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들어 선 것은 김수영 때문이었다. 詩때문이 아닌 인간 김수영 때문이었다. 나와 똑 같았다. 외곬 같은 성격, 때론 반항, 불같은 마음, 열정, 고난, 시대 반영, 총칼이 들어와도 펜으로 맞서는 인간 김수영. 詩는 잉크가 아니라 몸으로 써야한다는 김수영. 나와 쌍둥이 같다. 내가 그를 닮은 것이 아닌 그가 나를 닮았다. 왜냐면 그에 비해 나는 오만하며 게다가 서로 본적도 없으니까.
꼬인다. 삶이 평탄하지 않다. 하지만 평탄하면 자만으로 휩싸인다. 도리어 이 길이 낫다. 평온하면 詩는 없다. 굴곡이 만들고, 눈물이 짓고, 서러움과 억울함이 모여 이 화창한 봄날처럼 웃으며 활짝 피는 들꽃이 되기를 바라며 퇴고하는 것이 詩다. 소설을 읽으며 우는 사람 봤어도 詩를 읽으며 우는 사람 못 봤다. 느낌으로 읽지 않고 단어나 수사학, 형식만 해석하려 드니 울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더러 우울증이라고 한다. 의사도 나더러 우울증이라 한다. 웃기지 않나? 내가 보기엔 그들이 더 우울해 보인다. 모두 우울하다. 나는 안정된 공간에서 걱정 없이 글만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다 풀어헤쳐 털고 싶었다. 공장을 알아보고 있다. 쌀은 사야하니까. 대부분 12시간에서 15시간 노동이다. 싫으면 가란다. 냉정하게 말하던 그 사람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일을 하며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고 싶었다. 아르바이트, 일용직, 임시직... 모두 거부다. 결국 문학은 때려 치워야 할 쓰레기 인가.
카프시대처럼 빨갱이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던 사상 대립시기가 다시 왔으면 한다. 그러나 다른 사상으로, 예를 들어 청교도처럼 일하는 주의와 평화주의 같은 것으로. 아니면 사랑주의와 이해주의로 그것도 아니면 너를아낌주의와 우리아낌주의로 왔으면 한다. 얼마나 행복한 토론이 되겠는가. 대통령 욕한다고 검찰청에 불려가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 국민 모두의 입이 열린 세상. 무슨 말이든 할 말을 하는 세상. 그런 세상. 오늘처럼 폐지를 옮기며 쓰러진 노인을 내가 들어 올리지 않는 세상. 옆 사람과 손잡는 세상. 진절머리 나는 이데아 따윈 말고 그냥 사람 사는 세상. 사람 냄새가 사정없이 진동하는 우리 세상. 네가 아파 내가 아픈 그런 세상.
이사 오기 전 외상값은 다 갚았다. 그 동네에선 나 같은 놈팡이를 뭘 믿고 그리 외상들을 줬는지. 깍쟁이 같은 세상에 아직도 외상술을 주는 사람 냄새나는 괜찮은 동네였다. 땅거미가 진다. 다시 어둠이 오겠지.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씨앗을 종이 위에 심겠지. 그리곤 두고두고 우려먹겠지. 끝내 찢어 버리겠지. 그리곤 또 심겠지. 이것이 내 인생이다. 시를 쓰다가 소설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수필을 쓰다 시가 돼버리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글 중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