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 민왕이 수도 임치를 잃고 '거'로 도주한 후 오직 전단만이 즉묵을 근거로 삼아 연(燕)의 대장 기겁을 패주시키고 드디어 제의 사직을 보존했다. 그래서 제22에 <전단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전단(田單)은 제(齊)나라 전씨 일문(一門)의 한 사람이다. 민왕시절 임치(臨淄: 齊都, 山東省)의 저잣거리를 담당하는 속관이었는데 이토록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 무렵 연(燕)나라는 악의(樂毅)를 시켜 제나라를 쳤는데 제의 민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해 거성에 들어가 틀어박혔다. 그런 난리통에 전단은 안평(安平: 임치의 동쪽)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안평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전단은 종족들에게 수레 축의 끝 부분에다 튼튼한 쇳소각을 대도록 권고했다. 부딪쳐도 깨어지지 않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 과연 얼마 있지 않아 연나라 군대가 안평까지 침략해 왔다. 성이 무너지자마자 제나라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리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수레 축이 부서지고 바퀴가 빠지는 통에 연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오직 전단의 종족만이 무사히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수레 축을 쇠붙이로 감은 덕택이었다. 전단 일행은 즉묵(卽墨: 山東省)으로 들어갔다. 그 즈음에 연나라는 제나라 성 거의를 평정시켰지만 오직 거와 즉묵만은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거성에는 제나라 왕이 숨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연군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러나 초의 장군 요치(齊로 보내 구원케 했으나 오히려 민왕을 죽여 연과 함께 제 땅을 분할하려 했음)가 제왕을 죽인 뒤 수비를 굳게 해 연군은 여러 해를 공격했으나 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즉묵이 먼저다!] 그래서 연군은 거성을 뒤로 하고 즉묵으로 몰려들었다. 한편 즉묵의 대부(大夫)는 연과 싸우다가 죽고 없었다. 그래서 즉묵성에는 성주가 없었다. 그 때 성 안의 어떤 사람이 전단을 추천했다. [전단은 안평 싸움에서 우리들에게 쇠로 만든 수레 축을 권고해 생명을 건지게 해 주었소. 뿐만 아니라 그는 병법에도 능통한 사람이오. 그를 장군으로 추대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전단은 즉묵을 보루로 삼아 연에 대항하는 장군이 되었다. 얼마 후 연에서는 소왕(昭王)이 죽고 혜왕(惠王)이 섰다. 혜왕은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단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는 즉시 간첩을 연나라로 보내어 말을 퍼뜨리게 했다. [제왕은 이미 죽었고 함락되지 않은 성은 이제 둘뿐이다. 그런데도 악의는 귀국을 늦추고 있다. 제의 완전한 정복은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실은 남면(南面)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명목으로만 즉묵을 공격한다면서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다른 장군이 파견돼 즉묵이 쑥밭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연왕이 그 소문을 들었다. 몹시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었다. 즉시 기겁을 보내 악의와 교체해 버렸다. 악의는 조나라로 도망했다. 연의 병사들은 그런 식의 장군 경질에 몹시 분개했다.
