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양공은 각국에다 사신을 보내 전하게 했다. 그 내용은 매우 강경했다.
"기나라는 우리 조상 대대로 원수입니다. 이번에 과인은 기나라를 쳐서 선군의 유지를 받들고자 합니다. 만일 이 뜻을 방해하는 나라가 있다면 결단코 하늘 아래 함께 더불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있게 된다면 제나라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제나라 군사들도 이번에는 각오가 달랐다. 지난번 원한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기나라의 병·지·오 세 고을을 점령하고 기성을 향해 호호 탕탕 진군했다. 제양공은 기후(杞侯)에게 사람을 보냈다. 제양공의 사자는 기후에게 추상 같은 제후의 뜻을 전했다.
"속히 항복하고 스스로 결박하여 제군 앞에 벌을 청하라. 듣지 아니하면 이번에 기나라의 씨(種)도 손(孫)도 아예 흔적조차 없애 버릴 것이다!"
기후는 그 부인 백희(伯姬)와 함께 크게 탄식했다.
"이제 무릎을 꿇고 애걸할 수는 없는 일. 부인께서 글을 보내어 노나라에 원조를 청해 보오."
원래 기후의 부인 백희는 노나라에서 출가해 온 사람이었다. 기나라 사자는 백희의 글을 가지고 노나라로 갔다. 노장공은 기후의 부인 백희가 보낸 서찰을 받았다. 내용은 구절구절 눈물과 비탄으로 얼룩져 동정심을 자극했다. 노장공은 즉시 정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노(魯), 정(鄭), 기(杞) 세 나라의 관계를 밝히고, 함께 기나라를 위한 구원병을 보내자고 청했다. 그러나 당시에 정나라는 군사를 보낼 처지가 아니었다. 노나라는 혼자 힘으로 제나라를 대적할 수가 없었다. 노장공은 군사를 거느리고 활(滑) 지방에까지 갔다가 3일 만에 제나라의 위세에 눌려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편 기후는 노나라 군사가 도우러 오다가 도중에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 만사를 단념했다. 그날 밤 기후는 동생 영계에게 모든 걸 부탁하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기후(杞侯)는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튿날 영계는 스스로 결박하고 제군 앞에 나아가 항복했다.
"조상에게 제사나 지낼 수 있게 해 주시오." 이후 기나라는 영영 망하고 말았다.
제·노 화합
제양공이 기나라를 무찔러 아예 멸망시켜 버린 때가 주장왕 7년의 일이었다. 바로 그 해에 초나라 무왕 웅통이 죽고 그 아들 웅자가 즉위했다. 그가 바로 초문왕(楚文王)이다. 한편 제양공은 기나라를 멸망시키고 의기 양양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도중에 문강이 영접을 나왔다.
"오라버니의 승전을 경하해 마지 않사옵니다."
문강이 찾아와 인사하자 제양공은 더욱이 기분이 좋았다.그래서 아예 수레의 방향을 돌렸다. 이들 남매는 나란히 수레를 타고 축구 땅으로 갔다. 그러고는 마치 양국 군후가 서로 대할 때 베푸는 그런 예로서 크게 잔치를 베풀고 즐겼다. 제양공이 맹양을 불러 분부했다.
"과인은 이곳에서 어진 누이와 우애를 나누겠노라. 그대는 일단 군사를 거느리고 귀국 개선하여라. 차후 간단한 일은 알아서 처리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이 곳으로 전하여 분부를 받들어라. 알았느냐?"
맹양이 대답했다.
"한 치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맹양이 대군을 이끌고 귀국하자 제양공은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낮에는 문강과 함께 마시고, 밤이 되면 옆에 끼고 자면서 아예 터놓고 부부처럼 살았다. 이렇듯 즐기고 있는데 전갈이 왔다.
-왕희의 병환이 심상치 않습니다.-
제양공은 참으로 음탕 무도한 자였다. 그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전갈을 받으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나무토막도 병이 나는고?"
그 옆에 반라(半裸) 차림으로 누워 있던 문강이 그 말을 듣고 의아해서 물었다.
"나무토막이라니 그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양공은 신하가 바라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문강을 품에 껴안았다.
"이렇듯 안아 보면 나무토막 같다는 거지."
그러면서 낄낄대고 웃었다. 문강도 호호거리며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왕희는 원래가 조용한 여자인데다가 지혜가 뛰어났다. 비록 내궁에 있을지언정 제양공이 여동생 문강과 정을 통하는 등 매우 난잡하다는 걸 알았다.
"천륜과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로다. 참으로 금수와 다를바 있으리오. 내 어찌 박복하여 이런 인간 같지 못한 자에게 시집을 왔단 말인고."
왕희는 늘 장탄식을 했다. 그러다가 병이 나 마침내 시집온 지 일 년도 안 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제양공은 문강과 함께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 문강이 신바람나서 제양공에게 말했다.
"이제 오라버니도 나처럼 임자가 없어졌으니 우린 천생 연분인가 보옵니다."
제양공이 문강을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처지가 그렇구려. 우리가 남매로 태어나 각자 남에게 시집 장가 갔으나 이렇듯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연분이 어디에 있겠느냐?"
