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첫쪽

방문자수 (2014.04~)

전체 : 1,146,116
오늘 : 71
어제 : 218

페이지뷰

전체 : 42,023,669
오늘 : 356
어제 : 1,725
조회 수 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letter_bn.gif


【독서편지】 제1066호

2022.5.12. (음 4.12) / 발송인:

web_sign5.gif

mail.gif

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오늘의 어록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빼놓곤 이 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세금이 매겨진다.
― 마크 트웨인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영어의 힘

16세기, 우리가 임진왜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만 해도 영어는 그저 그런 여러 언어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이후 약 300여 년 동안 영어는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 이전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누렸던 국제적 매개 기능을 영어가 넘겨받은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당연히 경제력과 군사력이 그 바탕이었다.

영국의 힘은 20세기에 들어오며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영어를 위해서라면 지극히 다행스럽게, 미국이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새로운 패권을 향유했다. 미국은 각종 대외원조, 군사동맹, 국제기구 등을 주도하며 수많은 나라의 지도부에 동료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유학생들을 받아 온 세계에 ‘보편적 지식인’들을 퍼뜨렸다. 즉 영어는 지식인들의 보편적 언어로 등극한 것이다.

영어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오락의 언어로 변신했다. 잘 놀기 위해서도 영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게다가 최근의 정보 기술의 발전은 영어의 패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컴퓨터 자판의 기본 배열을 영어식 알파벳으로 삼아서 여러 변종 알파벳을 배제한 것이다. 또 각종 컴퓨터 활용 프로그램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영어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는 대단히 힘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영어는 또 한 가지의 힘을 자랑한다. 바로 시장의 힘이다. ‘영어’라는 언어, 아니 ‘과목’은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교육 상품’이다. 많은 소수언어들이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러다 보니 지구상의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영어는 일종의 황소개구리 구실을 한다. 언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위험한 종으로 지적받는 것이다. 물론 늘 비판만 할 것은 아니다. 영어의 패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아가기도 한다. 위기가 가장 큰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영어 공용어화

2000년 초 우리가 외환위기의 수렁에서 가까스로 헤어나오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개인 자문역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라는 모임에서 21세기 일본의 정책 방향을 제안했는데 거기에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자는 의견을,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제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반응은 일본보다 한국 사회에서 더 뜨거웠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한 신문이 이를 크게 보도하자 뒤이어 어슷비슷한 신문들이 과열된 기사와 르포를 내보냈다. 당시의 기사 제목들을 살펴보자. “여덟 살도 늦다”,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 “영어 방송 채널 늘려 ‘귀’ 틔게 해야” 등등의 선정적인 보도가 넘쳐났다. 논점도 일본처럼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용어로 삼는 것이 낫다는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주장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우리에게는 영어 강풍이 계속 어왔다. 대학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노골적으로 교수와 강사들에게 영어 강의를 강권한다. 취학 전에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사회 일부 영역에서는 영어의 공용어화가 조용히 진행 중인 셈이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영어를 잘하는 것을 모든 공적인 능력의 첫째 기준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버렸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향상된 영어 능력으로 미국의 ‘미치광이 전략’에 맞서 힘겹게 협상을 해야 한다. 다른 한편 당시 세웠던 영어마을의 거듭된 적자를 묵묵히 감당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또 이번 노벨 문학상에 한국 작가의 이름은 빠졌고 다른 아시아계가 뽑힌 것을 아쉬워하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무슨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인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etter_bullet_1.gif

시나눔 → 우리나라 詩

   


  나비의 무덤 - 김수영

나비의 몸이야 제철이 가면 죽지만은
그의 몸에 붙은 고운 지분은
겨울의 어느 차디찬 둥잔 밑에서 죽어 없어지리라
그러나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않다

나는 노염으로 사무친 정의 소재를 밝히지 아니하고
운명에 거역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밀려내려간다

등잔은 바다를 보고
살아있는 듯이 나비가 죽어누운
무덤 앞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한다

