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2장 -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마흔여덟번째 이야기 - 다섯 왕의 대화
옛날에 다섯 나라의 왕이 서로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그들의 나라는 서로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의 왕은 보안왕이었는데, 그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나머지 네 명의 왕은 보안왕과는 달리 온갖 사악한 행위를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보안왕은 그들을 가엾게 여겨 교화할 생각을 하였다. 보안왕은 곧 자신의 궁전에 그들을 초청하여 이레 동안의 잔치를 벌였다. 다섯 왕은 꼬박 이레 동안 매일 음주가무를 즐기며 보냈다. 이레가 지나자 네 명의 왕은 보안왕에게 자신들의 나라에 처리할 일이 많으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보안왕은 그들을 화려한 마차에 태우고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가두에서 환송하게 했다. 보안왕은 반드시 그들을 교화하리라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각자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이야기해보시오."
그러자 각각의 왕들이 돌아가며 말했다.
"저는 꽃 피고 새우는 춘삼월 호시절에 들판으로 소풍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훌륭한 말과 화려한 옷과 궁전을 갖추고 여러 신하들의 시중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궁 밖 출입을 할 때 풍악을 울리며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입니다."
"천하절색의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마음껏 즐기며 사는 게 제 바람입니다."
"부모형제가 모두 무고하고 호의호식하며 그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것입니다."
각기 말을 마친 네 왕은 같은 질문을 보안왕에게 했다.
"그러면 대왕께서 좋아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여러분이 말씀한 바를 제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분이 말씀하신 춘삼월 호시절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도 가을이 되면 시들고 말 것이니 이는 영원한 즐거움은 아닙니다. 또 한 분이 말씀하신 국왕의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여러 왕들도 그 국왕됨을 즐겼으나 복이 다하면 이웃 나라의 침공을 받아 망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영원한 즐거움은 못 됩니다. 그 다음 분은 좋은 처자와 함께 즐기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만약 병이라도 들면 그 근심과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되니, 그 또한 영원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분은 부모형제가 무고하고 그들과 함께 호의호식하며 지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바 그들이 국법이라도 어겨 옥에 갇힌다면 왕이라고 해도 쉽게 구해낼 수 없는 것이니, 이것 역시 영원한 즐거움은 아닙니다. 나는 불생, 불사, 불고, 불뇌, 불기, 불갈, 불한, 불열 그리고 존망자재 하기를 바랍니다."
"대왕의 그러한 바람을 해결해주실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 계십니까?"
"그 분은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지금 기원정사에 와 계신답니다."
보안왕의 대답을 들은 왕들은 기뻐하며 그와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하고 말했다.
"저희들이 둔하고 미련한 탓에 세속의 쾌락에만 탐착할 뿐 죄와 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여러 왕들은 들으시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만나는 괴로움은 한량없는 것이오. 그 괴로움을 크게 대별해서 팔고라고 부르오. 그러면 팔고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드리리다. 먼저 태어나는 괴로움과 늙는 괴로움, 병드는 괴로움, 그리고 죽는 괴로움이오. 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과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 그리고 미운사람과 만나는 괴로움과 슬픔, 근심 등의 여러 가지 번뇌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이오. 이것들을 일컬어 팔고라고 하는 것이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네 왕은 자신들의 욕심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설오왕경>
마흔아홉번째 이야기 - 목수와 화가
북인도에 손재주가 아주 좋은 목수가 있었다. 그는 나무를 깎아 여인의 조각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목수가 그 나무 여인에게 옷을 입히고 머리에 장식을 달아주니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나무 여인은 신기하게 움직일 수도 있었고 손님의 술시중도 들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때 남인도에는 신기에 가까운 그림 솜씨를 가진 화가가 있었다. 목수는 그 소문을 듣자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남인도의 화가를 초청했다. 화가가 오자 목수는 나무 여인으로 하여금 술시중을 들게 했다. 화가는 나무 여인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아름다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밤이 되자 목수는 자기 침실로 돌아가면서 일부러 나무 여인을 화가의 방에 남겨두며 말했다.
"시녀더러 여기에 남아있으라고 할 테니, 시키실 일이 있으면 시키도록 하시오."
화가는 무척 좋아하며 목수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무 여인을 불렀다. 그러나 나무 여인이 한 마디 말도 없자, 그는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고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순간 목수는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 나무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는 그제서야 목수의 장난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바보였구나. 목수의 장난질에 속아넘어가다니... 그렇다고 가만 있을 내가 아니지."
화가는 목수의 장난을 되받아칠 꾀를 생각해냈다. 벽에 목을 메고 죽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목수를 놀래켜줄 생각이었다. 역시 신기를 가진 화가답게 그 그림은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그림을 다 그린 화가는 방문을 닫고 침상 밑에 들어가 숨었다. 다음날 아침 목수는 창문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목수는 화가가 목을 메고 죽은 것으로 알고 다급히 칼로 줄을 끊으려고 했다. 그때 줄이 맥없이 찢어지자 목수는 그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침상 밑에 숨어 있던 화가가 그제서야 웃으면서 기어나왔다. 목수는 속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에 화가가 말했다.
"당신이 나무 여인으로 나를 속였기에, 나도 그림으로 당신을 놀려본 것 뿐이니 너무 노여워 마오."
화가와 목수는 자신들의 장난을 통해 세상 만사가 모두 같은 이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환영이 판치는 세상에 남아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마침내 출가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잡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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