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 뜻밖에 오는 복, 뜻밖에 미치는 화<춘신군>
-"소첩은 지금 승상의 아이를 뱃속에 갖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승상과 소첩 뿐입니다. 승상께서 소첩을 고열왕에게 바쳐주십시오. 그러면 소첩은 승상의 아들을 낳아 고열왕의 다음 대를 잇게 하겠습니다.-
초나라 고열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재상인 춘신군은 그 일을 근심하여 수시로 왕에게 마땅한 여인을 소개했으나 어느 여인도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이때 조나라에서 온 이원에게는 경국지색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는 고열왕에게 여동생을 바쳐 아들을 낳게 함으로써, 그 후광을 입어 평생을 보장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 무렵 세간에는 고열왕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고자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원은 '꿩보다 닭'이라는 생각을 고쳐먹고 춘신군을 찾아가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이원은 휴가를 얻어 조나라로 돌아갔다가 일부러 늦게 돌아왔다. 춘신군이 늦게 온 이유를 물었다.
"사실은 제 여동생이 경국지색입니다. 그런데 조나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의 여동생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사신과 옥신각신하며 술을 마시느라 늦었습니다."
이것은 이원의 거짓말이었다.
"이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 여동생은 조나라 왕에게 보냈소?"
"아직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이 절대 조나라 왕에게는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대의 여동생을 잠시 볼 수는 있겠소?"
"물론입니다. 이번에 조나라에서 아예 이곳 초나라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원은 곧 여동생을 춘신군에게 소개하였다. 첫눈에 반한 춘신군은 이원의 여동생을 총애하였으며, 그녀는 곧 아기를 잉태하였다. 이때 이원은 여동생과 모의를 꾸몄다. 이원이 시키는대로 여동생은 춘신군을 설득하였다.
"지금 승상께서는 초나라 재상으로 계신지 2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초나라 왕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만약 초나라 왕이 돌아가신 후에 다시 왕의 형제들이 제위에 오른다면, 더 이상 승상께서는 재상의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찌하란 얘기냐?"
"소첩에게 한 가지 좋은 계략이 있습니다."
"계략이라?"
"소첩은 지금 승상의 아이를 뱃속에 갖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승상과 소첩뿐입니다. 승상께서 소첩을 고열왕에게 바쳐주십시오. 그러면 소첩은 승상의 아들을 낳아 고열왕의 다음 대를 잇게 하겠습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로다. 어찌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춘신군은 어이가 없어 당돌한 여인을 마주 바라보았다.
"이는 승상께서 죽느냐 사느냐의 실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승상에게 딸린 몸이니, 제 목숨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본 춘신군은 애첩의 간청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에 애첩이 고열왕에게 가서 아들을 낳아 태자가 된다면, 앞으로 초나라는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었다. 춘신군은 애첩을 고열왕에게 바쳤다. 그후 사내 아이가 태어나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이원의 여동생은 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고열왕은 왕후의 오빠인 이원을 중용하여 측근에 두었다. 그로부터 5년 후 고열왕이 병들었을 때, 주영이란 사람이 몰래 춘신군을 찾아와 말하였다.
"지금 승상께서는 뜻밖에 오는 복과 뜻밖에 미치는 화를 동시에 갖고 계십니다."
"뜻밖에 찾아오는 복이란 뭐요?"
"승상께서 초나라 재상으로 계신지 25년, 이름은 상국이라 하나 실권은 초나라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위중하신 대왕께서 승하하시고 나면 어린 군주를 도와 섭정을 하시게 되거나 스스로 초나라 왕이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이 뜻밖의 복입니다."
"그렇다면 뜻밖에 미치는 화는 무엇이요?"
"지금 왕후의 오라비 이원은 고열왕의 총애를 받는 측근입니다. 이원은 승상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며, 만약을 대비하여 수하에 검객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대왕이 승하하시면 그는 곧바로 검객들을 풀어 권력을 잡고, 승상을 주경 입을 봉할 것입니다. 이것이 승상께는 뜻밖에 미치는 화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미 주영은 춘신군과 왕후 사이의 비밀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화를 면하려면 어찌해야 하겠소?"
춘신군이 물었다.
"그것은 또한 뜻밖의 사람이 있어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그 뜻밖의 사람이란 누구요?"
"바로 저 주영입니다. 승상께서 저를 나중에 임명하시면, 대왕이 승하한 후 이원을 즉시 죽여버리겠습니다."
춘신군은 주영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요. 이원은 약한 사람이고, 나 또한 그를 객인으로 데리고 있어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소. 어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겠소?"
주영은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에게 어떤 화가 미칠 지 몰라 멀리 도망쳐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17일 후에 고열왕이 죽었다. 이원은 과연 주영의 말대로 검객들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단 순간에 권력을 장악해 버렸다. 그리고 궁궐 문 근처에 자객을 매복시켜놓았다. 이러한 사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춘신군은 고열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입궐하다가 이원의 자객들에게 시살되었다.
'이자의 입에서 왕후의 임신 비밀이 새어나올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이원은 이렇게 속으로 뇌까렸다. 이원은 춘신군만 죽인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리고 춘신군의 아들, 즉 이원의 여동생이 낳은 어린 태자가 즉위하여 초나라의 유왕이 되었다. 술수: 덫을 놓는 자 뒤에는 함정을 파는 자가 있다. 작은 술수를 쓰는 자는 큰 술수에 당한다. 술수를 쓰는 자에게는 반드시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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