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어 관중이 공자 규의 스승이 되었고, 얼마쯤 지나서 제양공이 귀국했다. 그는 귀국하자 성대한 승전 축하 잔치를 여는 등 대대적인 개선 환영식을 가졌다. 제양공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분부를 내렸다.
"이제 제나라의 위엄이 사방에 널리 퍼졌도다. 그래서 규구 땅 변방에 수비대를 두고, 임치성도 크게 개축하여 위엄을 드높이고자 하노라."
이 분부를 받은 신하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 때 맹양이 앞으로 나섰다.
"변방을 지키는 일은 나라를 안전케 하는 일이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의 개축은 곧 씨앗을 뿌리는 봄철이 되므로 연기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제양공은 원래 맹양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고 있었다.
"그럼 변방 수비는 누구에게 맡겨야 좋겠소?"
맹양은 벌써부터 연칭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곧 아뢰었다.
"규구 땅은 매우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주공의 측근 중에서 맡았으면 합니다."
맹양은 제양공의 눈치를 살핀 후 아예 못을 박았다.
"대부 연칭은 연비의 친척이니 주공의 일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적임자로 봅니다."
이렇게 되니 연칭은 어쩔 도리가 없이 변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는 부장(副將)에 관지부(官之父)라고 하는 장수를 추천했다. 제양공은 이를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연칭이 수비대장이 되어 관지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변방 규구 땅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두 장수는 병사들을 사열하고 궁으로 가서 제양공에게 신고했다. 이어 관지부가 아뢰었다.
"변방을 지킨다는 일이 자랑스런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의 대부분은 가족과 헤어지게 되므로 어려움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언제 교대 병력이 오게 되는지 관심이 높게 됩니다. 저희들은 그렇습니다만 병사들을 위해 교대 시기를 정해 주십시오."
제양공은 마침 참외를 먹고 있었다.
"음, 지금이 참외가 익기 시작하니 내년 이맘때에 교대할 병력을 보내리라."
두 장수는 사은숙배하고 물러나 군사를 이끌고 변경의 규구 땅으로 갔다. 연칭과 관지부가 규구 땅으로 가서 변방을 지킨 지 일 년이 되었다. 어느 날 부하 병사들이 참외를 바치며 아뢰었다.
"참외가 익었기에 따 왔습니다. 벌써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지났나 봅니다."
관지부가 참외를 먹으며 의아해 했다.
"정말 주공께서는 참외가 익으면 교대 병력을 보낸다고 했는데 어찌 소식이 없는 걸까."
관지부는 곧 부관을 불러 분부했다.
"주공께서 일 년이 지나면 교대 병력을 보낸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도다. 곧 임치성에 사람을 보내 교대 병력이 올 것인지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여라."
얼마 후 임치성에 갔다온 사람이 관지부에게 보고를 하려고 왔다. 그가 들은 말은 천만 뜻밖이었다.
"주공께서는 곡성으로 납시어 그곳에서 문강과 즐기시느라 언제 임치성으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더이다. 그리고 임치성에서는 전혀 새로운 병력 이동이나 병사 모집이 없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교대 병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술렁거렸다. 어떤 병사는 대놓고 제양공을 욕했다.
"우리는 이 낯설고 물설은 북쪽 변방에서 가족과 떨어져 일 년씩이나 보초를 서고 있는데, 임금은 여동생과 음탕한 짓거리를 하느라 남쪽으로 놀러 나갔다니, 참으로 치사하고 더럽도다."
연칭은 자칫 병사들이 분노가 폭발하여 난이라도 일으킬까 매우 두려웠다. 그는 병사들을 달랬다.
"잠시 조용해라. 참외가 익으면 교대할 병력을 보내겠다고 한 것은 임금께서 우리에게 친히 약속한 바다. 그 동안 나라 일에 바쁘신 임금께서 잠시 잊었을 수도 있고 하니 사람을 보내 교대 병력을 한번 청해 보자."
이번에는 말 잘하는 병사를 선발하여 곡성 땅으로 보내 제양공에게 직접 여쭙기로 했다. 연칭과 관지부는 서로 상의하여 심부름 갈 사람을 선정하고 여차저차 계교까지 일러 보냈다. 심부름하는 사람이 곡성 땅에 도착하여 제양공에게 참외를 바쳤다. 그러고는 슬며시 아뢰었다.
"이렇듯이 참외가 잘 익었습니다. 변방 규구 땅에 가 있는 병사들이 일 년 넘게 관무했으니 그들을 불러들이시고 새 교대 병력을 보내 주십시사 하고 아룁니다."
제양공은 이 말을 듣더니 발칵 화를 냈다.
"교대 병력을 보내고 안 보내고 하는 것은 과인의 뜻이니라. 네 놈들은 어찌하여 자기들의 주제를 모르고 이렇듯 성화를 부리느냐. 내년 참외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연칭과 관지부에게 전하거라. 알았느냐?"
심부름하는 사람이 황망히 돌아갔다. 그들은 규구 땅으로 돌아가 연칭과 관지부에게 제양공의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싹트는 모반
두 장수는 화도 나고 어이가 없었다. 특히 관지부는 더욱 분노했다.
"이제 임금의 말조차 믿을 수 없게 되고 말았소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겠소이까?"
연칭이 대답했다.
"그 음탕 무도한 혼군(昏君)이 이토록 무례하니 무얼 더 기다리겠소. 이대로 군대를 이끌고 임치성을 둘러 뺀 후 곡 성을 함몰시키면 제 놈이 날개가 달렸다 해도 어디로 가겠 소. 이후 어진 공자를 군위에 세우면 될 게 아니오."
연칭이 이렇듯 과격하게 주장하자 관지부가 호응하면서도 덧붙여 신중하게 말했다.
"서두르시면 안 됩니다. 일을 성사시키려면 새로 임금에 올려 앉힐 만한 사람부터 떠받들고 나서야 성공합니다. 지금 임금을 대신하여 군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무지(無知), 규(糾), 소백(小白)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연대부(連大夫)께서는 누구를 받들 생각이십니까?"
연칭이 머리를 끄덕였다.
"원래 선군 제희공께서는 동복 동생인 이중년(夷仲年)을 몹시 사랑하셨지요. 그래서 이중년의 아들인 무지도 지극히 총애하시어 모든 대우를 세자와 똑같이 차별을 두지 않으셨지요. 그러던 것이 지금 제양공이 즉위한 후부터 무지의 신세는 차츰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소이다. 선군이 살아 계실 때 일입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공자들의 씨름 시합이 있었지요. 무지가 단번에 지금 임금을 메어 꽂았으므로 지금 임금은 무지를 꺼리고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군이 돌아가시고 세자가 임금이 되자 아예 대 놓고 무지의 특별 대우를 깎아내려 궁색한 처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연칭이 지난날의 이야기를 한바탕 늘어놓았다.
"그래서요?"
관지부는 재촉했다. 연칭의 말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요즘 '불평의 무지' 라고 합니다만 세상에 그런 일을 당하고 불평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제 무지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지를 받들고 거사하면 능히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지부가 다시 물었다.
"그럼 기회를 언제쯤 잡아야 하겠습니까?"
연칭이 대답했다.
"지금 임금은 군대를 부리길 좋아하고 또 사냥을 즐기니 곧잘 고분의 이궁(離宮)으로 나서길 잘하지요. 그 때를 노리면 별로 어려움이 없을게오. 또 내 여동생 연비(連妃) 말이오. 그 애도 지금의 임금에게 원한이 깊은지라 장래를 보장해 주고 계책을 꾸민다면 궁성 안의 사정을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을 테니 일을 성공하기는 여반장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