나비의 지분이
그리고 나의 나이가
무서운 인생의 공백을 가르쳐주려 할 때

나비의 지분에
나의 나이가 덮이려 할 때
나비야

나는 긴 숲속을 헤치고
너의 무덤을 다시 찾아오마

물소리 새소리 낯선 바람소리 다시 듣고
모자의 정보다 부부의 의리보다
더욱 뜨거운 너의 입김에
나의 고독한 정신을 녹이면서 우마

오늘이 있듯이 그날이 있는
두겹 절벽 가운데에서
오늘은 오늘을 담당하지 못하니
너의 가슴 우에서는
나 대신 값없는 낙엽이라도 울어줄 것이다

나비야 나비야 더러운 나비야
네가 죽어서 지분을 남기듯이
내가 죽은 뒤에는
고독의 명맥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는 이다지도 주야를 무릅쓰고 애를 쓰고 있단다

<1955. 1. 5>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고사성어

   


 다기망양(多岐亡羊) / ①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 진리를 얻기 어려움.   
                               ② 방침이 많아 도리어 갈 바를 모름.   
                                 《出典》'列子' 說符篇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楊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하도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多方面)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 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동의어】망양지탄(亡羊之歎)
         【유사어】독서망양(讀書亡羊)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삶 속의 글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세계를 향한 웅비의 꿈을 가져라 - 김운용

  1949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나는 많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 결국 나의 선택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였다.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외교관에 대한 소망이 당신 유일하게 '외교'란 단어가 붙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하게 한 결정적인 동기였다. 그 당시 연세대는 교수 중 많은 분이 외국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특히 서양의 합리작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앞선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총장이셨던 백낙준 박사께서는 나의 미래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말씀을 깊이 새겨 주셨다.

  "해방된 조국에서 젊은이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안을 보지 말고 밖을 봐라. 이상과 꿈이 작으면 성취하는 일도 작고 보잘것없다. 국제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세계를 향해 웅비의 뜻을 펼쳐라."

  백낙준 박사의 말씀대로 젊은 날의 나는 세계를 향해 열심히 뛰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유엔, 미국, 영국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던 중에도 그 말씀을 새겨 세계로 시야를 넓혔고,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스포츠계에 첫걸음을 내딛던 때도 태권도의 세계화를 앞장서서 부르짖었다. 백 박사께서 내게 들려주셨듯이 나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해준다.

  "비전을 가지고 세계의 흐름을 앞서 달려라. 또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IOC 위원)


    연구보다 우선 시험해 봐라 - 박종오

  1983년 12월 말경 독일 대학에서 박사 논문 작성에 몰두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실험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옆을 지나가시는 지도교수 바르네케 선생님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 주시며 "연구원은 책상에서 연구를 하는 것보다는 시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미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독일 교수의 권위는 대단하다. 특히 내가 있었던 연구소는 직원이 삼백 명이 넘고 독일 생산공학을 주도하는 연구소여서 연구원이라도 지도교수님을 차분하게 만나 뵙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이라 우연이나마 개인적으로 지도교수님을 만나 직접 이런 저런 얘기를 친절히 듣고나니 이상이 매우 강렬했다.

  1987년 귀국해 8년 간은 오로지 나의 모든 생활 및 관심이 연구에 있었다. 이 시기에는 모든 일을 철저히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이형 부품 삽입 로봇, 금형 연마 로봇, 비전인식 자동 가공 로봇, 힘 인식 로봇, 섬세한 촉감 인식 로봇 손 등을 만들었다. 나의 모든 연구 결과에 있어 동통적인 것은, 한 가지 이론 정립보다 여러 가지 실험과 엔지니어로서의 감각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옛날 자료를 뒤적이다가 바르네케 교수님께서 얘기한 내용을 기록한 메모를 발견하고 한동안 감회가 깊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 없이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는 방식을 경계하셨던 그분은, 현재 막스 프랑스와 쌍벽을 이루는 독일 프라운호프 연구재단 총재로서 인생의 정점에 계신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전연구부 책임연구원)


