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 소년 일행이 위나라에 당도한 것은 바로 위나라에 이런 변고가 있을 무렵이었다. 당시 위나라 도성(都城)은 다른 나라의 도성에 비해서 성채의 규모도 작고 거리도 보잘것이 없었다. 가옥 수라고 해봐야 3천 호도 채 안 되는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그래도 영상의 시골 땅에서 온 이오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도시였다. 우선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수레와 말도 많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로 군위에 오른 위선공이 형나라에서 데려온 신하들을 위해 주택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큰 도읍이지?"
사내가 소년에게 말했다.
"굉장하군요."
소년은 새로운 세상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함께 섞인 그런 눈빛이었다. 또한 그리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아버지이지만, 가족이 모여 함께 살아갈 부푼 기대감도 있었다. 그것들은 어린시절 영상 땅의 가난하고 무미 건조한 농촌 생활에 비해, 화려하고 사람이 많은 이 도읍에서의 생활이 꿈과 즐거움을 주리라는 막연한 느낌이기도 했다.
"저잣거리에 물건들이 굉장하네요."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지나면서 소년의 어머니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감탄을 터뜨렸다. 노폭이 두 칸 반이나 됨직한 넓은 거리의 양쪽에 늘어선 점포와 쌓여 있는 물건들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온 남편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겹쳐 이오의 어머니는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기에는 커다란 실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우리 집이다."
사내가 말했을 때 소년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이오의 어머니는 더욱 난감한 표정이었다. 바람이 획 불면 날아갈 듯한 엉성한 초가 지붕의 집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폭이 석 자 정도 되는 골목길이었다. 골목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고 오두막집의 흙벽은 곳곳이 무너져 마치 헛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약 아홉 자 넓이로 칸이 질러진 집인데, 출입구로 짐작되는 구멍에는 문짝도 아예 없었다. 거적으로 칸막이가 된 방은 그래도 나은 편이고 아예 그것조차 없는 집도 있었다.
"어느 집이......."
이오의 어머니가 엉겁결에 물었다.
"이 집입니다. 들어가시지요."
거적을 들어올렸다.방 안은 어둠침침하고 눅눅했다. 안쪽 길이는 두 칸 반 정도인데 앞쪽 반은 마당처럼 되어 있어 취사를 하거나 물건을 둘 수가 있었다.'시골 집보다 정말 형편없구나.' 영상의 시골 집도 이것에 비하면 다섯 배는 더 나을 것이다. 영상의 집은 기등도 튼튼하고, 흙벽이라고 하지만 돌과 섞여서 튼튼하기 이를 데 없고 지붕도 단단하게 엮어져 있다. 또한 천장이 제대로 되어 있고, 미곡이나 풀짚을 쌓아 놓을 수 있는 헛간도 있다. 집 뒤편에는 변소도 있고 외양간도 있었다.'이런 집에서 모두 어떻게 살지.......' 어린 소년은 벌써 걱정스럽다. 그런데도 숙부라는 사내는 이 좁은 집 안으로 비쩍 마르고 늙은 말까지 끌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온 집안에 진동하는 고약한 악취는 바로 말똥 때문이었다. '이것이 아버지가 사는 집이란 말인가?'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의형을 모셔 오겠습니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말을 끌어들여 놓고 난 사내는, 달려나갔다. 모자(母子)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암담한 기분을 느꼈다. 더욱이 소년 이오의 참담한 심정을 잔인하도록 아프게 찔러 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 곳에 당도했을 때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와 상점마다 눈부실 만큼 쌓여 있던 상품들, 그리고 막연하나마 꿈과 즐거움을 주리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설픈 기대가 허물어졌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밋밋한 생활이었지만 항상 포근했던 느낌, 가난했지만 한 번도 부족하다고 느껴 보지 못했던 영상의 땅에 대한 그리움만도 아니었다. 잃어버린 작은 행복, 여름밤 들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영웅신 예'가 하늘에서 쫓겨나 다시는 천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 이야기처럼 마치 자신이 형편없는 땅으로 내팽겨쳐진 듯한 기분을 어쩔 수 없이 가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