문강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우리 둘 사이엔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건 애석한 일이야. 그러나 우리의 자식들을 혼인시키면 다소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문강이 크게 기뻐했다.
"좋으신 생각입니다.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문강은 곧 아들인 노장공에게 보내는 서신을 써서 사람을 시켜 보냈다.
얼마 후 노장공은 서신을 받고 어머니 문강이 있는 축구 땅으로 왔다. 문강은 노장공으로 하여금 외삼촌에 대하는 예로써 제양공을 뵙게 했다. 그래서 노장공은 조카가 되어 외삼촌을 모셨다. 이 때 제양공에게 새로 출생한 딸이 하나 있었다. 문강이 노장공에게 말했다.
"원래 내실이 튼튼해야 나라가 안정되는 법이다. 그러니 두말 말고 어미가 시키는 대로 외삼촌의 새로 출생한 여식과 혼인을 하거라. 어떠냐?"
노장공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어머니의 말이었지만 조심스럽게 사양했다.
"하지만 아직 젖먹이가 아닙니까? 더구나 저와는 인척간인데....... 소자의 배필은 아닌 듯합니다."
노장공의 말을 듣던 문강은 즉시 역정을 냈다.
"너는 임금이 되더니 어미의 친정 식구에게 비아냥거리느냐?"
제양공도 이번만은 좀 당황했다.
"서로 나이 차이도 많이 나니까 조카님도 그런 게 아니겠소. 누이는 너무 강요치 마오."
문강이 대꾸했다.
"한 십오 년만 기다리면 될 텐데 뭘 그러십니까? 그때 가서 혼인을 해도 되겠지만 혼사는 지금 정해 두자는 데 무엇이 그리 잘못 되었단 말입니까."
노장공은 더 이상 모친의 뜻을 거스릴 수 없고 해서 승낙하니 제양공도 응낙했다. 이렇듯 혼사를 정하고 보니 제양공과 노장공 두 사람은 외삼촌과 조카 사이일 뿐만 아니라 겸하여 장인과 사위가 되는 처지로 변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대접했다. 그러니 자연 친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수레를 타고 사냥을 다닐 만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제양공은 더욱 노장공을 아꼈고, 노장공은 어른으로 제양공을 받들었다. 노나라의 뜻있는 백성들이 이걸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한편 제양공과 문강은 내놓고 더욱 가깝게 지내며 음탕한 생활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위나라 침공
그 후 제양공은 얼마 동안 더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위후 삭이 제양공을 영접하며 청했다.
"기나라를 없애 버리고 개선하신 큰 공을 치하드립니다. 청컨대 언제면 이 몸을 위해 위나라로 가실 것입니까? 저는 한시도 편안치를 못합니다."
제양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염려가 없느니라. 왕희가 죽었으니 주왕실의 눈치를 볼 것도 없도다. 과인이 곧 연합군을 조직하여 위나라로 진격해 갈 것이니라."
위후 삭은 칭사하고 물러났다. 며칠이 지난 후 제양공은 송 . 노 . 진 . 채 네 나라로 사자를 보냈다. 함께 위나라의 군위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 때가 주장왕 8년 겨울이었다. 제양공은 먼저 병차 5백 승을 거느리고 위후 삭과 함께 위나라 국경으로 갔다. 뒤를 이어 송나라 송민공, 노나라 노장공, 진나라 진선공, 채나라 채애공 등이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제양공 쪽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5로(五路) 연합군이 편성되었다. 한편 위후 금모는 5로 제후가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공자 예와 공자 직을 불러 상의하고 대부 영궤를 주왕실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이에 주왕실에서는 대부 자돌에게 병차 2백 승을 내 주어 위나라를 구원토록 했다. 그러나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힘 약한 위나라와 주왕실의 군사는 어찌할 것인가. 마침내 위후 금모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다. 제양공은 금모가 주장왕의 사위였으므로 죽이지 않고 그 식솔과 함께 수레에 태워 낙양으로 보내고 다른이들은 모두 참수했다. 그리고 위후 삭을 다시 임금 자리에 앉히고, 오랜만에 누이동생 선강도 만나 그 동안의 어려움을 위로했다. 또한 위나라 내고를 열게 한 후 금옥과 비단 등을 모조리 실어내어 다섯 등분을 해서 각국의 제후들과 군사들을 위로 하게 하니 모두 다 제양공을 칭송했다. 제양공은 이렇게 한 후 우쭐대며 귀국길에 올랐다. 그 동안 정나라 군위를 세웠고, 기나라를 무찔러 원수를 갚더니, 노나라와 우호 친선을 맺고 위나라마저 쳐부시고 임금을 새로 세워 놓았으니 제양공의 위엄은 주왕실의 위엄을 능가하여 천하를 울리는 듯했다. 그러나 어찌하리오. 아직도 그에게는 은밀히 누이동생과 통정하고 매부를 죽인 음탕 무도한 자이며, 정숙한 왕희를 일 년도 안 돼 병들어 죽도록 내버려 둔 인정 없는 자로 널리 소문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