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1. 관중, 드디어 재상의 자리에
방백의 도리
"내정이란 무엇이오?"
"내정의 법(法)이란 나라를 스물 하나의 향(鄕)으로 나누되, 공상(工商)의 향 여섯을 두며, 선비(士)의 향 열다섯을 두어 공상은 재물을 충족하게 하고, 선비로 병력을 충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병사가 충족될 수 있소?"
"다섯 집(五家)을 궤(軌)라 하여 궤에 장(長)을 두고, 열 개의 궤를 이(里)라 하여 이에 유사(有司)를 두고, 네 개의 이(里)를 연(連)이라 하니 연에다 장(長)을 두고, 열 개의 연을 향(鄕)이라 하니 향에는 양인(良人)을 두시옵소서. 즉 다섯 집을 궤라 하니 고로 오 인(人)이면 오(伍)가 되어 궤장(軌長)이 그들을 거느리고, 십 궤는 이(里)니, 오십 명이면 소융(小戎)이 되어 유사(有司)가 그들을 거느리고, 사 리(里)는 연(連)이니 이백 인이면 졸(卒)이 되어 연장(連長)이 그들을 거느리고, 십 연(連)을 향(鄕)이라 하니 이천 명이면 여(旅)가 되어 양인(良人)이 그들을 거느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 향(鄕)이면 일 사단(師團)이 되기 때문에 만 명을 일 군(軍)이라 하고 오 향(五鄕)의 사(師)가 그들을 거느리며, 십오 향이면 삼만 인이 징집되기 때문에 이들을 세 군으로 나누어 군주(君主)는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공자(公子) 두 분이 각기 한 군씩 거느리고 사시사철의 여가를 이용해 사냥을 하십시오. 봄에 사냥하는 것을 수라 하나니 새끼 배지 아니한 짐승을 잡으며, 여름에 사냥하는 것을 묘(苗)라 하나니 곡식에 해가 되는 짐승을 잡으며, 가을에 사냥하는 것을 선이라 하니 가을 살기(殺氣)에 응(應)하며, 겨울에 사냥하는 것을 수(狩)라 하나니 둘러싸고 지킴으로써 성공을 고함과 동시, 평소부터 백성으로 하여금 무사(武事)를 익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오(單位)를 리(里)에서 정제(整齊)하며, 군려 (軍旅)를 교(郊)에서 정제하고, 안으로 가르쳐서 이미 성취시키면 다시 변경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오(伍)의 사람들은 서로 함께 제사(祭祀)하고 복을 빌며, 죽은 이를 함께 장사하고, 불행한 일이 있으면 서로 전하고, 집집마다 서로 합하여 대대로 함께 살고, 어릴 때부터 서로 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유사시에 싸움이 벌어지면 밤중이라도 어긋나지 않으며, 백주의 전장에서도 서로 흩어지지 않으며, 함께 기뻐하며 함께 죽을 수 있으며, 죽은 사람을 위해선 서로 슬퍼하며, 지킬 때엔 서로 견고하며, 싸울 때엔 함께 강하니, 삼만 명만 있으면 족히 천하를 눈앞에 두고 경영할 수 있습니다."
제환공이 또 물었다.
"병세(兵勢)가 강하면 가히 천하 모든 열국의 제후를 정벌할 수 있겠소?"
"아니 되옵니다. 우리가 주왕실(周王室)에 항거하면 이웃 나라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주공께서 열국 제후의 위에다 뜻을 두신다면 우선 주(周)왕실을 존중하시고 그 바탕 위에서 이웃 나라와 친교를 맺으시옵소서."
"어찌하면 그렇게 될 수 있소?"
"우선 제나라 지역을 튼튼히 하고, 이미 침범한 남의 나라 땅을 돌려주고, 다시 가죽과 폐백으로 우호를 맺으면 모든 나라가 우리와 가깝고자 할 것입니다. 또 선비 팔십 명에게 수레와 말과 의복과 많은 폐백을 주어 사방에 두루 노닐게 해 천하의 선비들을 불러오게 함과 동시에 사람을 시켜 가죽과 비단과 진기한 물품을 가지고 사방에 팔러 다니게 하여 모든 곳의 좋아하는 바를 살피게 하여, 잘못 있는 나라만 골라서 공격하여 국토를 넓히고, 임금을 죽이고서 자리를 뺏은 자만 골라 죽여도 가히 위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의 모든 제후가 서로 다투어 우리 제나라에 와서 조례(朝禮)를 드릴 터인즉 그러한 연후에 모든 제후를 거느리고 주(周)를 섬기되 열국 제후들이 천자(天子)에 대한 공물(貢物)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채근하고 감독하면 이것이 바로 주왕실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비록 주공께서 방백(方伯: 열국(列國) 제후들의 長이란 뜻)의 칭호를 거절하실지라도 세상 천하 모두가 다 권할 것입니다."
