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4. 이성과 광기 -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아폴론적 인간과 디오니소스적 인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다. 저마다 다른 역사, 다른 성격,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사람은 하나의 작은 우주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주위의 수많은 작은 우주들을 살펴보면 똑같지는 않을지언정 비슷하게 닮은 꼴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운행법칙이 서로 흡사한 우주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기질과 개성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먼 옛날부터 있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네가지 액체에 근거를 두고 사람의 성격을 괄괄하고 변화무쌍한 다혈질, 까다로우면서 변덕이 심한 담즙질, 근심,걱정이 많고 비사교적인 흑담즙질, 생각이 깊고 침착,냉정한 점액질의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람의 성격을 크게 생산적 성격과 비생산적 성격으로 나누고 비생산적 성격을 다시 수용지향형, 착취지향형, 저장지향형, 시장지향형으로 세분하였다. 햄릿형과 돈키호테형, 외향형과 내향형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이분법도 있다. 심지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살이 찌는 형인지 아르는 형인지로 개성을 가늠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을 이렇게 몇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판단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약점은 있지만, 어떤 사람의 개성을 한 마디로 압축해 주는 묘미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아폴론 형과 디오니소스 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방식이 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며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다. 아폴론적 이라는 말은 빛 또는 태양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의 집합체로,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말은 술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의 집합체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균형, 조화, 절제, 질서, 이성, 지식, 평운함이 아폴론적인 이미지라면, 도취, 극단성, 무질서, 본능, 광란, 환상, 열광은 디오니소소적인 이미지이다. 아폴론의 세계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요, 디오니소스의 세계는 광기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이처럼 극단적인 대립항으로 놓고 설명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였다. 니체는 1872년에 그리스 비극의 근원을 논한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따.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 예술이 대립되는 두 가지의 예술적 충동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그리스의 조형예술, 즉 조각과 회화에서 대표적으로 잘 드러나는, 밝고 명랑한 아폴론적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충동, 바로 디오니소스적 정신이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갈등과 결합에 의해서 문화가 발생하며 그리스의 비극은 양자가 행복하게 결합한 상태에서 나온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존재의 일상적인 범위와 한계를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추구한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극단으로 가는 길은 지혜의 궁전에 이른다." 고 믿는다. 반면에 아폴론적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중용을 지킨다. 심지어 정열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시민으로서의 명예를 잊지 않는 유형이다.
아폴론 형 문명과 디오니소스 형 문명
<국화와 칼>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여성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도 니체가 세워 놓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대립적 정식을 문화분석의 도구로 원용하였다. 베네딕트는 어떤 문화의 고유한 특질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단순한 집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요소들이 어떤 뚜렷한 가치 체계 아래 서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요소들이 어떤 뚜렷한 가치체계 아래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종합적 방법론을 주창했다. 그것이 문화유형론이다. 그녀는 <문화의 유형>이라는 책에서 북미 대륙의 인디언문화를 현지에서 조사해 비교,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펼쳤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비슷한 여러 인디언 부족의 문화 안에서도 사실은 완전히 판이한 문화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아메리카 평원에 사는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은 디오니소스 형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격렬한 경험, 즉 인간으로 하여금 일상적인 궤도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단식이나 고행, 약물, 알콜을 통해서 환상 상태에 이르려 하고, 환상 속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고자 한다. 그들에겐 무엇에든지 열광하고 몰입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며 그런 덕목을 갖춘 전투적인 사람을 존경한다. 반면에 뉴멕시코주의 고원지대에 사는 주니 족은 그와 대단히 상반되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매사에 중용을 중시하며 무엇이든 지나치거나 과도한 것은 불신하고 경멸한다. 용감하고 정열적인 사람은 비난받고, 붙임성 있고 온화하며 남 앞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존경받는다. 어떤 경우에도 감정적인 흥분이라든가 화를 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사랑이든 증오이든 질투이든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도 역시 혐오의 대상이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주니 족의 문화를 전형적인 아폴론 형의 문화라고 설명하였다. 굳이 가르라고 한다면, 예로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격정적인 우리 민족의 문화는 아무래도 디오니소스 형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유복했던 신, 아폴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립적인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탄생과 성장을 둘러싼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아폴론은 올림포스의 12주신 가운데서 제우스 다음으로 숭앙받는 지위에 있었다. 그는 태양의 신이자 예술의 신이었는데 또한 예언과 궁수의 신이었다. 또한 빛나는, 찬란한 이라는 뜻을 가진 포이브스 아폴론이라 불렸다. 아폴론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숭배는 공상적이고 모호하며 형태없는 것과 반대되는 지적이고 단호화고, 특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편애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원래는 12주신 가운데 들지도 못하다가 나중에야 주신들 가운데 그 역할이 가장 미미한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대신 12주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술의 신이자 황홀경과 공포의 신, 야성의 신이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둘 다 제우스의 서자였다. 하지만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는 비록 정실은 아니었으나 여신이었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아폴론은 태어날 때부터 뭇신들의 사랑을 받은 유복한 신이었고 디오니소스는 너무나 기구한 이력을 지녀서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인 듯한 느낌을 주는 불행한 신이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헤라의 질투 때문에 출생이 순탄치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제우스가 레토를 가까이 해 아이를 갖게 한 사실을 안 헤라는 온 그리스 땅에다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다.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땅이면 어느 땅이든 레토에게 출산할 장소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만일 명령을 어기면 단숨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리라는 처벌 조항까지 달았다.