   솔직한 표현과 반성할 줄 아는 용기 - 최현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그것을 열림 마음으로 수용해 실천할 수 있는 넉넉한 삶을 좋아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고정웅 선생님이라는 무서운 기술 과목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어느 월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이 가까워서야 생각이 난 숙제, 그날따라 숙제 안한 학생들은 왜 그렇게도 많았는지. 이런 저런 핑게를 대는 급우들에게 이 소문난 강타자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공포와 갈등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맞아 죽을 각오로 소신을 솔직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힘들고 지겨운 숙제보다 공 차고 노는 게 더 재밌어서 숙제를 안했습니다.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긴 나에게 선생님은 전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너의 솔직한 대답이 맘에 든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는 자신의 소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정신을 잃지 말아라. 그러면 너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그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 시간이 되었고, 그 격려의 말씀은 내 생활의 철학이 되었으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독학을 하던 시절에도 큰 힘이 되었다.

(성악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letter_bullet_1.gif

글나눔 → 이글저글

   


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조신의 꿈

  신라 때 양양 낙산사에 조신이라는 스님을 지장으로 임명해 보냈는데, 이는 원님이라면 알맞는 것이다. 조신은 김호 공의 따님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낙산사 부처님께 나아가 한 번 만나게 해 줍시사고 몰래 빌기를 수없이 하였다. 그러는 사이 몇 해가 지나 낭자는 딴 데로 시집가 버려서 조신은 부처님 앞에 가 엎드려 소원 들어 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슬피 울기를 마지 않았는데 이미 해는 서산에 들고 말았다. 그때 김씨댁 따님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환한 얼굴로 반가이 웃으며 속삭인다.

  “먼 발치로 스님을 뵙고 얼마나 사모했다구요! 잠시도 잊은적이 없었는데, 어쩝니까? 부모님의 명을 어길 수 없어 시집가기는 했으나, 이제 마음을 고쳐먹고 스님과 평생을 같이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조신은 미칠 듯이  기뻐하며 손에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가,  살림차리고 살기를 사십여 년이나 하였다. 뒤늦게 자녀들도 줄줄이 낳아 다섯이나 두었는데, 살림이 궁색하여 덩그러니 빈집 같은 가운데 식량을 대기조차 막연하였다. 어쩌는 수 없이 떼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밥을 빌어 나섰는데, 이렇게 하기를 십여 년 하는 사이, 옷은 누덕누덕 조각보를 모은 듯 그나마 몸을 가리지 못할 지경이다. 마침, 강릉의 해현령을 넘는데, 열다섯이나 먹은 제일 큰 아이가 배고픔을 못이겨 덜커덕 길에서 죽고 말았다. 울며 불며 길가에 구덩이를 파고 묻긴 했으나 앞길이 캄캄하다. 나머지 넷을 데리고 우곡현에 이르러 길섶에다 초막을 어리고 거처를 정했으나, 여전히 생계는 간 곳 없다. 그런 위에 부부는 이미 늙고 병마저 들어 배고파 탈진하여 일어날 기력마저 잃고 말았다. 열 살 먹은 딸년이 동네로 다니며 비럭질을 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네 사나운 개한테 물려서 유혈이 낭자해 가지고 돌아와, 부모 앞에  고꾸라져 울어대니 그 정경이 어떠하랴! 옛부터 이런 땐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다고들 하는 것이다. 서로 쳐다보며 한숨얼러 눈물짓다가 여자 쪽에서 먼저 일어 앉아 하는 말이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나이 젊고 자색도 있었으며 선명한 옷차림에, 맛있는 게 생겨도 당신과 나눠먹고 따뜻한 곳이 있어도 당신과 같이 지내, 같이 살기 오십년에 더할 수 없이 사랑하고 서로가 아꼈으니, 짙은 인연이라 이르겠지요. 요 몇 해째 몸은 쇠약하고 병든 몸에 기한은 날로 심하니, 이웃집에서도 동냥주기 꺼려하고, 집집이 찾아다닐 제 부끄럼이 오죽하오? 아이들이 춥다 울고 배고파 보채대니 무슨 수로 이어가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애정을 생각하겠소? 젊은 얼굴에 생그럽던 웃음도 한낱 풀잎의 이슬이요, 향기롭던 언약도 버들꽃같이 흩날려  버렸지요. 당신은 나로 하여  짐이 되고 내 마음은  당신으로 인해 걱정 잘 날 없구려! 곰곰히 지난 날의 좋았던 일 생각하니, 모두가 번뇌로 오르는 계단이었지 뭐요? 여보! 당신이나 내나 이 참혹한 지경에서, 여럿이 이렇게 함께 고생하기보다는 차라리 따로나 헤어지는 게 어떻겠소? 순경일 때는 친하고 역경일 때는 버리는 것이 인정에 차마 못할 일이긴 하나, 그러나 가고 멈추는 것이 뜻대로  아니되고 떠나고 만나는 것이 다 운명에 매었으니 내 말대로 합시다. 예?”

