杞城 공격
이러한 때에 제나라에서는 때아닌 동원령이 내렸다. 제회공이 선대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기(杞)나라를 치기 위해 위나라에 원군을 청하고 대규모의 병사를 일으켰다. 관중과 포숙아도 이 싸움에 출전하게 되었다. 관중은 활을 잘 쏘아서 궁수조장(弓手組長)이 되었고 포숙아는 공자 소백의 호위 군사 직책이었다. 제나라 대군과 위나라 연합군은 기세 있게 기성(杞城)으로 진격했다. 기후(杞侯)는 이 보고를 받고 보루(堡壘)를 높이 쌓고 성지(城池)를 깊이 판 후 굳게 지키면서 노나라, 정나라에 구원병을 청했다. 이렇게 되니까 전쟁은 장기전으로 변하게 되었다. 마침 노나라에서는 노환공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이번 싸움을 말릴 요량이었다. 노환공은 기성(杞城)에 당도하자 곧 제희공의 진영으로 사람을 보내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장인과 싸우는 사위가 있겠습니까, 내일 찾아뵈옵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이라도 노여움을 푸소서."
제희공은 일단 공격을 멈추고 이튿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노환공이 제나라 영채로 찾아왔다. 그는 사위로서 제희공에게 문후를 드리고 좋은 말로 화해를 청했다.
"기(杞)나라는 저희 노나라와 윗대에 서로 혼인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모른 척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옛날에 기후(杞侯)가 제나라에 죄가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서 모두 잊혀진 일입니다. 청컨대 허물을 용서하시고 이번 기회에 서로 화의를 맺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장인 어른."
제희공은 완강히 거부했다.
"선조 애공(哀公)께서 지난 날 기나라의 참소를 받아 주(周)나라에 붙잡혀 갔소이다. 그분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서 세상을 떠나셨소이다. 그일이 있은 뒤 과인까지 일곱 대를 내려오도록 그 원수를 갚지 못했소이다. 그렇다고 사과를 받은 적도 없소이다. 이번에 그 원수를 꼭 갚으려 하오. 그대는 기나라를 도우러 왔으니 그것은 좋을 대로 하시오. 오늘날 과인은 오직 기나라를 굴복시켜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일념뿐이오."
제희공이 자신의 의견을 들어 주지 않자 노환공은 매우 불쾌해 하며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제희공은 곧 공자 팽생을 불렀다.
"괘씸한지고. 제 처가인 나라를 도와야 마땅한 일이거늘....... 먼저 쳐들어가서 혼내 주어라."
원래 팽생은 만부(萬夫)도 당하기 어려운 괴력(怪力)의 용사였다. 그래서 기습 공격을 명령받자 대다수 병졸들은 뒤에 놔 두고 가병(家兵)만 거느린 채 밤을 도와 노나라 영채를 기습했다. 노나라의 공자 익은 화급히 공자 팽생을 맞이하여 싸웠다. 하지만 어찌 팽생의 무용을 당할 것인가. 마침내 쓰러지기 직전인데 다행히 진자, 양자 두 장수가 달려와 합세했다. 세 명과 싸워도 팽생은 여유가 만만했다. 그때 정나라 장수 원번과 단백이 구원차 기성으로 오다가 이를 알고 병사를 2대로 나누어 한쪽은 노나라를 돕고, 다른 한쪽은 제나라 영채를 급습했다. 노나라 영채를 기습한 팽생은 갑자기 나타난 정나라 구원병의 화살에 맞고 창에 찔려 거의 죽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호위하던 가병(家兵)들이 목숨을 걸고 구출하여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이럴 때에 제나라 중군(中軍)은 정나라의 기습을 받아 어찌 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어찌 준비없이 기습당한 군대가 견딜 수 있으랴. 풍지 박산. 제군(齊軍)은 대패하여 겨우 도망치다가 후군(後軍)을 이끌고 오던 공자 규와 소백에 의해 수습되었다.
대패한 제나라
패잔병을 수습하고 백발을 날리며 되돌아가는 제희공의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내가 세상에 존속하는 한 기나라는 반드시 멸망시키고야 말리라. 결코 기나라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지는 않으리라."
한편 포숙아는 후군이 되어 공자 소백을 따라오다가 선봉으로 나선 팽생이 크게 패하고 거의 죽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관중이 위험하구나.'
포숙아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 때에 중군마저 무너지고 패잔병이 된 선봉대와 중군 휘하의 병사들이 도망쳐와 몰려들었다. '중군마저 무너지다니.......' 도망쳐 온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불평을 늘어 놓았다.