레토는 몸풀 자리를 구해서 그리스와 에게 해의 수많은 섬들을다 헤매 돌아다녔다. 더욱이 레토는 쌍둥이를 배고 있었다. 하지만 헤라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어떤 땅도 레토의 간청을 들어 주지 않았다. 출산이 임박한 레토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곳은 바로 델레스 섬(떠올라 보인 섬)이었다. 이 섬에 델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사연이 있어서였다. 레토를 범한 제우스는 그 뒤에 레토의 동생인 아스테리아까지 넘보았다. 아스테리아는 언니 레토가 그랬던 것처럼 메추라기로 변해 도망쳤으나 제우스 역시 그때처럼 독수리로 변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제우스가 사라진 뒤에야 바다 밑에서 떠올라 섬이 되었다. 아스테리아도 헤라의 명령이 무섭기는 매일반이었으나 피를 나눈 자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레토를 받아들었다. 머리맡에서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 이치의 여신 테미스를 비롯하여 여러 올림포스 종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토는 아프레 밤낮을 진통했다. 하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헤라가 해산의 수호여신이 에일레이티아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토를 끔찍한 고통에서 구한 것은 테미스 여신이었다. 테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파도로 델레스 섬을 가려 달라고 부탁했다 파도로 델레스 섬을 가림으로써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땅이면 어느 땅이든 출산 장소를 제공하지 말라 는 헤라의 명령을 교묘히 피한 것이었다. 이윽고 레토가 쌍둥이를 낳았으니 바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였다. 이 쌍둥이가 태어나자 여신들은 다투어 손뼉을 쳤고 대지는 벙긋 웃었다 고 한다. 제우스는 자식들을 무사히 낳게 해 준 은공에 답하느라 그때까지 뿌리도 없이 바다 위에 덜렁 떠 있던 델로스 섬을 바다 바닥에 단단히 동여매 주었다. 그리고 아폴론에게는 백조가 끄는 전차를 선물로 주었다. 아폴론은 태어나자마자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제게 악기를 주세요, 제우스의 영광을 노래하렵니다. 제게 활을 주세요, 어머니 레토의 한을 풀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태어난 지 나흘만에 아폴론은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활을 둘러메고 파르나소스 산으로 달려가 헤라의 시주를 박고 레토를 괴롭혀 왔던 거대한 뱀 피돈("판도라에게 찬사를"에서 이야기한 위대한 여신을 상징하는 바로 그 뱀이다)을 쏘아 죽였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델포이 신전을 맡기고 피톤의 아내였던 암뱀 피티아를 인간으로 탄생시켜 아폴론의 제관 노릇을 하게 했다. 이후로 델포이 신전에는 아폴론의 예언과 신탁을 듣거나 죄사함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태양을 다스리고 궁술과 예언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아폴론은 뭇신과 인간들의 아낌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피톤을 죽인 벌로 잠시 인간세상으로 유배당하고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일에 얽혀 두 번이나 똑같은 벌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재미 있는 이야깃거리일 뿐 벌이랄 게 없었다.
용서받지 못한 신, 디오니소스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을까. 디오니소소의 어머니 세멜레는 헤라한테서 레토보다 훨씬 끔찍한 보복을 당했다. 세멜레는 테베 왕가의 딸이었다. 제우스가 세멜레의 집에 자주 드나든다는 걸 눈치 챈 헤라는 어느 날 세멜레를 키웠던 늙은 유모 베로에로 변신해 세멜레를 찾아갔다.
"소문에 듣자 하니 아가씨의 집에 제우스 대신이 드나든다면세요? 사실이라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만, 아가씨, 세상엔 지입으로 말하는 바와 같지 못한 이가 많습니다. 제우스 대신이 틀림없다면 징표를 보여달라고 하세요. 대신께서는 천상에 계실 때 빛나는 갑옷을 입고 계신다니 그 옷차림을 보여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틀림없는 제우스이니까요."