  그리하여 둘이 아이 둘씩을 나눠 데리고 돌아서며 여자는 말한다.

  “나는 고향으로나 가겠으니, 당신은 남으로 향해 가구려.”

  조신이 차마 안떨어지는 발길을 몇 발짝 옮겼을 때 눈 앞이 탁 트이며 정신이 번쩍 드는데 잠깐의 꿈이었고 타다 남은 촛불은 펄럭이는데 시각은 한밤중이다. 새벽이 되어서 보니 그 사이 머리와 수염이 새하얗게 세어 있다. 활연히 깨달으며 허전하여 세상에 뜻이 없고, 지난 고생이 지긋지긋해, 욕심과 세속 생각이 봄눈 녹듯 흔적없이 사라진다. 그길로 일어나 부처님 모습을 우러르며, 허물을 뉘우쳐 무수히 빌고 꿈에 해현마루의 큰 자식이 죽어 매장한 곳을 찾아가 파니, 땅 속에서 돌로 깎은 미륵상이 나타난다. 깨끗이 씻고 닦아 가까운 절을 찾아 모셔 놓고, 서울로 돌아와 장임직을 내어놓고, 사재를 몽땅 털어 정토사를 이룩하여 열심히 도를 닦았는데, 그 뒤는 어찌 됐는지 아는 이가 없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 가운데 이 사실을 소개하고 스스로 이렇게 평하였다.

  “이 전기를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생각하건대,  어찌 꼭 이 스님의 꿈이라고만 할 것인가? 지금 세간에서 저 잘났다고 우쭐대며 밤낮없이 날뛰는 것들은 모두가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아주 비슷한 것이 중국 옛 기록에 몇군데 보인다. 당나라 때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홰나무 그늘 남쪽 가지 아래 누워서 낮잠을 잤는데, 꿈에 괴안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임금의 사위가 되고 남가 고을의 태수가 되어 20년 동안 영화를 누렸는데, 깨어 보니까 나무 등걸 텅빈 공간에 왕개미가 있고, 남쪽 가지로 구멍이 연해 있었으니 자신이 원 노릇 했던 곳이다. 이것이 남가일몽의 어원이 되는 얘기다.

  역시 당나라 때 사람 이필의 침중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노생이라는 청년이 한단땅 주막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한숨짓고 있으려니까, 곁에 있던 여옹이라는 도사가 자루속에서 목침을 하나 꺼내주며, 이거나 베고 한잠 자라고 일렀다. 노생은 꿈에 귀한 집 딸에게 장가들고 바라던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내외직을 두루 거쳐 조국공에 봉하기까지, 30여 년 동안 부귀를 한껏 누렸는데, 기지개를 켜며 깨어보니 한낱 꿈이요, 누울 적에 주인 여자가 앉힌 조밥이 아직 익지 않았더라고 한다. 이것이 한단지몽의 어원이 되며, 희곡으로 꾸며져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특이한 것은 중국의 꿈이 부귀와 영화의 뜬 구름이었다면, 조신이 꾼 것은 끔찍하고 지겨운 고생의 연속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현실의 고생이나 영화가 한낮 꺼풀이라면, 몇 겹으로 된 그 과잉포장을  벗겨내고 남는 알맹이는 과연 무엇일까? 청춘시절 벼개닛이 젖도록 밤새 울어 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얘기가 안 통한다고 하는데 거듭 되새겨 볼 얘기다.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예순여덟번째 이야기 - 지금은 너무 바쁘니 다음에 오라

