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황자의 스승이 된 양치기 <복식>
-"비단 양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백성을 돌보시는 일도 같은 요령이라 생각됩니다. 일을 시킬 때 시키고, 쉴 때는 쉬게 하고, 해가 되는 것은 그때마다 제거하여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한나라 무제가 흉노족을 토벌할 때 시골의 어느 양치기가 상주문을 올리고, 자기 재산의 절반을 군사비로 헌납하겠다고 청원하였다. 무제는 곧 사자를 보내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떤 관직을 원하는가?" 양치기가 대답하였다.
"저는 복식으로, 젊어서부터 목축으로 살아온 자입니다. 관직을 가진다니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는 일입니다."
"그럼 억울한 일이 있어, 그것을 풀기 위함인가?"
"아닙니다. 저는 일찍이 남과 다툰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는 생활을 도와주고, 불량한 자에게는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생활 방식으로 살아왔으므로, 모두 제 말이라면 잘 들어줍니다. 그러니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복식이 머리를 숙여 무제가 보낸 사자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는 재산의 절반을 헌납하려 한다는데, 그럼 다른 무슨 목적이라도 있단 말인가?"
"천자께서 흉노와 싸우고 계시다는데 평민이라 하여 편안히 있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힘 있는 자는 목숨을 던지고, 재산이 있는 자는 돈을 내놓지 않으면 흉노를 퇴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양치기 복식의 말을 그대로 무제에게 전했다. 무제는 승상 공손홍에게 물었다.
"복식이란 자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복식의 말에는 수상쩍은 데가 있습니다. 이러한 수법은 천자의 위덕에 순종치 않는 불량배에게 흔히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아무쪼록 허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제는 공손홍의 말을 들어 복식의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간 복식은 전처럼 목축업에 열중하였다. 그는 원래 하남의 농사꾼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제끼리 살았다. 아우가 30세가 되었을 때, 그는 토지와 가옥과 재산일체를 아우에게 넘기고 자신은 양만 1백여 마리 가지고 집을 떠났다. 그후 복식은 산에 들어가 양치기에 전념하여 10여 년만에 양을 1천 두 이상으로 늘리고 토지와 가옥도 마련하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우가 가산을 다 탕진하여, 그는 다시 아우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이처럼 복식은 꾸준히 노력하여 재산을 불리고, 그 재산으로 아우는 물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썼다. 흉노의 홍야왕이 투항해 왔을 때 한나라의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 더구나 다음 해에 빈민들을 새로운 영토로 이주시켰는데, 나라에서 부담하기로 한 그 비용조차 충당할 길이 없었다. 이 소문을 듣고 복식은 고향인 하남군 태수를 찾아가 20만 전을 헌납하였다.
"이 양치기 사내는 그 전에도 재산의 절반을 군사비로 헌납하겠다고 청원했던 일이 있었지..."
무제는 양치기 복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무제는 복식에게 포상으로 20만 전에 해당하는 4백 명분의 노역을 면제시켜 주었다. 그러자 복식은 그 포상에 상당하는 돈을 또 다시 국가에 헌납하였다. 당시 부자들은 모두가 자기 재산을 숨기기에 급급할 때였으므로 그의 이러한 행위는 더욱 빛났다. 이제 무제는 복식의 인격을 믿게 되어, 그를 장안으로 불러 중랑의 벼슬을 내렸다. 복식은 벼슬에 대해 별로 마음이 없었다. 그러자 무제는 복식을 설득하였다.
"중랑이라고는 하지만 직무는 아무래도 좋다. 그대 생각이 정 그렇다면 상림원에 가서 짐의 양을 길러다오."
복식은 그것까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양을 기르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벼슬은 중랑이지만, 그는 검소한 옷에다 짚신을 신고 생활하며 궁궐의 상림원에서 양을 길렀다. 1년쯤 지나자 양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새끼들을 번식하여 그 수가 많이 늘었다. 무제는 그 양들을 보고 감탄하였다.
"대체 어떻게 길렀길래 이렇게 양들이 통통하니 보기 좋게 살이 올랐을꼬?"
이때 복식이 대답하였다.
"비단 양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백성을 돌보시는 일도 같은 요령이라 생각됩니다. 일을 시킬 때 시키고, 쉴 때는 쉬게 하고, 해가 되는 것은 그때마다 제거하여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무제는 그 말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번 시험삼아 복식에게 현령 자리를 주어 백성들을 다스려 보게 하였다. 복식이 작은 현의 현령을 맡자, 백성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무제는 다시 조금 더 큰 교통 요충지의 현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물자 수송을 아주 원활히 하여 예전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현을 발전시켰다. 무제는 복식의 일에 대한 열성에 반하여, 곧 그를 자신의 아들인 제왕의 교육을 담당하는 태부로 임명하였다.
순리 : 세상일은 억지로 하고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이 순리를 따랐을 때만 하고자 하는 일이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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