헤라의 간계에 넘어간 세멜레는 시키는 대로 했다. 세멜레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꼭 들어주십사고 간청하자 제우스는 저승 앞을 흐르는 증오의 강 스틱스에 걸고 꼭 들어주마고 약속을 했다. 이윽고 세멜레가 입을 열었고 제우스는 세멜레의 이야기를 들은 즉시 그것이 헤라의 농간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스틱스에 걸고 맹세를 했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제우스는 눈물을 머금고 천상으로 돌아가 갑옷을 입고 내려와야 했다. 인간의 눈이 어찌 그 광휘를 감당할 수 있었으랴. 세멜레는 갑옷이 뿜어내는 빛과 열기에 새카맣게 타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세멜레의 몸 속에서는 6개월 전부터 아기가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이를 안 제우스는 세멜레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금실로 꿰맸다. 이윽고 열달이 다 차서 아기를 꺼내니 그가 바로 디오니소스였다. 아폴론이 태어났을 때처럼 박수를 쳐 준 여신도 없었고 대지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서러운 탄생이었다. 제우스는 아기를 니사라는 곳으로 보내 님프들에게 맡기고 헤라 몰래 기르도록 했다. 그래서 아기에게 니사의 제우스 라는 뜻을 가진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던 것이다.(디오니소스는 이외에도 어머니가 둘인 자 라는 뜻의 디오메트로, 광기를 불어넣는 자 하는 뜻의 마이노미노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니사의 산과 들을 누비며 자라는 동안 디오니소스는 포도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술을 빚는 방벙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뒤늦게 디오니소스의 존재를 알게 된 헤라는 그때까지도 분노를 거두지 않고 디오니소스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게 만들어 버렸다. 다행히 디오니소스가 프리기아 땅을 방랑하고 있을 때 이 청년을 가엾게 여긴 자비로운 여신 레아가 광기를 없애 주었다. 디오니소스는 그 뒤로도 여전히 방랑을 계속하며 가는 곳마다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빚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소아시아를 거쳐 인도로까지 건너간 디오니소스는 거기서 몇 년을 지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인도 원정을 끝으로 오랜 방랑을 마감하고 디오니소스는 고향 테베로 돌아왔다. 머리엔 포도 덩굴로 만든 관을 쓰고 한 손엔 티르소스(주신을 상징하는, 솔방울이 달린 지팡이), 또 한 손엔 술잔을 들고 나타난 디오니소스를 테베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드디어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밀교가 생겨나 온 테베 땅에 널리 퍼졌다.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들 가운데는 여성들이 특히 많았으며 노예들도 있었다. 아다시피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은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억압과 고통에 찌들려 살아가던 여성들에게는 디오니소스 밀교의 신비스러운 제의가 일종의 탈출구였다. 그들은 집을 버리고 무리를 지어 산과 들을 헤매다녔다. 술을 마시고 황홀 망아의 상태에서 야간 집회를 가졌는데, 집회 때에는 마음 속의 온갖 한을 토해내듯 괴성을 질렀으며, 바라를 치고 피리를 불며 광란에 가까운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도 의식이 끝나면 숲 속에 그대로 쓰러져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때로는 산 짐승을 갈갈이 찢어 죽여 그 고기를 날것으로 먹기도 했다. 날고기는 신의 육체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먹는 행위는 재생을 간구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테베에서 시작된 디오니소스 밀교는 온 그리스로 퍼져 나갔고 알렉산더 대와이 그리스를 정복한 이후에는 전 헬레니즘 세계를 휩쓸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을 열광시킨 디오니소스의 가르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술이 주는 황홀한 도취였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톰 무어는 자신이 디오니소스의 추종자임을 확인하는 것은 삶 가운데 고통과 죽음의 장이 있음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 죽음에서부터 삶에 이르는, 또 고통에서부터 황홀경에 이르는 전 범위를 담담히 지켜보는 것 이라 말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의 생육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이름인 바쿠스는 싹을 뜻한다. 한알의 씨는 땅 속에 묻혀 긴 겨울을 나고 봄이면 부활한다. 그리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간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망아의 상태로 들어 간 뒤, 그 망아의 정점에서 그들은 어쩌면 생성과 소멸이 곧 하나인 자연의 이법을 깨달았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 또한 자연의 한 씨앗임을, 한 씨앗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고 갈 뿐임을, 그러니 속세의 욕망과 고통에 얽매여 괴로워 할 것도 없고 그저 겸손히 자연의 저 위대한 정적 속으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리라고. 봄이 오면 나의 소멸을 딛고 또 다른 씨앗이 꽃을 피우지 않는가.
