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원수의 시체를 파내어 3백 번 태질을 가하다 - 오자서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라! 그리고 그 시체를 내 앞으로 가져와라!" 오자서는 무덤에서 파낸 초나라 평왕의 시체에다 3백 번 태질을 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분풀이를 하였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는 평왕의 태자 건의 태부였다. 그리고 그 밑에 태자의 소부로 비무기가 있었는데, 그는 간특한 기회주의자였다. 진나라로부터 태자비를 맞아들일 때, 평왕은 비무기를 사신으로 보냈다. 그런데 태자비를 먼저 보고 온 비무기는 평왕에게 살짝 그녀가 천하절색의 미인이라 보고하였다. 평왕은 태자비가 오자 자신이 먼저 본 후 마음이 달라져 그날로 바로 아들의 신부감을 가로채버렸다. 이렇게 되자 비무기는 은근히 태자가 두려워졌다. 그는 평왕에게 태자가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참소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태부 오사는 평왕에게 나가 비무기의 잘못을 비판하였다.
"대왕께서는 어찌 사람을 모함하는 소인배의 말만 들으시고 골육인 친자식을 의심하려 하십니까?"
그런데 이때 마침 태자는 아버지 평왕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이에 평왕은 정말로 태자가 반역을 하려고 했다 생각하고, 태부 오사 역시 한통속이라며 즉시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비무기는 후환이 두려워 오사의 두 아들까지 반역에 가담하였다며, 빨리 그들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간하였다. 평왕은 오사를 불러 말하였다.
"네가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너만큼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두 아들이 오지 않으면 너는 곧 주살될 것이다."
오사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불러 보십시오. 큰아들은 성정이 어질어 반드시 올 것이나, 작은아들은 고집이 세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곧 오사의 집으로 사자를 보냈다. 큰아들 오상은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며 순순히 왕의 명에 따랐다. 그러나 아버지 오사의 말처럼 작은아들 오자서는 달랐다.
"형님, 대왕이 우리 형제를 부른 것은 아버지를 살려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만일 도망치게 되면 후환이 두려워 아예 우리 형제를 주살해 버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님이 고집을 세우시니 저로서는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망쳐서 살아남았다가 이 원수를 반드시 갚고야 말겠습니다."
오자서는 그길로 태자 건이 도망쳤다는 송나라로 갔다. 이렇게 오자서가 도망치고 나서, 초나라 평왕은 오사와 오상 부자를 죽여버렸다. 한편 송나라에서는 화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 난을 피해 오자서는 태자와 함께 정나라로 갔다.
"우리는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초나라를 칠테니 군사를 빌려주십시오."
오자서는 태자 건과 함께 정나라 왕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그대들의 사정이 딱한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 정나라가 초나라와 원수지간이 될 수 없는 일이오."
오자서는 태자와 의논하여, 이번에는 진나라로 가서 군사를 빌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서도 군사를 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진나라 왕 경공은 태자 건이 정나라와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나라가 먼저 정나라를 쳐서 이긴 후, 군사를 빌려주겠다고 하였다. 단 조건은 태자 건이 다시 정나라에 가서 진나라 군대가 도성을 공격할 때 내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오자서는, 만약 진나라가 정나라를 쳐서 이길 경우 태자 건을 정나라 왕으로 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오자서는 태자 건과 함께 다시 정나라로 갔다. 그런데 동행한 시종이 몰래 정나라왕에게 그 음모를 고자질하였다. 태자 건은 곧 정나라 군사들에게 잡혔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을 데리고 다시 오나라 쪽으로 도망쳤다. 며칠을 굶으면서 달리고 달려 장강 앞에 이르렀을 때, 뒤쪽에서 정나라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내 운명도 여기서 끝이 나는구나!"
오자서는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였다. 그때 늙은 어부가 강가의 거룻배 위에서 손짓을 하였다. 오자서는 얼른 그 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칼을 뱃삯대신 내밀었다.
"가진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 백금의 값은 나갈 것이니, 급히 강을 건너게 해주십시오."
"여보시오. 그대는 오자서가 아니오? 지금 초나라에는 곳곳에 그대의 초상이 붙어 있소. 그대의 목을 가져오면 상금 오만 섬과 높은 벼슬을 준다고 하오. 나에게 욕심이 있다면 백금짜리밖에 안 되는 칼을 받겠소 차라리 그대의 목을 가져가 푸짐한 상금을 챙기고 벼슬살이를 하는게 낫지."
