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준마는 당나귀와 함께 수레를 끌지 않는다<사마계주>
-"준마는 늙은 당나귀와 짝을 지어 수레를 끌지 않습니다. 봉황은 제비나 참새 따위와 무리를 짓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줄을 서지 않는 법입니다."-
사마계주는 초나라 사람으로 거리에 나앉아 점을 치는 역술가였다. 어느 날 중대부 송충과 박사관 가의가 장안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때 길거리에서 사마계주가 제자들에게 천지의 도와 일월의 운행, 음양과 길흉 등의 근본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을보았다. 두 사람은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사마계주가 보니 송충과 가의는 지식인 같았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명하여 자리를 권유하고, 또다시 강론을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강론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길거리의 하찮은 점술가로 생각했는데, 강론만큼은 그 수천 마디가 하나같이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께서는 도인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저자거리에서 지저분한 장삿속으로 앉아 천한 점쟁이의 신분으로 점이나 치고 계십니까?"
송충이 물었다. 그러자 사마계주는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두 분은 학문을 익히신 분들 같은데 어찌하여 제게 그런 폭언을 하십니까? 역술가란 존귀한 존재입니다. 지저분하다느니, 천하다느니 하시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가의가 대답하였다.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녹을 받는 사람을 귀인이라 합니다. 사실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은 현자입니다. 하지만 역술가란 무위무관이니, 그래서 천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또한 지저분한 장삿속이라고 한 것은, 역술가란 여하간 과장이 심할뿐더러 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서 비싼 복채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마계주는 두 사람에게 편히 앉으라고 권유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들어보십시오. 아이들은 해나 달이 나오면 밖에서 놀지만, 해나 달이 지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해와 달에 맞추어 행동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이들은 일식이나 월식, 길흉에 관해 묻는다 해도 잘 모릅니다. 이러한 어린아이들처럼 사실상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바른 길을 걸으면서 올바른 의견을 말합니다. 세 번 간언해서 듣지 않으면 즉시 단념하고 맙니다. 남을 칭찬할 때는 그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며, 남을 비판할 때는 그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결같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이바지하고자 일을 합니다. 아무리 고관 자리에 임명하려고 해도 자기에게 적합하지 않으면 거절하며, 아무리 높은 봉록을 준다해도 자기에게 그런 공이 없으면 받지 않습니다. 부정을 보면 상대가 아무리 높은 고관일지라도 참지 않습니다. 득을 보았다 하여도 기뻐하지 아니하며, 손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후회하지를 않습니다. 설령 포박당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가 없으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자약한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진실되게 현명한 자들입니다."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송충과 가의가 동의하였다. 사마계주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귀공들이 말하는 현명한 자란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굽신굽신 머리를 숙이며 비위를 맞춘다, 권세를 좇아 이익을 바라고 동지를 모은다, 패거리를 지어서 올바른 자를 밀어내 버리고 지위와 영예를 차지하는 등 그저 봉록에만 눈이 어두워 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사리사욕만을 좇고, 법을 어겨 농민을 착취하며, 군주의 위광을 업고 법을 악용하여 온갖 포악한 짓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야 도대체 칼을 든 강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사마계주는 조목조목 나라를 운영하는 관리들의 잘못을 지적해 나갔다. 그러면서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현명한 게 아니라 진실로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역설하였다. 송충과 가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사마계주는 이제 역술가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였다.
"역술가란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을 바로잡아 이끌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칩니다. 준마는 늙은 당나귀와 짝을 지어 수레를 끌지 않습니다. 봉황은 제비나 참새 따위와 무리를 짓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줄을 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사람들을 피하여 그늘에 숨고, 무리의 눈을 피하여 은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마계주의 말을 다 듣고 난 송충과 가의는 현기증을 느꼈다. 멍청하게 온몸의 맥이 빠져 대꾸할 말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사마계주는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를 하였다.
"귀공들께서는 지금 지위나 명예를 구하느라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덕을 지닌 인간의 생각을 알 턱이 없는 법입니다."
송충과 가의는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송충은 궁전 문 밖에서 가의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실제로 도가 높을수록 몸은 안전하고 권세가 클수록 위험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절대적인 권세의 자리에서는 언제 몸을 망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역술가가 뱃속 편할 것입니다. 역술가는 점괘가 맞지 않더라도 복채를 돌려줄 염려가 없지만, 우리는 하는 일의 결과가 나쁘면 대뜸 신변이 위태롭게 되니까 말입니다."
가의도 이렇게 말하였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다. 송충은 흉노 땅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기 때문에, 그 죄를 추궁당하여 참살되었다. 그리고 가의는 양나라 회왕의 교육 담당관이 되었으나, 왕이 낙마하여 죽었기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들은 영화를 좇다가 오히려 자신들의 목숨을 잃고 만 것이었다.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명예인가, 재물인가, 권력인가? 왜 얻으려 하는가? 이 책을 덮고서 당신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 해야 할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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