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께서 스스로 재물을 탈취하고 나서 정승을 시켜 변상케 한다면, 그것은 대왕이 저지른 악행을 가지고 정승이 백성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에 대하여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전숙은 조나라 사람으로 한나라 문제와 경제를 섬겼다. 한나라 경제 때 양나라 왕이 스스로 황태제가 되겠다고 자청하였을 때, 오나라 재상이었던 원앙이 이를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원앙은 양나라 왕이 보낸 자객에게 칼을 맞고 죽었다. 이러한 사실을 들은 경제는 전숙을 불러 그 사건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전숙은 곧 사건을 자세히 조사하여 경제에게 보고하였다.
"양왕이 자객을 보내 원앙을 죽인 게 사실이오?"
경제는 양나라 왕이 친동생이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은근히 사실이 아니기 바라고 있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어디 그럴만한 증거라도 있단 말이오?"
경제는 전숙의 말대로 양나라 왕이 원앙을 죽였다면 친동생을 처벌해야 하는데, 그것이 큰 근심거리였던 것이다.
"폐하께서는 양나라 일을 가지고 더 이상 문제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어째서 그렇소? 방금 그대는 그 사건이 소문과 같이 사실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마땅히 죄인을 처벌해야 하는데, 어찌 짐에게 더 이상 문제삼지 말라는 것이오?"
전숙이 말하였다.
"지금 양나라 왕을 주벌하지 않으면, 이것은 한나라의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고 만천하에 소문이 날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법대로 주벌하게 된다면 폐하와 양나라 왕의 모후이신 황태후께서 음식을 들어도 그 맛을 모르실 것이며, 누워도 잠자리가 편치 않을 것입니다. 또한 폐하 역시 친동생을 잃게 되니, 그 근심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이것은 폐하의 심중을 괴롭히는 일이 되어 결국 한나라의 우환이 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법은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 있는 것이니, 이 일로 인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질까 걱정스럽습니다."
전숙의 말을 듣고 경제는 양나라 왕에 대한 죄를 묻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경제는 전숙을 노나라 상국으로 삼았다. 전숙이 재상이 되어 노나라로 가자, 백성들이 몰려와 다음과 같이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대왕께서 저희들의 재물을 탈취하였습니다. 승상께서는 그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렇게 호소하는 백성들이 백여 명이 넘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반드시 그대들의 재산을 찾아주도록 하겠다."
전숙은 우선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후 전숙은 주동자급 20여 명을 색출하여 각각 50대의 곤장을 때리고, 나머지 동조한 무리 50여 명을 붙잡아 각각 곤장 20대씩을 쳤다.
"그대들은 대단한 불경죄를 저질렀다. 대왕은 그대들의 주인이 아니더냐? 어찌 감히 자기 주인을 제소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대들에게 곤장을 때린 것은 대왕을 섬길줄 모르는 데 대한 죄를 물은 것이다. 이제들 돌아가도록 하라."
백성들은 재산을 찾아준다고 하면서 오히려 불경죄를 다스려 곤장을 때린 전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곧 노나라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노나라 왕은 자신이 백성들의 재물을 탈취한 사실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고 곧 전숙을 시켜 왕실의 창고에서 쌓아둔 재물을 꺼내어 백성들에게 되돌려주도록 하였다.
"그것은 안 됩니다. 대왕께서 스스로 재물을 탈취하고 나서 정승을 시켜 변상케 한다면, 그것은 대왕이 저지른 악행을 가지고 정승이 백성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나라 왕은 전숙의 말을 듣고 더욱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매듭은 묶은 사람이 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숙은 살짝 돌려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왕은 직접 백성들에게서 빼앗았던 재물을 되돌려주었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백성들 사이에서 전숙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갔다. 노나라 왕도 그를 더욱 신임하게 되었다.
처신 : 지혜로운 부하는 상사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것이 진정 자신이 돋보이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부하일수록 상사를 험담한다. 상사를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이 올라가려 하지만 실제는 서로의 갈등으로 상처입고 추락하는 길임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