한편 전단은 성중의 백성들에게 명을 내려 식사를 할 때마다 뜰에서 각자의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렇게 하니 공중을 날던 새들이 성중으로 내려와 제사의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백성들은 괴이쩍게 생각했다. 전단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神)이 지금 하늘에서 내리시는 중이다. 나에게 지금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려 한다. 그는 나의 스승이다.] 그 때 성중의 한 사나이가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렇다면 나도 스승이 될 수 있겠네.] 막상 그런 농담을 뱉었으나 상대가 장군인지라 놀라 도망쳐 버렸다. 전단은 뒤쫓아가서 그를 붙들었다. [여보게, 자네 그 말 참 잘 했어. 저쪽으로 가서 스승 노릇을 하게나.] [아닙니다, 장군님. 저 같은 게 무엇을 알겠습니까. 실없이 지껄인 소리니 용서해 주십시오.] [아닐세. 자네는 입 꼭 다물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네.] 그래서 전단은 그를 데리고 가서 동쪽에 앉히고 스승 대우를 했다. 그리고 군령을 내릴 때마다 반드시 신사(神師)의 말씀이라고 선언하여 그의 권위를 높였고 그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는 한층 더 높아졌다. [그대들은 신군(神軍)이다.] 하루는 전단이 걱정스런 얼굴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신사(神師)의 말씀인즉 연나라 군사가 사로잡은 우리 제나라 군사의 코를 베어 그들의 앞줄에 세우고 전진한다. 나는 그것이 걱정이다.] 연군도 그 말을 들었다. 그래서 연군은 항복한 제군의 코를 모조리 베어서 성 밑으로 가지고 왔다. 즉묵의 병사들은 그것을 보고 분노했고 또한 두려워했다. [잡히기만 하면 코가 베인다.] 즉묵성은 그로부터 수비가 더욱 튼튼해졌다. 전단은 다시 말했다. [신사의 말씀인즉 연나라 놈들이 우리 성 밖의 조상님 무덤을 파내어 욕보인다고 한다. 천인 공노할 인간들이다!] 한편 전단은 간첩을 풀어 저번처럼 무덤을 파서 시체를 불태우면 즉묵성은 무너질 것이라는 소문을 내도록 했다. 과연 연군들은 제나라 조상의 무덤에서 송장을 파내어 불을 지르고 야단법석이었다. 성 위에서 그런 짓거리를 바라보는 제나라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저번보다 열 배는 더 분노하는 것 같았다. [네놈들을 그냥 살려 둘 수 없다! 어서 나가 싸우자!] 전단은 이제야말로 나가 싸워도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전단은 병사들을 일단 다독거린 뒤, 몸소 나아가 널판과 삽을 등에 지고 사졸들과 함께 노동했다. 처첩을 대오(隊伍)에 편입시키고, 음식을 모두 풀어 사졸들을 배부르게 먹였다. 그러고 나자 전단은 말했다. [자, 오늘부터 갑옷 입은 병사들은 한 사람도 성루에서 얼씬 말고 숨어 있거라. 그 대신 아이들과 노약자와 여인네들만 성루로 올라가거라.] 그런 시위를 한 뒤 전단은 사자를 보내어 연에게 항복할 것을 청했다. 한편으로 사자 한 명을 즉묵의 부호로 가장시켜 한밤을 타서 은밀히 연의 장군 막사로 찾아가게 했다. [즉묵은 곧 항복할 것입니다. 저의 처첩이 지금 성 안에 있습니다. 여기 황금 1천 일(鎰)을 가지고 왔사오니 입성하시더라도 부디 우리 가족만은 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연의 장군은 크게 기뻐했다. 즉묵은 반드시 항복하는 것으로 알았고 그로 인해 연군의 군기는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졌다. 전단은 성중의 소 1천여 두를 모았다. 그리고 병사들을 모아 놓고 외쳤다. [붉은 비단으로 소에게 옷을 해 입히고 그 위에 오색 빛깔로 용의 무늬를 칠하라. 소의 뿔에는 날카로운 단도를 매달고 그 꼬리에는 갈대 한 묶음씩을 매달아 기름을 부어라. 소의 꼬리에 불이 붙거든 그 뒤를 따라 우리 정예 5천 병사는 지쳐 나간다. 연군을 쳐부수고 삽시에 제나라 땅을 회복한다.] 밤이 되었다. 성벽에다 비밀 문을 뚫어 소 떼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꼬리에 불이 붙자 소 떼들은 연군의 진지 쪽으로 사정없이 달려 들어갔다. 휘황스런 횃불 아래 비춰지는 붉은 옷의 소 떼들은 분명코 괴물들이었다. 연군들은 대경실색했다. 피할 겨를도 없이 쇠뿔에 묶인 칼날에 찔리고 발굽에 밟히고 불에 타 죽었다. 아비 규환이었다. 