  옛날에 부처님이 사위국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성안에는 팔십 세쯤 된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재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바라문은 사람됨이 완고하고 미련하며 또 인색하고도 욕심이 많아 교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도덕의 가치를 모르고 인생의 무상함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집짓기를 즐겼다. 그의 집 앞으로는 사랑채가 있고 뒤로는 별당이 있으며 시원한 누각과 따뜻한 방도 있었다. 그리고 동서로 수십 칸의 작은 방이 있었다. 다만 뒤쪽 별당의 차양만은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바라문은 항상 직접 나서서 집짓는 일을 감독했다. 부처님은 천안으로 그 바라문이 그 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을 알리 없는 그 바라문은 바삐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수척하고 힘이 빠져 정신에는 복이 하나도 없었으니 참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처님은 제자 아난을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바라문에게 물었다.

  "한창 바쁘구나. 그런데 이 집을 어디에 쓰려고 짓고 있느냐?"
  "앞 사랑채는 손님 접대를 위해서 그리고 뒷 별당에는 제가 살려고 합니다. 또 동서의 여러 작은 방은 아이들과 종복 그리고 재물을 보관하는데 쓰려고 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누각에 오르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안에서 지낼 참입니다."
  "네가 전생에 쌓은 복덕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으나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늦었구나. 마침 생사에 관계되는 중요한 게송이 있어 알려주려고하는데 잠시 일을 멈추고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느냐?"
  "지금은 너무 바빠 앉아서 이야기 할 틈이 없습니다. 후일 다시 오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그 중요한 게송이나 말씀해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식과 재물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허덕이누나
  '나'도 '나'가 아니거늘
  자식과 재물을 걱정해서 무엇하랴.

  더울 때에는 여기서 살리라
  추울 때에는 저기서 살리라
  어리석은 이는 미리 걱정도 많건만
  닥쳐올 변고도 알지 못하네.

  어리석은 이 어리석기 짝이 없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어리석은 자가 지혜롭다 하면
  그야말로 더없는 어리석음이라."
 
 부처님의 게송을 들은 바라문이 말했다.

  "그 게송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나중에 다시 오셔서 이야기 하십시오."

  부처님은 그 바라문을 가엾게 여기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라문은 서까래를 직접 올리다가 놓치는 바람에 그것이  머리에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다. 갑자기 초상을 당한 그 집안의 통곡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였다. 부처님이 아직 멀리 가시기도 전에 그런 변고가 생겼던 것이다. 계속해서 길을 가고 있던 부처님은 마을 입구에서 수십 명의 바라문들을 만났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저 죽은 바라문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설법했지만 그는 내 말을 믿지않았다. 또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지도 않다가 지금 갑자기 목숨이 끊어졌느니라."

  부처님은 이미 말했던 게송을 다시 바라문들을 위해 들려주셨다. 그들은 그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도의 자취를 얻게 되었다.  그때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이가 지혜로운 이와 친하다고 해도
  마치 국자가 국맛을 보는 것 같아서
  비록 오래 사귀었다 해도
  법을 알지 못하리.

  현명한 이가 지혜로운 이와 친하면
  마치 혀가 음식 맛을 보는 것 같아서
  비록 잠깐 사귀었다 해도
  곧 도의 요체를 알게 되리.

  어리석은 이의 행동은
  자신의 몸에 우환을 부르나니
  즐거운 마음으로 악을 행하다가
  커다란 재앙에 빠지게 되는 법

  악한 일을 행한 후에
  물러나 뉘우치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나니
  이 응보는 과거의 업에서 오는 것이리."

