주어 공자 돌에게 보냈다.일을 이쯤 꾸미고 났을 때 해가 동편에서 솟았다. 부하는 시치미를 떼고 서둘러 궁으로 들어가 의를 만났다.
"제군이 옛날 임금 돌과 함께 쳐들어오는 바람에 대릉 땅이 멸망했습니다."
의가 크게 놀랐다.
"과인은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해야겠다. 초군이 오기를 기다려 협공하면 제군일지라도 가히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곧 숙첨을 불러 사자를 보내라고 분부했다. 그러나 숙첨은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틀이 지나도록 구원을 청하는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지 않았다. 세작(細作)이 와서 보고했다.
"군사가 성 아래 이르렀습니다."
숙첨이 의에게 말했다.
"신이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주공은 부하와 함께 성에 올라 굳게 지키십시오."
의는 그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성 밖에선 정여공 돌과 숙첨이 미리 약조한 그대로 함께 거짓으로 맹렬히 싸우는 척하는데, 빈수무가 제군을 거느리고 질풍처럼 들이닥쳤다. 이를 보자 숙첨은 급히 병차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하가 성 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군사가 패하는구나!"
이 말을 듣자 의는 부리나케 성을 내려가려고 돌아섰다. 순간 부하가 칼로 의의 등을 찍었다. 악!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의는 죽어갔다. 부하는 즉시 성문을 열도록 호령했다. 돌 일행은 물밀듯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부하는 먼저 의의 두 아들을 죽이고 정여공 돌을 군위에 모셨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 동안 세상이 뒤바뀌기를 여러 번, 거기다가 정여공의 오랜 망명 생활을 동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 군위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여공을 열렬히 환영했다. 정여공은 군위에 올라 17년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임금이 되었다. 그는 우선적으로 빈수무에게 후한 예물을 주고 다짐했다.
"오는 10월에 과인이 친히 제나라에 가서 제후를 뵙고 동맹을 청하리이다."
이렇게 하여 빈수무는 맡은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고 병사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한편, 빈수무를 후히 대접하여 보낸 정여공은 곧바로 부하를 잡아들이라고 분부했다.
"그 놈은 대릉을 지킨 지 17년 동안 언제나 계략을 꾸미고 전력(全力)을 기울여 과인에게 항거했도다. 이번에는 목숨을 탐해 전 임금을 죽이고 과인에게 충성하니 참으로 그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측량할 수 없도다. 끌어내 참하여라. 그리고 그 놈의 목을 내걸어 전 임금의 원수를 갚았다고 성 곳곳에 방문을 내걸어라."
부하는 마침내 목이 잘리어 죽었다. 그리고 지난날의 죄를 물어 공자 알을 죽였다. 숙첨은 살려 주는 대신 다리를 잘랐다. 이후 정여공은 숙첨을 모셔다 정경으로 삼았는데 그건 3년이나 지난 뒷날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