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과인의 신발 한짝이 없느냐? 속히 비(費)를 불러라."
제양공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비가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미처 주워 오지 못했습니다."
제양공은 그 말을 듣더니 화락 눈길에다 불을 담았다.
"네 놈도 그 짐승이 팽생으로 보이더냐?"
제양공이 난데없이 소리를 치더니 가죽 매를 들어 어디고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내리갈겼다.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비(費)의 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제양공은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북새통에 사문구 신발 한 짝을 챙기지 않았다 하여 비(費)는 모진 매를 맞고 초죽음이 되어서야 내팽겨쳐졌다. 그리고 궁 밖으로 쫓겨났다. 그가 겨우 기운을 차려 무거운 다리를 끌며 궁전을 나서려고 했을 때, 궁은 이미 연칭과 관지부가 이끄는 반란군에 의하여 빈틈없이 포위당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궁에서 나오는 비(費)에게 달려들어 결박한 후 연칭 앞으로 끌고 갔다. 연칭이 그에게 물었다.
"음탕 무도한 임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침실에 있는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연칭은 더 묻지 않고 칼을 뽑아 비의 목을 참하려 했다. 비가 애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 등을 보시고 죽이십시오. 그때는 죽여도 좋습니다."
"죽을 놈이 등짝을 봐달라니......."
연칭은 부하 병사를 시켜 웃옷을 벗기게 했다. 등판은 피떡으로 뭉쳐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게 무엇인가?"
"바로 그 음탕 무도한 임금이 가죽 채찍으로 때린 것입니다. 원한을 갚게 해 주십시오. 그 무도한 임금이 죽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비는 눈물을 뿌리며 절절하게 매달려 호소했다. 연칭의 마음이 흔들렸다.
'저런 정도로 매질을 당했다면.......'
"좋다. 네가 안내하라."
마침내 연칭이 허락했다. 비는 연칭과 내응하기로 약속을 하고 다시 이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는 연칭과 날랜 무사들이 따랐다. 얼마쯤 안쪽으로 들어가자 비가 말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비는 혼자서 뒤채로 갔다. 그 곳은 석지분여가 있는 곳이었다.
"큰일났습니다. 지금 난데없이 대부 연칭이 무장하고 나타나 변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비는 귀뜸을 해 주고는 다리를 절면서도 급히 제양공의 침실로 달려갔다. 그는 제양공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한 잡인(雜人) 신분이지만 벌써 3대째 제나라 궁중에서 잡일을 해 오는 비로서는 아무리 심한 대접을 받아도 주인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침실로 들어갔을 때 제양공은 아직도 머리를 흔들며 안면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착란 증세가 아직도 걷히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양공은 뛰어들어오는 비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무시무시한 광폭함을 담고 있었다. 비는 비틀거렸다. 갑자기 등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소나 돼지처럼 비명을 지르며 죽을 듯이 아파 몸부림치던 자신의 흔적이 침실 바닥에 엉겨 있었다. 그 핏자국은 벌써 검정색으로 흉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비는 주인을 향해 고했다.
"지금 대부 연칭이 군사를 이끌고 변란을 일으켰습니다.주공께서는 속히 이 곳에서 피하십시오."
제양공이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바뀌더니 어쩔줄 몰라 쩔쩔매기 시작했다.
"일이 몹시 급합니다."
"어디로....... 어디로 가란 말이냐?"
제양공은 애타는 시선으로 비를 바라보았다.
"빨리 이쪽으로 오십시오."
비는 침실 바깥에 있는 은밀한 곳의 벽장 문을 열었다. 비는 그 문을 열고는 제양공을 재촉했다.
"어서 이 속에 숨으십시오."
제양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속으로 들어갔다. 비는 밖에서 벽장문을 닫았다. 자세히 보니 그 문은 마룻 바닥에서 약 한 뼘 가량 벌어져 있어 제양공의 발이 밖에서 보였다. 방구석에 발판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비는 얼른 그것을 가져다 벽장문과 마루가 벌어진 곳에다 기대 놓았다. 그러자 보이던 제양공의 다리가 가려졌다. 그 때 맹양이 침실로 뛰어들었다.
"주공은... 주공은 어디 계시느냐?"
맹양이 숨가쁘게 소리쳤다. 비가 대답했다.
"주공은 몰래 숨으셨습니다. 그러니 어서 한 사람을 구해 가짜 임금이 되어 침상에 눕게 하십시오. 그들이 창졸간에 구분하지 못하면 혹 재앙을 면할지 모릅니다."
맹양이 말했다.
"이 난리에 어디 가서 사람을 구하겠느냐. 내 주공의 은혜를 입었으니 대신 죽으마."
맹양이 침상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 자기 얼굴을 덮었다. 비는 얼른 벽에 걸린 비단 도포를 벗겨 맹양 위에 덮어 주며 말했다.
"저는 가서 연칭을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다가 죽겠습니다.나중에 저승에서 뵙지요."
맹양이 물었다.
"네 등이 아프지 않느냐?"
"임금을 위해서인데 어찌 그 정도가 대수입니까? 저에 대한 염려는 결코 마십시오."
맹양이 누운 채로 탄식했다.
"참으로 그대야말로 다시 없는 충신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