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팔만대장경과 설화
총 1,514종의 방대한 경전을 담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대승삼장과 소승삼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삼장이란 '경율론'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소승삼장에 속한 경전들은 주로 역사적인 실제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담고 있으며, 대승삼장은 초월적이고 영원한 존재로서의 부처님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부처님이 경을 설한 형식, 방법, 순서 또는 의미, 내용 등을 따라 분류하는 방법을 교판이라고 하는데, 이 교판은 특히 중국불교에서 발전한 것으로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다. 여기에서는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대사의 오시교를 잠깐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화엄시: 부처님이 성도한 직후 21일간 화엄경을 설한 시기.
2) 녹원시: 화엄이 이후 12년간 소승의 아함경을 설한 시기.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곳이 녹야원이므로 녹원시라고 부르는 것이며, 설한 경명을 따서 아함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3) 방등시: 녹원시 이후 8년간 유마경, 금광명경, 승만경, 능가경, 무량수경 등의 방등부 경전을 설하신 시기.
4) 반야시: 방등시 이후 22년에 걸쳐 제부의 반야경을 설하신 시기.
5) 법화열반시: 부처님이 최후 5년간 법화경과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열반경을 설하신 시기.
이처럼 천태오시교를 통해 팔만대장경을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좀더 복잡하게는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경전의 형태를 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을 일러 12분교라고 한다.
1) 수트라(sutra):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경을 의미하며 반야심경처럼 사상적으로 의미가 완료된 경전을 일컫는다.
2) 게야(geya): 중송이라고 한역하며 산문 경전의 내용을 거듭 시어체로 표현한 것으로 법화경과 화엄경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여기에 속한다.
3)가타(gatha): 법구경처럼 완전히 시적 언어로만 이루어진 경전을 가리킨다.
4) 우다나(udana): 다른 이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종교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은 경전.
5) 아브타다르마(abhta-dharma): 범부는 경험하지 못하는 깨달은 자만의 독특한 경지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경전.
6) 이틴타카(itinttaka): 부처님과 여러 제자들의 전생 인연담.
7) 니다나(nidana): 특별한 인연 때문에 설하게 된 경전.
8) 아파다나(apadana): 비유로써 설명하는 경전.
9) 자타카(jataka):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10) 비아카라나(vyakarana):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재가 신자들이 후세에 성불하리라는 내용을 담은 경전.
11) 바플리아(vaplya): 우주론 및 인생론을 철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전.
12) 우파데사(upadesa): 논서를 가리킨다.
사실 팔만대장경 속에 있는 수많은 경전들은 주로 출가자 즉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것들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이 일반 대중을 멀리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다만 불경의 결집이 승가차원, 즉 출가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도 아주 쉬운 말로 가르침을 전했던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불전 속에 남아 있는 설화들이다. 이러한 설화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을 빌어 불법의 핵심을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팔만대장경 속에는 이러한 설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위에서 한 분류에 의거해볼 때 설화가 비교적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소승삼장 그리고 천태오시교 에 따르자면 녹원시, 또 12분교에 따르자면 이틴타카, 니다나, 아파다나, 자타카, 비아카라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3. 본서에 인용된 주요 경전에 관한 이야기
ㄱ. 현우경
현우경은 고려대장경 이외의 대장경에는 현우인연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현우경은 송나라 때 스님 여덟 명이 우전국에 가서 여러 법사들의 강의를 듣고 각자가 들은 바를 번역하여 집성한 것이다 .따라서 현우경 같은 경전은 산스크리트 어 원본이 동일한 제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현우경은 찬집백연경 그리고 잡보장경과 함께 불교 설화 및 비유문학의 3대 대작으로 불리고 있다. 찬집백연경은 이름 그대로 '백 가지 인연담을 담은 경전'인데, 현우경에 있는 설화 10가지가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보이고 있다. 잡보장경에는 모두 합해 121가지의 설화가 들어 있는데, 이 경전의 특징은 설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중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란타왕과 나선비구 그리고 카니시카왕과 마명보살 등의 실존 인물이 출현한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으로 본생경이 있는데, 이것은 팔리 어 삼장에 속해 있는 경전으로 무려 550편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본생경은 온전하게 그대로 한역된 것이 아니라 생경, 현우경, 잡보장경 등에 부분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육도집경 역시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유명하다.
ㄴ. 법구비유경
법구비유경은 법구경과 거의 동일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법구경은 운문으로 되어 있는 게송들만 모아놓은 경전이지만, 법구비유경은 그 게송들이 설해지게 된 전후사정을 싣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불경이 바로 법구경이다. 그이유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간결한 시어로 기초적인 불교 교의를 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법구경은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한역 법구경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주로 팔리 어 법국여, 즉 '담마파다'에서 번역된 것이다. 참고로 팔리 어본은 26장 423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역 법구경은 39품 750게송이 들어 있다.
ㄷ. 아함경
아함경이라고 하면 흔히 한 권의 경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아함경은 아함부에 속하는 장아함경, 중아함경, 증일아함경, 잡아함경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사아함은 북방불교에 전해진 것으로 모두 183권 2,088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현재 동남아시아의 불교국에 전승된 오아함은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속에 포함된 경전의 총수는 무려 5,274경이나 된다. 북방불교에 전해진 사아함과 남방불교에 전해진 오아함은 그 내용과 구성이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함경은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원시불교 연구에 더없이 중요한 원전이 되고 있다. 또 신격화된 부처님이 나타나는 후기의 대승경전들에 비해 가장 인간적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아함경은 주로 불교의 근본개념인 중도, 팔정도, 사성제 그리고 삼법인 등을 소박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ㄹ. 사십이장경
사십이장경은 최초의 한역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사십이장경의 이름은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간략하게 풀이하고 있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경전은 여러 경전에서 요지를 추려 뽑은 것이기 때문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경의 서두에 따르면 후한의 명제가 어느 날 밤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신인이 궁전으로 날아들어오는 꿈을 꾼 후 신하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신하는 저 멀리 천축이라는 나라에 부처님이라는 성인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신인이 부처님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에 명제는 대월지국에 사신을 보내 불경을 얻어 오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십이장경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매우 짧고도 재미있는 비유를 담고 있는 백유경은 백구비유경 또는 백구비유집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대로 하자면 백 가지 비유가 들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98가지의 비유가 들어 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잡비유경은 이 경전의 이역본이라고 한다.
ㅁ. 법원주림
법원주림은 총 일백 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당나라 때 도세법사가 10여 년에 걸쳐 여러 경전에 실려있는 모든 사항을 종류별로 나눠 집대성한 책이다. 또 이 책은 세부 항목마다 그 전거와 출처를 낱낱이 밝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율이상 역시 6세기 경에 중국에서 찬술된 책으로 불교 학습에 중요한 사항들을 50권으로 정리해놓은 일종의 불교 백과사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율이상에서 언급하고 있는 경전 중에는 상당수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 한역 경전의 유통사를 연구하는데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ㅂ. 대당서역기
이 책은 당나라 현장스님이 인도 내에 있는 70여 개국을 돌아보고 당시인도부교의 현황과 불교유적 및 그에 따른 전설들을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다. 상당히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불교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스님의 여행 기간은 총 17년이었고, 방문한 지역은 서쪽으로는 현재의 이란 그리고 남쪽으로는 스리랑카를 망라하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이 대당서역기는 법현전 그리고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동양의 3대 여행기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