관중, '중부'로 호칭
제환공과 관중은 의기가 서로 통해 삼 일 낮밤을 두고 담론(談論)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피곤한 줄 몰랐다. 삼 일 밤을 지샌 후 제환공은 관중에게 크게 감복했다. 그래서 관중에게 정승의 직인을 주고자 했다. 관중이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큰 집을 지으려면 한 나무의 재목으로는 안 된다고 하더이다. 그것은 마치 큰 바다도 한 줄기의 흐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주공께서는 꼭 그 큰뜻을 성취하고자 하실진대 동시에 다섯 명의 걸출한 인재들을 등용하십시오."
제환공이 물었다.
"다섯 인걸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진퇴주선(進退周旋)하는 예의와 언변(言辯)의 판단은 신이 습붕만 못합니다. 하오니 습붕을 대사행(大司行)으로 삼으십시오. 땅의 이익을 거두는 것은 신이 영월(寧越)만 못합니다. 청컨대 영월을 대사전(大司田)으로 삼으십시오. 또 넓은 평원을 나아가되 병졸들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하는 데엔 신이 왕자 성부(成父)만 못합니다. 왕자 성부를 대사마(大司馬)로 삼으십시오. 또 옥사를 판결하되 중용을 잃지 않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죄 없는 자를 모함하지 않는 것은 신이 빈수무(賓須無)만 못합니다. 청컨대 빈수무를 대사리(文理理)로 삼으십시오. 충성으로써 간하며, 부귀(富貴)로도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신이 동곽아(東廓牙)만 못합니다. 동곽아를 대간(大諫)으로 삼으십시오. 주공께서 국가를 다스리고 병력을 굳게 하시려면 이 다섯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도 주공께서 다시 패업(覇業)을 원하신다면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미미한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제환공은 드디어 관중을 정승으로 삼고, 국중의 시조(市租) 1년분을 그에게 녹(祿)으로 주고, 관중이 천거한 그대로 습붕 이하 다섯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고 각기 맡은 바를 다스리게 하였다.
한편 방(榜)을 내걸어 어진 인재를 구하는 한편 제환공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벼슬아치들의 실천 강령을 선포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제나라는 나날이 내정의 면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환공이 하루는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은 오래 전부터 사냥을 즐기고 싶었소이다. 이것이 장차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롭지 않겠소?"
관중이 대답했다.
"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해롭겠소?"
제환공이 물었다.
"어진 사람을 쓰지 않으면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롭습니다. 그리고 어진 사람을 쓰되 신임하지 않으면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로우며, 어진 사람을 신임하면서도 맡겨 놓지 않으면 그 또한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롭습니다."
제환공이 크게 감탄하여 일을 맡긴 사람을 신뢰하여 대하며, 그 상징으로 정승인 관중을 중부(仲父)라 부르면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예로써 대우했다.
이 치국지도(治國之道) 문답은 관중의 여론 정치와 경제 우선 정책은 물론, 군사 활용에 대한 그의 식견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군세(軍勢)를 통한 시위나 때로는 간접적인 압력 수단으로 군사를 이용하여 외교력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장차 그의 수완과 더불어 제환공이 춘추 오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되는 데 있어 가장 빛나는 치세(治世)를 형성하게 된다.
2. 나물 먹는 이와 고기 먹는 이
제나라의 先攻
한편 노장공은 제나라에서 관중을 죽이기는 커녕 오히려 정승으로 모셨다는 소문을 듣자 크게 분노했다.
"과인이 시백의 말대로 하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로다. 내 이렇듯 우롱당한 수모를 어찌 갚으리오."
노장공은 마침내 병사를 일으켜 지난날 건시(乾時) 땅에서 패전한 원수를 갚고자 했다.
"병차를 징발하여라. 잃어버린 문양(汶陽) 땅을 되찾고 속임수 쓰는 제나라 놈들을 혼내 주고 말리라."
한편 세작에 의해서 노나라의 움직임은 곧 제환공에게 보고되었다.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이 새로 군위에 오른 만큼 자주 국내의 땅에서 싸움을 당하기는 싫소. 차라리 우리가 먼저 노나라로 쳐들어가 노장공을 혼내 주는 게 어떻겠소?"
관중이 말렸다.
"아직은 이릅니다. 지금 우리의 병차와 정사(政事)가 모두 안정되어 있지 못할 때 원정군을 일으킨다는 것은 길(吉)보다 흉(兇)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환공은 노나라를 크게 깔보고 있었다.
"지난번 싸움에서 혼났을 터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를 업신여기니 과인이 징벌하지 않을 수 없다."
제환공은 관중의 진언을 무시하고 포숙아에게 노나라 징벌을 명했다. 포숙아는 장군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노나라 장작(長勺) 땅으로 쳐들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