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말라<채택>
-"들리는 말에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제 용모를 볼수가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그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글에 이르기를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말라'고 했습니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으로 공부를 많이 하였으나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였다. 의기소침해진 그는 위나라의 유명한 관상가 당거를 찾아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선생께서는 지금 조나라 재상이 된 이태의 상을 보고 '앞으로 백일 이내에 큰 벼슬을 하겠다'고 하였으며, 또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의 상은 과연 어떠한 지 봐주십시오."
"선생은 이마가 튀어나온 얼굴에, 콧대에 주름이 잡힌 납작코이며, 두 다리는 휘어져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성인은 상을 보고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선생 같은 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채택은 당거가 자신을 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귀는 내가 스스로 가진 바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수명이오. 얼마나 더 살 것 같습니까?"
"앞으로 43년 더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됐소."
채택은 그것만으로도 흡족하여 물러나왔다. 그후 채택은 조나라에 가서 벼슬자리를 구걸하다 쫓겨났으며, 한나라와 위나라에 가서는 벼슬자리는커녕 도둑까지 맞았다. 채택이 진나라에 갔을 때 응후 범수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정안평과 왕계를 추천하였다가, 그들이 모두 중죄를 짓게 되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채택은 진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범수에게 욕을 하였다.
"나는 연나라 사람 채택이다. 천하의 걸물이며 박학다식하고 지혜로운 선비를 진나라가 몰라주는구나. 내가 딱 한 번 대왕을 뵙기만 하면 응후처럼 사람 볼 줄 모르는 위인은 단번에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 말은 곧 범수의 귀에 들어갔다.
"그 채택이라는 사람을 모셔오도록 하라."
범수는 사람을 시켜 채택을 초청하였다. 얼마 후 채택이 불려왔는데, 그는 범수를 보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만불손한 자세를 취한 체 버티고 서 있었다. 범수는 은근히 화가 났다.
"나를 비방하고 다녔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진나라 재상이 되겠다고 했다면서요?"
"네, 승상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채택은 당돌하게 말하였다. 범수도 세 치의 혀로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변설을 늘어놓아 상대를 궁지로 모는 채택의 언변도 여간이 아니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궁지에 몰리게 된 범수는 점차 당황하였다.
"들리는 말에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제 용모를 볼 수가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그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글에 이르기를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말라'고 했습니다. 옛날 상앙이나 백기, 오기 등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다가 화를 입었습니다. 어째서 승상께서는 이 기회에 재상의 자리를 현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제 승상께서는 초야에 묻혀 그윽한 산세와 냇물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역경"에 보면 '항룡에게도 후회할 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올라가기만 할 뿐 내려올 줄 모르며, 허리를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을 모르고, 또한 앞으로 가기만 할 뿐 돌아올 줄을 모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원컨대 승상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범수는 곧 채택이 큰 인물임을 알아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옳은 말씀이오. 내가 들으니 '하고자 하여 그칠 줄 모르면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잃게 되고,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르면 그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다'고 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좋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후부터 범수는 채택을 상객으로 모셨다. 그리고 진나라 소왕에게 채택을 추천하자, 왕은 그를 곧 객경으로 삼았다. 범수는 그후 병을 핑계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그 자리는 자연히 채택이 물려받게 되었다. 채택은 재상으로 있으면서 좋은 계책을 많이 내었으며, 그의 계책으로 진나라는 주나라 왕실의 땅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어느 날 채택을 두고 여러 신하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채택은 병을 핑계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소왕은 그를 강성군에 봉하였다. 범수도 그렇지만, 채택도 자신의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용퇴 : 자신을 바로 보는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안다.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망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한다. 그래서 스스로 물러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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