5천의 정예병은 입에다 매(枚: 행군할 때 소리내지 않도록 입에 무는 나무토막)를 문 채 소리 없이 행군해 가면서 도망치는 연군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성루에서는 북과 동기(銅器)를 치고 고함을 질러 제나라 병사들을 성원했다. 연군은 대패했다. 혼란 중에 연의 장군 기겁이 주살되었다. [자, 누구도 멈추지 말라!]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연군이 계속 패주하자 각 성읍의 제나라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연군을 뒤쫓았다. 통과하는 성읍의 병사들이 모조리 전단 밑으로 귀복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나라 군사는 마침내 하상(河上:齊의 北境)까지 쫓겨 나갔다. 마침내 잃었던 제나라 70여 성은 다시 제나라의 것이 되었다. 양왕(襄王)을 거 땅에서 맞이해 임치로 돌아왔다. 양왕은 전단을 봉하여 안평군(安平君)이라 불렀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전쟁이란 것은 정병(正兵)으로 적과 맞서서 싸우고 기병(奇兵)으로 적의 허를 찔러 승리하는 것이다. 기병을 내는 계책이 무궁무진한 자를 전쟁을 잘 하는 자라 하는 것이다. 기병과 정병을 교대로 사용하는 것은 도리옥〔環〕의 매듭이 없는 것과 같이 매끄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처녀처럼 처음에는 갸날프게 보이면 적이 문을 열어 놓아 방비를 소홀하게 하는데 그럴 때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재빠르고 맹렬하게 행동해 적이 방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은 바로 전단의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초 요치가 민왕을 죽였을 때 거 땅의 사람들이 민왕의 아들 법장(法章)을 찾았는데, 그 때 법장은 태사 교(太史)의 집에 숨어 있었다. 이 때 법장은 교의 집에 정원사로 고용되어 있었다. 그나마도 화초에 물 주는 일이 고작이었는데 교의 딸이 그를 가엾게 여겨 잘 대우해 주었다. 그러다가 둘은 사랑하게 되었는데, 거의 사람들이 법장을 찾아 제왕으로 세우자 태사 교의 딸은 갑자기 왕후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바로 군왕후(君王后)다. 연나라가 처음 제나라로 쳐들어갔을 때 획읍(臨淄의 서북, 山東省)에 왕촉(王촉)이라는 현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군중(軍中)에 영을 내렸다. [획읍을 중심으로 30리 이내에는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러고는 연나라 장군은 사람을 왕촉에게 보내어 달래었다. [많은 제나라 사람들이 당신의 절의(節義)를 높게 평가하고 있소이다. 우리 장군께서 당신을 부장(部將)으로 삼고 만호(萬戶)의 봉토를 내리겠다 하는데 어떠시오?] 그러나 촉은 굳게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충신은 두 인군을 섬기지 않으며 정숙한 여성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연나라 장군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획읍을 쑥밭으로 만들겠다 하셨소.] [제왕이 나의 간언을 듣지 않기에 나는 물러나와 들에서 밭이나 갈고 있습니다. 이제 나라가 깨끗해지고 나는 그것을 보전치 못했으니 살아 있어야 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그런 나에게 병력으로 위협하여 장군의 부장이 되라 하니 그것은 마치 포악한 걸왕을 도우라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살아 절의를 잃기보다는 삶겨 죽는 형벌로 절의를 지키는 것이 낫겠습니다.] 사람이 떠난 후 왕촉은 곧 나무에다 목을 매어 죽었다. 제나라로부터 도망쳤던 대부들이 그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무위 무관의 서민인 왕촉도 절의를 지켜 연나라에 벼슬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관위에 있어 봉록을 먹는 자들이 이토록 무심할 수 있겠는가.] 이 때부터 서로 연락해 모여 거 땅으로 들어가서 왕의 아들 법장을 찾아 양왕으로 세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