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다. 하늘 아래 온갖 것이 있음에서 생겼는데, 있음은 없음에서 생겼다.
해석
되돌아가는 것. 그럼 어디로 되돌아간다는 것인가. 근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럼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원을 그려보자 출발점이 있고 선은 긴 여행을 통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한다.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되돌아 가야 한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물 컵에 물을 가득 채웠으면 비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물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배움의 태도에 있어서 이러한 자세는 꼭 필요하다. 어떤 사상을 배웠다. 그래서 그 사상의 극점에 다다랐다. 학자로서의 명예와 부귀를 얻었다. 그래서 그 극점에 멈춘다면 그는 고정화되고 더 클 수가 없다. 이제 그는 죽은 것이다. 더 커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배운 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 같이 다른 상극의 사상도 배울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도이다. 극에 이르면 다시 반대로 향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나무가 자란다. 그래서 하나의 거목이 되었다. 그럼 다시 거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 나무들이 자신들의 삶만 영위하겠다고 한다면 결국 세상에는 한구르의 나무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나무는 토지의 영양분을 다 빨고나면 스스로 고사해 버린다. 나무가 자라고 다시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도 그러한 존재이다.
어린 새싹은 매우 부드럽다. 그렇기 때문에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새싹이 부드럽지 못하다면 성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겉 피부가 생장을 막기 때문이다. 이미 거죽이 딴딴하게 되었는데 그 거죽을 크게 할 수 있겠는가. 인간도 이렇다. 의식이 굳어져 있으면 다른 것을 배울 수 없다. 열려 있는 자세가 바로 약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흡수한다.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클 수 있는 것이다. 도의 쓰임은 이러한 것이다.
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있음이란 인간 의식의 분화이다. 만물은 무엇엔가 있음에 의해서 태어났다. 그러나 있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있다는 의식은 어디에 의지하는가. 그것은 없다는데 의지한다. 유무의 구분은 인간의 의식이 나누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물을 구분하기 전에 사물들이 아무런 구분도 없이 스스로 있는 상태가 무이다. 나와 자연은 하나이다.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 그때 나라는 개념도 없다. 무는 인간의 인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형상이 있다는 것은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 무는 구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무한이라고 사용하였다. 모든 사물이 서로의 차별성을 가지지 않고 구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바로 무이다. 그것이 무이다.
유라는 것은 고정된 형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가. 고정된 형체가 있기 위해서는 고정되지 않는 무가 있어야 한다. 즉 텅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 세계가 모두 고정된 형체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어떻게 우리는 공기를 가르며 움직일 수 있는가. 그것은 공기 사이의 비어 있음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벽을 뚫고 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벽에는 비어 있음보다 고정되어 있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고정되어 있음이 유이다. 감마선과 엑스선은 그 벽의 비어 있음을 통과할 수 있다. 이 세계는 과학적으로 텅 비어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원자 안에 전자가 돌고 있고 원자의 극소한 점에 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전자가 돌아다니는 공간은 비어 있는 곳인가. 차 있는 곳인가. 그곳은 비어 있는 곳이다. 그 비어 있음이 붕괴되면 블랙홀이 탄생한다. 하나의 별이 점으로 축소가 된다. 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별 크기의 비어 있음이다. 우리는 그렇게 비어 있음에 의지해서 만물을 만들고 생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철학을 보자. 기의 근본은 무형이다.
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40.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며, 부드럽고 약하다는 것이 도의 작용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
주
반: 반은 반을 뜻하며 근본으로 돌아가다의 의미임. 약: 부드럽고 약한 것.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제압한다고 강조하고 있음. 유: 천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말함. 현상계이므로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의한 포착이 가능함. 무: 도를 지칭한 말임, 형체도 빛깔도 소리도 없는 존재이므로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의한 포착이 불가능함. 우주 만물의 배후에서 우주 만물을 길러 내는 신비한 존재임. 본체계이므로 인간의 직관에 의하여 간취됨.
해
도는 우주의 삼라만상에 골고루 스며 있고 가지 않는 곳이 없으나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도의 작용은 무리가 없고 위력적인 힘도 구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폭풍우, 회오리바람,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도 무리한 것은 오래되지 못한다. 사람도 무리한 짓을 하면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되는 것이다. 물은 부드럽고 수동적이나 강하고 억센 것을 능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의 작용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다 유에서 나온다. 이유는 무의 작용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현상 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는 곧 도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그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될 수 없다. 또한 논리적 사고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도는 물자체이므로 오직 천재적 직관에 의해 간취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만물생성론의 순서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 도, 무, 유, 우주 만물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