늙은 어부는 그러면서 급히 노를 저어, 오자서가 무사히 강을 건너 도망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 원수를 갚기 전까지 나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몸이다!"
오자서는 이렇게 이를 악물었다. 오나라로 간 오자서는 공자 광과 친하게 지냈다. 공자광이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안 오자서는, 천하의 칼잡이 전제를 그에게 소개하였다. 공자 광이 연회를 열었을 때 전제는 생선 속에 칼을 숨기고 가서 오나라 요왕을 찔러 죽였다. 이렇게 하여 공자 광은 오나라 왕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합려였다. 오나라 왕 합려는 오자서에게 외무대신에 해당하는 행인의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한편 초나라에서는 평왕이 죽고, 태자 건의 부인이 될 뻔하였던 진나라 공주에게서 낳은 아들 진이 소왕으로 즉위하였다. 합려가 오나라 왕이 된 지 9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오자서에게는 원수를 갚을 기회가 왔다. 오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게 된 것이었다. 이때 오나라 군사는 다섯 번 공격을 하여 드디어 초나라의 수도를 점령하였다. 초나라 소왕은 운몽으로 도망쳤고, 거기서 다시 운으로, 운에서 또다시 수로 피신하였다.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수도에 입성한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부터 찾았다.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라! 그리고 그 시체를 내 앞으로 가져와라!"
오자서는 무덤에서 파낸 평왕의 시체에다 3백 번 태질을 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분풀이를 하였다. 한편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를 치다가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는데, 그것이 도져 죽었다. 그 뒤를 이어 태자 부차가 왕이 되었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인 월나라왕 구천을 쳐서 회계산에서 항복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제나라를 치려 하였을 때, 오자서가 반대를 하였다.
"제나라를 치기 전에 월나라를 경계하십시오."
그러나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이나 부차는 제나라를 치고자 하였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오자서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이처럼 번번이 반대에 부딪치자, 부차는 오자서를 미워하게 되었다. 화가 난 부차가 오자서에게 명하였다.
"그대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시오. 가서 그쪽 사정을 몰래 염탐해 오란 말이오."
오자서는 제나라로 갈 때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오나라로 돌아올 때 아들을 제나라에 남겨두었다.
"오나라는 망한다. 내가 수차에 걸쳐 오나라 왕에게 제나라를 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를 듣지 않았다."
오자서는 아들에게 오나라가 망하여 겪게 될 환난을 피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제나라에다 아들을 남겨 둔 것이었다. 그런데 한편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재상인 백비에게 뇌물을 보내어, 눈엣가시 같은 오자서를 탄핵하도록 하였다. 백비는 오자서가 아들을 제나라에 두고 온 것에 대하여 강한 의심을 품고, 이 사실을 오나라 왕 부차에 일러바쳤다.
"그렇다면 오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나라 편에 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과인이 제나라를 치자고 할 때 극구 반대를 한 것이다. 첩자 오자서가 제나라로 달아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오나라 왕은 즉시 사자를 시켜 오자서에게 칼을 보내 자결하라고 명령하였다.
"간신 백비가 충신 오자서를 죽이려 하는구나!"
오자서는 이렇게 하늘을 우러러 한탄한 후 자신의 가신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단단히 부탁하였다.
"반드시 내 무덤 위에다 가래나무를 심어주게, 오나라 왕이 적에게 패하여 죽었을 때 그 나무로 관을 짜서 시체를 넣어야 하니까. 그리고 내 눈알을 빼어서 동문 위에다 걸어주게나. 월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꼴을 꼭 보고 싶기 때문일세."
이 말을 남기고 오자서는 곧 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사신이 전하는 오자서의 말을 듣고, 오나라 왕 부차는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오자서의 시체를 말가죽 주머니에 넣어 장강에 빠뜨려라!"
그 뒤 오나라 왕 부차는 제나라를 쳐서 이겼으나,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국력이 극도로 쇠퇴하였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를 쳐서 멸망시켰으며, 곧 부차는 자결하였다.
신중 : 살다보면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혼동될 때가 많다. 깊게 생각하고 상황을 따져 판단하라. 신중해야 할 때 신중한 것은 결코 비겁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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