  이 게송을 들은 바라문들은 더욱 믿음이 돈독해져 부처님께 예배하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법구비유경>
 

letter_bullet_1.gif

독서실 → 국내소설

   


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4/7)

 안서방네와 안서방은 그네의 양쪽 팔목을 붙들어 잡고, 쇠여울네가 몸부림치는 대로 씨름하는 사람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이토록 독이 올라 거품을 뿜으며 날뛰니, 두사람의 힘으로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말로 허시오, 말로. 우리도 다 귀 있응게에, 말로 하라고요.”

  안서방이 쇠스랑을 뺏으려 한다. 쇠여울네는 그런 안서방의 손을 홱 뿌리쳐 버린다. 그 서슬에 안서방은 맥없이 밀린다.

  “말로? 말로해서 될 사람한테 말로 허능 거이제, 이런 짐승만도 못헌 놈한테 무신 말로 혀어, 말로 허기는.”

  새끼머슴 붙들이와 바우네, 상머슴, 호제, 종들, 할 것 없이 뒤어나와 안팎으로 모두 겹겹이 둘러서서 창황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효원은 대청마루에 서 있고, 율촌댁은 댓돌에까지 내려왔다. 이기채는,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무어라고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쇠여울네가 번쩍 치켜  세운 쇠스랑 끝에 차가운  겨울 햇빛이 섬짓하게 찍힌다. 그는 이기채를 찍어 내리려고 그러는 것이다. 몇 번이나 허공  중에 헛손질을 하는 그네의 갈라진 손등에는 시퍼런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네 이년, 네가 어디서 지금 이런 짓을 허는 게냐?”

  이기채가 질려 있던 입술이 겨우 풀리면서 노기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하이고오, 똥뀐 놈이  썽낸다드니, 날도적놈이 됩대 꼬깔을 씌우능구만 그리여. 내가니 앞에서 무신 못헐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무신 못헐 지서리를 했느냐고오. 오냐, 나는 너한테, 굶어 죽게 생게서 논 팔은 죄배끼는 없다. 그러고 그 돈 못 받은 죄배끼는 없다아. 니가 나를 혼자 사는 예펜네라고 우습게 봤능갑다만, 나도오...나도오...”

  쇠여울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어 통곡을 한다.

  “그께잇 노무 논밭 뙈기, 느그집 행랑살이만도 못헌 거이다마는, 그것을...어치께 일군 거이라고...황소 공출해  가고는, 내가...내 모가지에다가...이, 내 모가지에다가 쟁기 걸고...가래질했던 논이 다아...그 논바닥에  내 눈물로 거름을 줌서 이날끄정 목심같이 여겨왔든  논이라고오...시상에도 웬수에 여름 가뭄 땀새, 딸자석 하나있능 거 보리쌀에팔어먹게 생겠길래, 딸년을 팔어 먹느니 논을 팔자, 허고, 내가, 자식을 파는 심정으로 팔었든 논이다, 그 논이...”

 쇠여울네는 발을 버르적이면 이기채를 향하여 쇠스랑을 여지없이 내리찍는다. 차가운 햇빛이 파랗게 잘린다. 이기채는 무망간에 옆으로 피한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허허어. 이런 고약한 년을 보았나. 내가 언제 네 논 판 돈을 떼어 먹었단 말이냐.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로, 누구 앞에서 이러는 것이냐. 네 이녀언.”
  “오냐, 나는 배운 거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마는, 잘 배운 너는 무신 그렇게 잘날 일이 있냐. 너나 나나,  창씨개밍을 허고 일본놈 성씨 따고 이름 따고 일본놈맹이로 살고 있는디, 머어이 달르냐. 니가 가문이 좋아도 그건 다 옛날 고리쩍 이얘기다. 이께잇노무 집구석, 조상 팔고 이름 갈기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머어이 그렇게 잘났냐. 머어이 그렇게 잘났어어. 자식 쥑인 년이 겁날 거 하나 없다. 내가 이놈 니 자식놈도 내 자식 쥑이디끼 쥑일란다아.”

