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소스(기원전 595년 ~ 기원전 547년?)는 기원전 561년부터 리디아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는 기원전 547년 페르시아 제국에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하여 떠돌이가 되었다. 크로이소스의 패배는 그리스에 심대한 문화적인 충격을 주었는데, 적어도 기원전 5세기 말경까지는 크로이소스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연대기의 전통적인 제약의 바깥 즉 여러 나라의 연대기에 동시에 나와 있었다. 크로이수스는 리디아의 유산으로 유명하다. 헤로도토스와 파우사니아스는 델포이에 보존된 그의 선물들을 기록하였다.] - 위키백과
크로이소스(Croesus)는 메름나다이 민족(가계)의 5대로 마지막 왕이며, 리디아를 통치한 알류아테스 2세의 아들이다. 인류가 나타난 이래 최고의 부자로 이름 높으며 그리스의 동방에서 리디아까지 지배한 최초의 왕이다. 궁성은 배움의 전당이 되고, 저명한 철학자나 우화작가인 아이소포스(이솝)을 위시하여 많은 인재를 환대하였다. 그는 철학가 솔론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인류의 가장 행복한 인물로 추앙해 주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솔론은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죽음이 올 때까지 아무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며 검소와 미덕을 중시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후에 그는 페르시아의 왕 큐도스에 도전하여 42만의 군대와 6만 필의 군마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침입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48년 대패를 당하여 수도는 함락되고 스스로는 포로가 되어 생화장에 처해지게 되었다. 장작더미에 불이 타오르자 승리한 군주 큐로스는 불 속에서 크로이소스가 슬픈 목소리로 세 번이나 "솔론!"하고 부르짖는 것을 듣고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이 때 크로이소스는 과거 그가 철학자 솔론과 나누었던 인간의 행복에 관한 대화를 이야기 하였고 그 말에 감동한 큐로스는 모든 인간사가 순간적임을 깨닫고 크로이소스를 살려주고 절친한 친구로 대하였다. 어쨌든 리디아 제국은 멸망하여 페르시아에 종속되고 크로이소스도 큐로스의 나라에서 살았으나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크로이소스는 인간으로서 최대의 부를 누린 인물로 선망되었으나, 할류스 강을 넘어가면 위대한 제국이 파멸할 것이라는 델포이의 신탁대로 결국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피레의 크로이수스, 붉은 항아리.(기원전 500년~기원전 490년, 루브르 박물관)]
오라클 오라클(Oracle, Oraculum)이란 신탁, 탁선 혹은 신탁이나 계시를 받는 곳을 의미한다. 인간의 물음에 대한 신의 답변인데, 신탁은 대개 애매하여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사람들은 나라의 중요한 일에서부터 개인의 사소한 생활까지 일일이 신탁을 받았다. 따라서 델포이, 델로스, 도도나, 암몬 등에 이름난 신탁소가 있었고 전성기에는 그리스 세계 도처에 신탁소가 생겨 보이오티아에는 25개소나 되었으며 이는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신탁소 수와 맞먹었다. 신탁은 6보격 시문이나 여러 형태의 암시, 예컨대 참나무잎의 소리나 조각상 머리의 끄덕임, 또는 호수에 있는 물고기의 헤엄으로도 지시되었다. 그러나 신탁은 신의 의지를 전달해 주는 매개체였을 뿐이고, 원래 신은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를 명확히 진술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숨기지도 않았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사제나 여사제를 매수하여 원하는 신탁을 받는 타락행위까지 있었다 신탁을 잘못 판단한 예로는 크로이소스의 일화가 유명하다. 즉 만약 할류스 강을 건너게 되면 위대한 제국이 멸명하리라는 델포이의 신탁을 받고 그 제국을 적국으로 해석하였으나 불행히도 멸망한 것은 자신의 제국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탁을 전한 사제들이 그리스 사회의 생활양식을 지속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적어도 페리클레스 시대에 오면 식자층 그리스인은 신탁을 다만 공식 종교의 일부로만 시인할 뿐 믿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