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법구경 - 저자미상
진리의 말씀 이란 뜻의 법구경은 수타니파타와 함께 가장 오래된 경전의 하나다. 423편의 시로 이루어진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직접 읊은 것은 아니지만, 시편 하나하나가 윤리적종교적으로 높은 철학적 가치를 담고 있어, 모든 사람들이 애송하는 경전이다. 경전을 아무리 적게 알아도 법을 따라 도를 행하고 욕심과 화와 어리석음을 버려 지혜가 바르고 마음이 해탈해서 이승에도 저승에도 집착이 없으면, 그야말로 부처님의 제자라는 구절처럼 평이하면서도 깊은 사상을 담고 있다.
불교의 주요 경전
불교의 성립
불교의 경전은 부처님이 45년간 깨달은 진리를 중생들에게 설법한 내용을 기록한 성전이다.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사후 제자들이 기억했던 내용이 서로 달라 이를 통일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부처님의 사후 최고 제자인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은 아난존자가 교리를 암송하고, 부처님의 계율을 잘 지켰던 우파리가 계율을 정리했다. 이를 함께 모였던 500제자들의 승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는데, 이것을 제1결집이라 한다. 원래는 인도의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 어(범어), 지방 언어인 팔리 어 등으로 기록되었다가, 여러 나라 어로 번역되었다. 처음에는 기억하기에 편하도록 짧은 단문이나 싯구로 만들어지다가, 후에는 장문의 경이 편집되었는데, 이는 부처님 사후 1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삼장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교경전이라 하면, 보통 삼장을 말한다. 삼장이란 아난존자가 암기해낸 경장, 우파리가 승려와 승단의 규율에 대해 구술한 율장, 그리고 경장에 대한 주석서인 논장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경율론 삼장을 한꺼번에 모아 정리한 것을 대장경 이라 하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장경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팔리 어 삼장은 팔리 어로 기록된 경전으로, 스리랑카 및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근본성전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법구경이나 수파니파타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둘째 티벳 대장경은 티벳 어로 번역된 불경을 말하는데, 인도 범어로 된 원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세번째는 한역대장경인데,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경전의 총칭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경전은 한역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수타니파타
수타는 경, 니파타는 모음의 뜻으로 경의 모음 이란 의미를 갖는다.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오직 팔리 어 대장경에만 실려 있다. 인간적인 모습의 부처님과 초기의 불교형태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불교의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내용도 소박하고 평이하여 마치 부처님 곁에서 그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편안함을 준다. 전 5장 중 제4장만이 (의품경)으로 한역되었고, 제1장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불교사상의 원천을 알기 위한 가장 적합한 책이다.
반야심경
정식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고 줄여서 심경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불교의식 때 필수적으로 암송되고 있어 가장 친근한 경전이나, 사실은 600권이나 되는 여러 반야경전의 사상의 정수를 뽑아 262자로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많은 해석서가 있다. 대승불교사상의 핵심인 공 사상을 깨닫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반야란 지혜를 뜻하고, 바라밀다는 피안에 도달함을 뜻한다. 결국 반야심경은 피안의 세계로 이르는 지혜로운 가르침을 밝혀놓은 경전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그중 유명한 구절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도달한 때, 도달한 때, 피안에 도달한 때,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때, 깨달음이 있나니 축복하소서)의 산스크리트 어로 끝을 맺는다.