  쇠여울네는 홱 몸을 돌이키더니, 맨발로 내리달아 안채의 대청마루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간다. 창졸간에 온 집안에 공포가 뒤덮인다. 효원은 건넌방 문고리를 몸으로 틀어 막으며 두 팔을 벌린다. 댓돌 위에 서있던 율촌댁이 뒤따라 치솟으며 쇠여울네의 뒤에서 팔을 틀어쥔다. 뒤쫓아 올라온 안서방과 머슴, 호제, 종들이 한꺼번에 쇠여울네를 싸잡는다. 그러나 순식간에 놓치고 만다. 그네는 쇠스랑으로 대청마루를 찍는다.

  쿠웅.
  쿵.

  쇠여울네는 흡사 미친 여자 같았다. 대청마루의 바닥에는 여기저기 쇠스랑 자국이 나서 패어 나간다. 그네는 마루 기둥을 찍는다. 눈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 번쩍 한다. 그 눈빛과 쇠스랑에서 튀는 살기에 질린  사람들이, 장정인데도 차마 덤벼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만 있다. 이기채는 온몸이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한다.

  “네 이녀언.”

  하더니,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그의 얼굴이 샛노랗다.  집안의 수라장에 놀랐는지 철재가 건넌방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짖힌다. 이뜻밖의 난리에 놀란 문중  사람들이 창황하게 모여들고, 집안으로  문중의 머슴과 노복, 장정들이 몰려왔다. 거멍굴의 춘복이도, 옹구네와 평순네도 혼비백산 달려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쇠여울네의 뒷머리를 후려쳤다. 춘복이였다. 그 바람에 그네는 쇠스랑을 놓치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아랫것들은 한꺼번에 그네를 덮어 누르고 몰매를 때렸다. 춘복이도 장작을 내리쳤다. 피가 튀었다. 쇠여울네는 온몸에 몰매를 맞으며 방성대곡을 하였다. 창자가 찢기우는 것 같은 처절한 울음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둘러서서, 이 영문 모를  참담한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수천샌님을 불러라.”

  이기채는 목안에 잠긴 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낯빛이 백지장같이 질려 있었다. 입술은 안으로 말려 들어가 가느다란 검은 줄만 보일 정도였다. 붙들이가 달음박질로 중문을 나선다.

  “왜 이런당가?”

  평순네가 구경하는 사람들 틈으로 얼굴을 비집어 넣으며,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옹구네에게 묻는다.

  “머엇을 왜 이런당가여? 이런 꼴 진작 안 낭거이 됩대 요상시럽제.”
  “무신 소리여?”
  “내가 이럴 지 알었다고오.”
  “무신 소리냥게?”
  “샐인 안 낭 것만도 천신이 보살핑 거이여.”
  “하이고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에. 오늘따라 웬 주뎅이가 그렇게 무겁당가? 싸게 말히여 봐아. 뜸딜이지 말고.”
  “인자 이 집안도 다 망허능갑다. 예날 같어 봐라. 죽으라먼 죽어야제 어디다가 짹, 소리라도 헐 수 있었간디? 시상 참  많이 변해 부렀다. 그렁게, 사램이 오래 살어야 이 꼴 저 꼴을 보능 거이여.”

