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해서공 때 한 가난한 효자가 있었다. 그는 모친상을 당했으나 돈이 없어 다른 사람들을 불러 장례식을 치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모친의 관을 메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상복을 입고 무덤을 판 다음 관을 묻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한 부인네가 어린아이를 안고 지나가다가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정이 지나도록 효자는 어머니 무덤곁에서 꼼짝하지 않고 졸지도 않은 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 부인네는 정말 피곤했던지 불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 바람에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 부인은 다름아닌 여우였고 안고 있는 아이는 까마귀였다. 효자는 즉시 그들을 때려죽인 후 고랑에 내다버렸다. 다음날 웬 사내 하나가 효자에게 와서 한 모자가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어제 저녁 분명히 이 길로 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않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효자가 대답했다.
"봤소. 그 모자는 사람이 아니었소. 바로 여우와 까마귀가 둔갑한 것이었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때려죽였소."
"미친 소리! 네가 내 아내와 자식을 죽여놓고 도리어 허황된 말만 늘어놓는구나. 네 말대로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면 어디 그 시체를 한번 보러가자."
효자는 그 사내를 데리고 어제 저녁 그 시체를 버린 고랑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우는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죽어 있었다. 순간 효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내는 효자를 포박해서 관아로 끌고가 처형해줄 것을 요구했다. 효자는 그 사내의 눈을 피해 현령에게 말했다.
"이 사내는 여우가 둔갑한 것입니다. 사냥개를 풀어 물어뜯게 하면 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며칠 후 그 사내는 현령을 다시 찾아와 빨리 처형하라고 졸랐다. 이에 현령은 슬그머니 그 사내에게 사냥개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사냥개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현령은 매우 좋아하면서 당장 사냥개를 풀었다. 그 사내는 개를 보자 즉시 늙은 여우로 변해 사방으로 날뛰었다. 현령은 활을 꺼내 그 여우를 쏘아죽였다. 그리고 효자와 함께 그 고랑으로 가 보았더니 죽인 부인 역시 여우로 변해 있었다.
<법원주림>
여든번째 이야기 - 고깃덩어리로 태어난 아이들
옛날 바라나국의 국왕은 수많은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한 부인이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당장 국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국왕도 몹시 기뻐하며 그 부인을 극진히 모시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윽고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부인은 산기를 느끼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것은 응애응애 하고 울어대는 갓난아이가 아니라 한덩이의 고깃덩어리였다. 마치 빨간 꽃처럼 생긴 그것을 보고 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부인들이 낳은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잘생겼는데, 내가 낳은 것은 사지마저 없는 고깃덩어리이니 국왕이 보면 실망하실 게 분명하다.' 그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로 된 상자 하나를 가져다가 그 고깃덩어리를 집어넣고는 겉에 '바라나 국왕 부인의 소생'이라고 쓴 다음 봉인했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그 상자를 강에 내다버리게 했다. 상자는 강을 따라 하류로 흘러갔다. 여러 귀신들의 도움을 받은 탓인지 그 상자는 풍랑을 만나도 가라앉지 않은 채 계속 흘러가 한 도사와 여러 목동들이 사는 마을 강변에 도착했다. 그때 강변에 세수하러 왔던 도사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가져갔다. 도사가 그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상당히 고급스러운 것으로 조금도 부숴진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바라나 국왕 부인의 소생'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봉인이 그대로인 것을 보면 아무도 그 상자를 열어본 적이 없는 게 확실했다. 도사는 이 상자가 왕가의 물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신선한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지 않은가? 이에 도사는 생각했다. '만약 죽은 고깃덩어리라면 강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동안 썩고 말았으리라. 그런데 이 고깃덩어리는 아직도 신선하니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자 고깃덩어리는 여전히 신선했지만 어느새 두덩이로 나뉘어 있었다. 또 한 달이 지나자 두덩이의 고기는 각각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변했다. 남자아이는 피부가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귀가 커다란 게 틀림없는 복상이었다. 여자아이도 백옥 같은 피부에 달덩이같이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사는 그 아이들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마치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그는 남자아이에게 이차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도사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을 해서 어린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기를 쉬지 않고 계속했다. 도사가 아이들을 기르느라고 고생하는 모습을 본 이웃 목동이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오. 그런데 출가자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은 수도인데, 두 아이를 기르자면 방해가 되지 않겠소? 그 아이들을 내게 맡기면 잘 길러볼 참이오. 그러면 서로 좋은 것 아니오?"
"그게 좋겠소"
다음날 목동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도사는 매우 서운해하며 목동에게 당부했다.
"이 아이들은 복덕이 대단하오. 부디 좋은 우유와 신선한 과일 등을 먹이며 부족함 없이 길러주시오. 그리고 두 아이가 크면 서로 부부가 되게 하시오. 그후 넓고 평탄한 곳을 찾아 집을 지어주어 같이 살게 하시오. 그렇게 하면 남자아이는 대왕이 되고 여자아이는 왕비가 될 것이오."
말을 마친 도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동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목동의 보호 아래 두 아이는 날로 커서 여자아이는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고, 남자아이는 영준한 청년이 되었다. 그들이 십육 세가 되자 목동은 넓고 평탄한 곳을 골라 그 한가운데 집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결혼시켜 그곳에 살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남녀 쌍둥이를 낳았다. 그 쌍둥이가 십육 세가 되자 역시 결혼을 시켰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자 왕족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했다. 그래서 목동은 집을 확장해서 삼십이명은 족히 살수 있게 했다. 나중에 그들이 자리잡고 살던 곳은 번화해져 비사리라는 이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