금강경
원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다경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널리 읽힌다. 중국의 육조 혜능대사의 출가의 동기가 되었던 경전으로,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화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금강석같이 견실한 지혜의 배를 타고 생사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도달할 것을 가르친 금강경은 견실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나 사물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보시를 베풀도록 설하고 있다. 응무소주이생기심 즉, 마땅히 머무는 바없이 그 마음을 내라 라는 구절로 집착이 없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법화경
묘법연화경의 약칭이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 중의 하나이자 천태종의 근본경전이다. 튿히 중국의 천태대사는 이 경전을 근간으로 천태사상을 선양함으로써, 후에 화엄경과 더불어 중국불교의 쌍벽을 이루게 된다. 이 경의 핵심사상은 회삼귀일 사상이다. 소승불교의 성문(부처의 음성을 듣고 깨닫는 자)과 연각(부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는 자), 그리고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보살(깨달음을 본질로 하는 자의 뜻으로 자신의 구원에 앞서 남부터 구원하고자 함)의 삼승이 결국 부처님의 일승으로 귀착한다는 것이다. 대승불교 초기에는 소승의 이상인 아라한을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는 이기적인 존재로 보고, 성문과 연각을 멸시했었으나 (법화경)에서는 이들도 포용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경전의 서두에는 자기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독선적 태도를 배척한다고 되어 있다. 모든 불교경전 중 가장 넓은 지역과 많은 민족이 독송해온 대승경전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열반경
원래 명칭은 대반열반경이다. 부처님의 열반을 중심으로 그 전후의 경과를 서술한 소승열반경과 부처님의 열반의 의미를 밝힌 대승열반경의 두 가지가 있으나, 보통 후자를 지칭한다. 대승불교의 중요한 3가지 사상이 담겨 있다. 첫째는 불신은 상주한다는 사상이다. 즉, 부처님의 본래 모습은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영원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열반은 상락아정이라고 하여, 인생의 고통과 무상을 거치고 나면 변함없고, 즐겁고, 진정한 나와 깨끗한 세계를 발견한다는 사상으로, 인생에 대한 소극적 견해를 뛰어넘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생관을 고취시키고 있다. 셋째는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이다.
화엄경
원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으로,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으로 만든 화환으로 부처님을 장엄하게 한다는 뜻이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내용을 가장 훌륭하게 드러낸 경전으로 방대한 분량의 대승불교 경전이다. 내용은 부처님이 성불하는 장면에서 주위의 수많은 보살들이 일어나 그 공덕을 찬양함으로써 시작된다. 부처님의 침묵의 설법으로 그 절대의 경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주위의 보살들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가르침을 베푼다. 비슷한 모임들이 지상과 천상에서 여러 번 있게 되고, 그 모임에서 보살들은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고, 모든 현상은 다른 현상의 원인이 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화엄경의 마지막 품을 이루고 있는 일법계품에서는 선재동자가 출현하여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만나면서 도를 추구하는 이야기로 화엄경의 가르침을 평이하고도 재미있게 펼치고 있다.
진리의 말씀
법구경은 범어로는 '담마파다' 라고 하며 진리의 말씀이란 뜻이다. 불교의 원시경전과 인도의 여러 문학작품 가운데서 가장 교훈적이고 훌륭한 구절만을 뽑아 모은 교훈집이다. 편집의 시기는 기원전 4~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그보다 더 오래된 것도 있다. 이 경은 불교의 윤리적인 시의 형태로 나타내어 불가에 입문하는 지침서로 삼고 있다. 방대한 불교성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부처님의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을 주옥같은 문자로 나타내고 있어, 예로부터 불교도들에게 많이 애송되어 왔다. 부처님의 말씀을 쉽고 평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술하여 초보자를 위해서도 훌륭한 불교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총 26장 423게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들은 법구경 중 빛나는 부분들을 인용해 보았다.
이 말씀들은 깨끗한 상태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말씀들은 우리를 평온하게 하고 우리의 갈등을 풀어준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며 자유롭게 한다. 즉, 이것은 진리를 갈망하는 영혼 그 자체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 정신이 맑아지지 않으면 진리는 멀어지고 깨끗한 본성은 더러워지며 운명은 이리저리 방향을 잃게 되며, 결국 진리에 다가갈 수 없게 되어 어둠 속을 계속 헤매게 될 것이다.
모든 말씀은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고 고요한 순간이 흐른다. 수많은 모닥불, 수많은 강, 수많은 명상 속에서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얼마나 살찌우는가. 귀중한 말씀들이 주는 평화로움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보자.