비극을 탄생시틴 디오니시아 축제
비극, 즉 영어 tragedy의 어원은 그리스어 tragoigia이다. 양(trago)의 노래(dia)'라는 뜻이다. 양이 어떻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며, 또 양들이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비극이 되었을까. 기원전 5세기경부터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1년에 두 번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축제가 벌어졌다. 축제의 이름은 디오니시아 였고 그 중에서도 봄이 시작되는 3월 그믐에 열림 대 디오니시아 때는 여러 가지 놀이와 함께 비극 경연이 벌어졌다. 초창기에는 둥글게 다져놓은 흙바닥이 극장 구실을 했다. 지금으로 치면 무대에 해당하는 그 둥근 마당을 오케스트라 라고 했고 오케스트라 북쪽에는 나무로 된 좌석이 있었으며 남쪽엔 배우들이 쓰는 천막이 있었다. 지금의 분장실이다. 오케스트라 남쪽엔 배우가, 북쪽엔 합창단은 탈을 썼다. 맨 얼굴로는 지붕도 없는 넓은 마당에서 관객들에게 감정의 움직임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합창단의 지휘자격인 배우가 선창을 하거나 대사를 하면 50명의 합창단이 구애 대답하는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 합창단이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양신 사티로스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티로스는 머리엔 뿔이 돋아있고,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인반수의 신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비극의 형식이 그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던 디오니소스 교도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곤 했는데 사티로스 모양의 탈을 쓴 사람들이 반드시 행렬의 앞에 서서 노래를 선창하였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가 고향 테베로 돌아올 대 사티로스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산과 들에서 살았고 또 식물 생육의 신이니만큼 숲과 들에서 사는 목양신 사티로스는 디오니소스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의가 그리스가 도시국가로 발전한 후에 축제 행사로 정착되었고, 그후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연극이 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대다수의 비극의 가지고 있는 이야기 구조, 즉 질서의 혼란, 주인공의 고난과 죽음, 질서의 회복이라는 틀이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재생의 과정, 나아가서는 겨울에 죽은 생명이 봄에 부활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비극 공연의 초창기엔 합창단을 빼고는 배우가 한 사람만 등장하였기 때문에 탈과 못을 갈아입어 가며 한 명이 몇 사람의 역할을 맡거나 또는 두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한 사람 역할을 맡았다. 또 배우와 합창단이 주고받는 말과 노래 가운데서 합창단 즉 양들의 노래가 극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차츰 그 비중이 축소되었고 나중엔 합창단이 아예 사라지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연극과 같은 형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디오니시아 때 열렸던 비극 경연에서 연거푸 1등상을 받음으로써 유명해진 작가들이 우리가 아는 3대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테스 같은 사람들이다. 아이스킬로스는 배우의 수를 둘로 늘리고 합창단의 역할을 줄여 대화가 극의 중심이 되게 했고 소포클레스는 다시 배우 수를 셋으로 늘리고 무대에 배경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극의 형식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아가멤논>, <오이디푸스 대왕>, <메디아>등 3대 비극작가들의 대표작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그리스 시대의 비극은 주로 고대의 신화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내용을 따온 것들이었다.
이성과 광기가 만나는 곳, 진리의 세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이 아폴론적인 아름다운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그리스의 비극이라 하였다. 그는 비극의 근원을 디오니소스적 정신에서 찾음으로써 아폴론의 이성보다는 디오니소스의 광기를 더 놓이 샀으며 근대에 들어와 안이한 합리주의, 낙관주의 때문에 디오니소스적 정신이 사라졌음을 슬퍼했다. 만일 니체가 살아 있다면 온갖 극단적이고 기발한 방법이 다 동원되는 20세기의 전위예술을 보고 디오니소스 정신이 부활했다고 기뻐할는지도 모를일이다. 예술은 어쨌거나 이성보다는 광기에 가깝다. 솔직히 말하면 나로서도 아폴론보다는 디오니소스가 더 매력적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빈틈없이 절제된 것보다는 빈틈 많은 불완전한 것들에 친근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디오니소스는 광기 자체가 아니라 광기를 통해 광기 저 너머에 있는 진리를 찾으려 했다는 사실이다. 순각적인 쾌감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20세기의 통탄할 쾌략주의는 디오니소스의 창조적 광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성과 광기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결국은 한 곳에 도달한다. 우리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밝고 높은 등대, 바로 진리의 세계이다. 그곳에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리는 너희의 빛,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