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파사닉왕과 마리부인 사이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피부는 흡사 뱀껍질 같고 머리칼은 마치 말꼬리마냥 억세기만 했다.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던 파사닉왕은 다른 이들이 딸아이를 보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딸아이가 마치 사람같지 않은 추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마리부인의 소생인 만큼 잘 길러야 할 것이다.' 딸이 커서 시집갈 나이가 되자 왕은 매일 근심에 싸여 있다가 한 신하에게 말했다.
"경이 사윗감을 구해보도록 하구려. 본래 호족 가문이지만 지금은 빈곤하여 재산이 없는 자라면 가능하지 않겠소?"
왕명을 받은 신하는 널리 사람을 구하다가 이윽고 한 빈곤한 호족의 아들을 찾아내 파사닉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은 그 사내를 밀실로 데리고 가 은밀하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자네가 본래 호족 출신이지만 지금은 매우 빈곤하다는 사실을 들어알고 있네. 내 딸이 비록 추한 용모를 가졌지만 자네가 거절하지 말고 내 딸을 받아주었으면 하네."
그 사내는 파사닉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마땅히 대왕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설사 개를 하사하신다 할지라도 저는 거역하지 않겠사온데, 하물며 마리부인의 소생을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이에 왕은 그 빈곤한 사내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그리고 그 집에 일곱 겹의 대문을 설치하고 나서 사위에게 부탁했다.
"외출할 때면 자네만이 문을 열고 닫아 다른이들이 내 딸의 추한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게. 그리고 항상 문을 닫아걸고 딸아이를 절대 집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하네."
왕은 딸과 사위에게 넘치도록 물건을 하사하고 또 얼마 후에는 사위를 대신의 자리에 임명하여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게 하였다.
그러던 중 다른 호족들과 함께 모임을 가질 때마다 모두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여 즐기는데, 유독 왕의 사위인 대신만은 늘상 혼자라 뭇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저 대신의 부인이야말로 정말 아름답지 않을까? 오늘은 계략을 꾸며서라도 저 대신의 부인을 한번 봐야겠구나.' 이렇게 의기투합한 호족들은 작당하여 대신에게 술을 자꾸 권해 대취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대신이 차고 있던 열쇠를 풀어낸 다음 다섯 사람을 대신의 집으로 보내 그 부인을 보고 오게 했다. 마침 그때 대신의 부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몹시 괴로워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항상 어두운 방에 갇혀 해와 달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아, 지금 세상에 계시는 부처님은 항상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관찰해서 고난 속에 헤매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곧 제도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나서 그 부인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예배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부처님이시여, 잠시라도 오셔서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주소서.' 부처님은 그 부인의 신심이 돈독함을 아시고 그 집에 도착하여 땅속에서 솟아나 그녀 앞에 검푸른 머리칼을 보이셨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부처님의 머리칼을 보니 마음 가득히 기쁨에 넘쳐 신심이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칼은 자연스럽게 윤기가 흐르며 검푸른 색을 띠었다. 부처님이 점차 얼굴을 내보이시자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했고, 동시에 그녀의 얼굴은 단정하게 변해 뱀껍질 같은 피부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계속해서 부처님이 금빛 찬란한 몸을 보이시자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기쁨은 비할 바 없었고, 마치 천녀와도 같이 우아한 몸매로 변하였다. 부처님이 그녀를 위해 여러 가지 법을 설하시자 그녀는 마음과 뜻이 열려 수다원과를 얻게 되어 하늘을 날 듯이 기뻐했다. 부처님이 본래 거처로 돌아가시고 나서 대신의 집으로 보내진 다섯 사람이 문을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부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서로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모임에 데려오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문을 닫고 서둘러 돌아와서 열쇠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모임이 끝나고 술이 쌘 대신이 집에 돌아오자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놀란 대신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저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전에 그렇게도 못생겼던 당신이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변했단 말이오?"
부인은 부처님의 은덕을 입어 이렇게 변했노라고 설명하고 부왕을 만나고 싶으니 그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신은 왕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제 아내가 대왕을 뵙고자 합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빨리 가서 문을 굳게 잠그고 나오지 못하게 하라."
"대왕마마, 아내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힘입어 천녀처럼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빨리 가서 데리고 오도록 하게."
파사닉왕은 이윽고 화려한 마차를 타고 왕궁에 들어온 딸이 천하절색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곧 명령을 내려 마차를 장엄하게 꾸민 다음 딸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 예배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제 딸이 도대체 전생에 무슨 복덕을 지었길래 왕가에 태어났으며, 또 무슨 악업을 저질렀길래 짐승과도 같은 추악한 모습으로 태어났던 것입니까? 원컨대 그 연유를 알려주소서."
"이제 대왕을 위해 그 연유를 설명할테니 잘 들으시오. 셀 수 없는 과거세에 바라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한량없는 재보를 가진 한 장자가 살고 있었소. 그 장자는 가족들과 함께 벽지불 한 분을 꾸준히 공양해왔는데, 그 분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오. 그런데 장자의 한 딸아이가 벽지불이 오는 모습을 보고 나쁜 마음을 먹고 건방을 떨며 이렇게 모욕했소.
"어쩌면 얼굴이 저리 추하고 피부는 말라비틀어져 역겨울 정도일까?"
그러나 벽지불은 그 장자의 집에 드나들며 공양을 받아온 지 오래 되었기에 열반에 들려고 할 무렵 신통력을 발휘하였소. 허공에 몸을 솟구쳐 불과 물을 뿜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허공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모습을 장자의 가족들이 모두 보게 한다음 다시 장자의 집으로 내려왔다오. 장자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 어쩔 줄 몰라했고, 딸아이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소. '원컨대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소서.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하오니 부디 용서해주소서.' 대왕이여, 기억해두시오. 당시 장자의 딸아이는 벽지불을 모욕했던 악업을 저질렀기에 후생에 그렇게 추한 몸을 받게 된 것이라오. 그러나 나중에 벽지불의 신통력을 보고 참회했기에 세상에서 비할 바 없는 아름다움을 얻게 된 것이오. 또 벽지불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항상 부유하고 귀한 가정에 태어나게 되었소. 그리고 다시 나를 만나서 그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오."
파사닉왕과 여러 대신들은 부처님이 들려주신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과 뜻이 열렸으며, 여러 비구들도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