교학품
깊이 생각하여 방탕하거나 안일한 생활을 하지 않고, 인을 행하며 인의 자취를 배우면 이로 인해 근심이 없으리니 항상 마음에 새겨 자신의 욕심을 없애라.
세속품
정도를 순순히 행하고 사악한 업에 따르지 않으면 가거나 멈추었거나 누웠거나 편안하고 세상마다 근심이 없다.
안녕품
이기면 원망이 생기고 지면 스스로 비굴해진다. 승부의 마음을 버려 다툼이 없으면 스스로 평안하다.
봉지품
이른바 단정한 사람이란 얼굴 빛이 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색하고 질투하며 거짓 꾸미는 자는 말과 행실에 어긋남이 있다. 능히 악을 버리어 그 근원을 끊고 지혜로워서 성냄이 없으면 이것을 일컬어 단정한 사람이라 한다.
도행품
생과 사는 덧없이 괴로운 것, 능히 이것을 보는 것이 지혜가 된다. 일체의 괴로움을 떠나려거든 도를 행하여 모든 것을 없애버려라. 생과 사는 덧없이 헛된 것이니 능히 잘 보는 것이 지혜가 된다. 일체의 괴로움에서 떠나려거든 다만 부지런히 도를 행할 뿐이다. 말을 삼가는 것, 뜻을 지키는 것, 몸으로 선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 이 같은 세 가지 행을 닦으면 부처님은 도를 얻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광연품
불제자가 되었으면 항상 깨어 있어 스스로 깨닫고 낮이나 밤이나 선정에 들어 그 마음 살피어 보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생각이 있어야 하나니, 먹을 때마다 스스로 적게 먹을 줄 알면 병고와 탐욕이 적어 정력의 소모를 절제하여 수명을 보전한다.
애욕품
대저 근심하고 슬퍼하며 세상의 괴로움이 하나만은 아니나 이것은 다만 애욕이 있음에 연유하나니, 애욕을 떠나면 근심이 없다. 근심을 버리면 마음이 편안하다. 애욕이 없으면 어찌 세상이 있으랴. 근심하지 않으며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편안함을 얻는다.
이양품
대저 천명에 편안하고자 하거든 마음을 쉬어 스스로 살피고, 의복이나 음식의 수량을 계산할 줄 몰라야 한다. 무릇 천명에 편안하고자 하거든 마음을 쉬어 스스로 살펴 취하여, 얻음에 족함을 알고 한 가지 법을 지켜 행해야 한다. 무릇 천명에 펀안하고자 하거든 마음을 쉬어 스스로 살피며 마치 쥐가 구멍에 몸을 감추는 것 같이 숨어서 가르침을 익혀야 한다.
이원품
부처님은 진리의 법을 밝히셨나니 지혜와 용기로 능히 받들어 가져 행동이 깨끗하고 더러움이 없으면 스스로 피안에 도달하여 안락을 얻게 된다. 도에 힘써 먼저 욕심을 멀리하고 진작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악을 멸하여 악의 끝에 이르면 그 쉽기는 마치 새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으리라. 만약 이미 법구를 알았거든 지극한 마음으로 그 도를 본받아 행하라. 이와 같이 하면 생사의 언덕을 건너 괴로움이 다하고 근심이 없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마음 공부의 서
이상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법구경에서 인간의 미망과 깨달음, 죄악과 미덕, 깨달음의 열반을 이해할 수 있으며,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부처님의 광대무변한 지혜와 대자대비를 알게 된다. 이 게송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간결한 노래의 형식을 빌어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자 했던 원시교단 구성원들의 노작이다. 이 경전 중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교리상의 문제나 계율적인 장점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혜의 보편성을 담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법구경의 요지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된다. 특히 출가 수행자나 재가 신도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 그래서 모든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밝은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법구경의 말씀은 법구경이 왜 가장 널리 읽혀지는 대중적인 경전으로 자리잡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된다. 즉 시대를 초월해 현대인들의 마음에 절실하고 간절하게 다가오는 경전 중의 하나가 법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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