"공자 팽생이 제 힘만 믿고 가병들과 기습에 나서더니 제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다."
"일곱 대 전(前)의 원수를 갚는다고 병사를 일으켜 놓고는 사위 하나 제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으니 우습구나."
그러는 중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제군은 퇴군할 준비를 했다. 숙아는 도망쳐오는 병사들을 붙잡고 관중의 생사를 물어 보았으나 누구 하나 시원한 대답이 없었다. '혹시 죽은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포숙아는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 앉았다. '포로가 된 것은 아닐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포로가 되면 아주 고약하다. 엄청난 몸값을 물어야 하는데 그것도 신분이 밝혀져야 가능한 일이고 웬만한 경우는 알 수 없는 곳에 노예로 팔려 가기 십상이다. 팔려 가면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고 만다.' 포숙아가 가슴 졸이며 곳곳을 찾아다니다 관중을 만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포숙아는 마치 죽었던 부모가 되살아 온 듯이 반갑게 달려갔다.
"정말 다행이다. 참으로 걱정했다. 난 팽생 공자의 선봉대가 크게 패했다고 했을 때 기절할 듯이 놀랐었어."
포숙아는 그 당시처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관중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관중은 히죽 웃었다.
"난 공자 팽생이 가병들 몇 명을 데리고 기습하겠다고 했을 때 틀렸구나 하고 뒤로 빠져나왔지."
관중은 미리 도망을 쳤던 것이다. 사실 상당수의 제나라 병사들이 싸움이 있기 전에 뒤로 물러나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겁쟁이 제군(齊軍)' 이런 별명은 그때부터 생겨났다. 아무튼 제희공은 자기 힘만 믿고 군사를 일으켰다가 크게 망신을 당한 꼴이 되었다. 한편 맞대 놓고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제희공의 처사를 비난했다. 전해 오는 한편의 시가 이를 잘 보여 준다.
明欺弱小恣貧謀
只道弧城頃刻收
他國未亡我己敗
令人千載笑齊侯
강한 나라들은 약한 나라를 속여 먹으면서
외로운 성 하나 단번에 먹어 삼킬 줄 알았겠지만
다른 나라가 망하기 전에 자기가 패했으니
제나라 임금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도다
제양공의 즉위
귀국한 제희공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세는 나아질 줄을 몰랐다. 마침내 제희공은 자신의 병이 골수에 들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제희공은 세자 제아를 병상 앞으로 불렀다.
"기나라는 우리 조상 때부터 철천지 원수지간이다. 반드시 원수 기나라를 멸망시켜라. 내가 죽으면 네가 군위에 오른다. 그러나 기나라를 없애기 전에는 결코 내 제사도 지내지 말아라! 깊이 명심하여라."
제아는 머리를 조아리며 분부를 받았다. 제희공은 다시 동생 이중년의 아들인 조카 무지(無知)를 불러 제아에게 절하게 하고 부탁했다.
"너의 부친 이중년은 과인의 총애하는 친형제다. 너와 세자는 사촌이다. 너는 마땅히 세자를 잘 섬기어 집안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아라. 그리고 세자도 무지를 친동기처럼 보살펴 화합하거라."
제희공은 말을 다 마치고 다시 뜰 수 없는 눈을 감았다. 모든 대부들은 즉시 세자 제아를 받들어 상례를 지내고 그를 군위에 올려 모시니 그가 바로 제양공(齊襄公)이다. 제양공은 군위에 오르자 궁중에서 그동안 실추되었던 위엄을 찾고 싶어했다. 우선 실시한 것이 사촌 무지에 대한 특별대우의 폐지였다. 제양공은 신하들에게 분부했다.
"그 동안 무지가 과인과 똑같은 의복과 봉록을 받아왔는데 이를 폐하고 일반 공자와 같이 대우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일반 공자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양의 봉록을 줄이도록 했다. 공자들은 대부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특히 무지는 속이 끓었다. 아니 원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제양공의 처사에 이를 갈았다. '선군(先君)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친동기처럼 화합하라는 유지를 받들기는 커녕 군위에 오른 후 첫 분부가 자신에 대한 특별대우의 폐지라니....... 이놈, 두고 보자.' 누구나 특권을 받게 되면 우쭐대고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 특권을 잃게 되면 의기소침해지고 불평불만이 생기면서 자칫 원한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불평의 무지'라는 말은 이래서 생겼다. 무지는 이튿날부터 병을 칭하고 궁궐에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