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공자 규는 공자 석과 영모 등을 데리고 위나라로 향해 갔다.
"공자 석이 돌아왔다."
위나라에서는 이들을 크게 반겼다. 공자 석이 누군가? 원래 이강에게서 아들 셋이 태어났다. 큰아들이 급자고, 둘째아들이 이번에 군위에 오른 금모, 막내아들이 석이었다. 위후는 막내동생을 보자 눈물부터 흘렸다.
"모친을 여의고, 장형(長兄)마저 잃고 타국(他國)에서 떠돌다가 우리 형제, 이제서야 만나는구나."
"형후(兄侯)를 뵈오니 모든 일이 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흐흐흑."
공자 석이 목놓아 울었다. 좌우에 시립(侍立)해 있던 사람들도 눈시울을 닦았다. 그 사이에 공자 규는 위나라 신하의 안내를 받아 별궁으로 갔다. 선강은 낙담하고 있던 차에 친정 동생을 만나니 크게 안심했다. 공자 규는 선강 누님에게 말했다.
"제후이신 형님께서 분부하시기를, 공자 석과 재혼하여 살도록 하시었습니다. 일을 그리 처리할 테니 선강 누님께서는 다른 말 하지 마세요."
아직 미태가 남아 있는 청상과부 선강은 그저 다행스럽다는 말만 반복했다. 일단 선강을 만나고 난 공자 규는 위나라 공자들에게 제후의 뜻을 전했다.
"공자 석과 선강을 재혼시키면 양국간에 우의도 돈독해지고 좋은 일이 아니겠소. 이 일을 주선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어찌 돌아가 우리 임금께 보고할 말이 있으리오."
공자 규는 반협박조로 말했다. 그들은 제후의 비위를 거스를까, 그것이 두려웠다. 또 자기 자신의 문제도 아니었다. 공자 석이 아직도 혼전(婚前)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딱 부러지게 반대할 명분조차 없었다. 다만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며칠 지나서였다. 공자 규와 위나라 공자 직은 공자 규가 은밀히 꾸민 대로 크게 잔치를 벌이고 여러 공자들을 초대했다. 물론 공자 석도 참석했다. 질탕한 음악 소리에 맞춰 무희들이 춤추며,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꽃 같은 기녀(妓女)들이 다투어 공자 석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 술잔을 가득가득 채워 은근히 권했다. 공자 석은 제나라에 피신해 있는 동안 고단한 세월을 보냈었다. 누구 하나 그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 주는 이 없었고, 여인이라면 그저 그림 속의 떡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화려한 잔치에 천상의 선녀(仙女)처럼 꾸민 기녀들이 옆에서 시중을 드니 그야말로 기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떠 올랐다.
공자 직은 연신 별미 음식과 좋은 술을 가져다 공자 석에게 친절을 다해 권했다.
"그 동안 맛보지 못했으니 많이 드시게나."
이윽고 공자 석은 크게 취해 쓰러져 코를 골았다. 그때를 기다리던 공자 직이 바깥쪽을 향해 손짓을 하자 여러 사람이 난데없이 나타나 곯아 떨어진 공자 석을 업고 나갔다. 그들은 서둘러 별궁 쪽으로 갔다. 별궁 근처에 오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공자 석을 인계받더니 그를 선강의 침실에다 눕히고 사라졌다. 그러자 선강이 나타나 공자 석의 옷을 벗기고 잠옷 바람에 그의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날 밤 공자 석은 취한 김에 한 여자를 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지도 모르고 관계를 맺었다. 육체 관계만 맺은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돌봐 주겠다고 언약까지 했다. 그 증표로 가락지까지 빼 주었다. 공자 석은 상대가 술시중을 하던 기녀(妓女)쯤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튿날이 되어 해가 뜨고 공자 석도 눈을 떴다. 그제서야 곁에 누워 있는 선강을 보았다.공자 석은 어젯밤 일이 몹시 난감했다. 그러나 이제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선강이 그런 공자 석의 어지러운 심사를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온갖 교태를 부리며 아양을 떨었다. 공자 석은 그만 황홀해져서 선강이 자신의 서모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만 다시 한 번 뜨거운 관계를 가졌다. 선강은 온 힘을 다하여 그를 즐겁게 해줬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을 둘이 침상 위에서 뒹굴며 지냈다. 선강은 힘센 젊은 공자를 알았으니 좋았고, 공자 석은 천하절색의 농염한 미태에 폭 빠졌으니 이 또한 좋은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둘 사이는 부부가 되었다. 그후 두 사람 사이에서 3남 2녀가 태어났다. 장남은 일찍 죽었고, 차남은 대공(戴公) 신(申)이며, 삼남은 문공(文公) 훼이다. 장녀는 성장해서 송장공의 부인이 되었고, 차녀는 허목공의 부인이 되었다. 이것은 모두 다음날의 이야기다. 공자 규는 선강과 공자 석을 결합시키는 소임을 마치고 제나라로 돌아와 그간의 과정을 제양공에게 아뢰었다. 그러나 관중에 대한 일은 보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노래 하나도 고하지 않았다. 그 노래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子婦如何攘作姜
子烝庶母報非遲
夷姜生子宣姜繼
家法源流未足奇
며느리를 빼앗아 자기 처로 삼고
자식은 서모를 데리고 살았으니
그렇도다 이강이 낳은 아들이 선강과 함께 사니
원래 집안 전통이라 이상할 게 없도다
이 노래는 지난 날에 위선공이 그 아비(위장공)의 첩 이강과 사통하여 급자를 낳고 도망쳤다가 돌아와서는 아예 터 놓고 이강과 살아 아들 금모와 석을 낳더니, 다시 급자의 아내로 데려온 선강을 자기 애첩으로 만들어 10여 년을 데리고 살았다.
위선공이 죽고 그의 아들 석이 선강과 부부가 되어 자식을 낳고 사니 참으로 어지러운 일이었다. 노래는 그것을 비웃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