  쇠여울네는 물 건넛마을  쇠여울에 살고 있는 타성 사람이었다. 마흔을  막 넘긴 억척스러운 여자로 몇 년 전에 남편을 잃고는 혼잣손으로 서너 마지기의 농사를 지어 왔었다. 그네는 본디 여섯 남매를 낳았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가운데로 넷은 차례로 숨이 지고,맨 위로 딸 하나와 맨 끝으로 아들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까 낮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 실낱처럼 크던 어린 것은, 이제 일곱  살인데도 머리만 수박통처럼 크고 맹꽁이배를 불룩 내밀고 다녀서,  그저 기껏 보아야 다섯 살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팔다리는 비비 꼬여 살거죽이 밀리며 히줄거리는 모양이, 차마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등 거이 죽어 분 거이라.”
  “왜 매급시 잘 놀든 애기가 죽어?”
  “잘 놀기는 무신 지랄났다고 잘 놀아? 안 죽고 살어서 눈 껌벅거링게 목심 붙었능갑다했제잉. 그거이 막 나서도 비일 빌 했거등, 왜 그런디, 요번 여름에 가뭄이 엥간히 극성시럽등가? 봄부터 부황난 놈을 멕일 거이 없어서 그 가뭄에 패싹 말려 놨으니. 에미 맴이얼매나 씨러겄능가잉. 그래서, 독헌 맘 먹고 입도선매를 했등갑서.”
  “나락 모가지 시퍼렇게 선 놈을, 기양 팔어 넹겠구만이?”
  “하아. 그런디, 그것도 돈을 바로 줬으면 누가 머이래야?”
  “왜? 돈을 안 주었당가?”
  “율촌샌님이야 주셌겄지맹.”
  “그러먼?”
  “머어이 그러먼 이여, 그러먼이?”
  “무신 소리여?”
  “율촌샌님 살림살이, 수천샌님한티로 아매 반절은 새 들으가 부렀을 거이네.”
  “아이고매.”
  “아 그렁게, 입도선매 해 부린 쇠여울네는 환장 복통헐 노릇 아닝갑서? 상하가 있잉게로 차마 재촉도 못허고 눈치만 봄서, 똥마런 강아지 새깽이같이 끙끙거릿겄제. 그리도 어디 수천샌님이 돈을 주간디?”
  “왜 수천샌님이 쇠여울네한테 그 논값을 줘어?”
  “아이고오. 이 웬수년  귓구녁은 무신 귀뚝 속이당가? 율촌샌님  넨 논 사고 밭 사능거, 죄다 누가 허간디? 그거  다 수천샌님이 헌다고오. 아, 시방끄장 그것도 몰르고 살었간디?”
  “그러먼 수천샌님네 가서  난리를 치제 왜 윤철샌님한티 그릿스까이? 율촌샌님은 아무죄도 없구마는.”
  “아, 그렁게, 수천샌님은 율촌샌님한티로 자꼬 미룬 거이제잉.”
  “그리여잉...”
  “그러다가, 혼자 사는 타성바지, 지께잇 거이 감히 율촌샌님한티로 대질허로 갈 거이냐, 핑계 대고 미뤄 두먼 제풀에 지치든지, 지친 끝에 타관으로 동낭치를 가든지 헐 거이다 싶었겄지맹.”
  “어찌야 옳이여?”
  “그런디, 덜컥 새끼가 죽어 놨이니 쇠여울네가 게거품 물고 쇠시랑  치키 들고 안 가겄어? 참말로 샐인 안 난 것만도 천행만행이제. 아 개새끼도 지 새끼 넘보면 저 밥 주든 쥔이든 나발이고 다 물어 쥑이잔여. 눈에다  불을 씨고 미치는 거이제. 뵈능 거이 있겄능가?”
  “그런디, 수천샌님은 어디 가셌능가? 왜 안 오시네?”
  “시 살 먹은 애기라도 누가 이런 난장판에 꺼덕 꺼덕 오겄능가잉? 어디로 숨었다가, 이 난리통이 지내간 담에 나와서는, 그 양반은 입심  좋고 수단 좋응게, 구변으로 또 어뜨케 헐티지맹.”
  “아이고, 어쩌끄나.”

  평순네는 탄식을 하였다. 쇠여울네의 처지가 한없이 가엾고 처량하였으며, 수천샌님 기표가 무서웠다. 그리고, 말라 비틀어져 죽었다는 쇠여울네의 자식 새끼 때문에 목이 메었다.

  “어쩌끄나...”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그네를 훨씬 놀라게 한 것은, 쇠여울네가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들고 이기채에게 덤볐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참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 평순네는 떨리는 다리를 오그려 붙이고 쇠여울네가 미친 듯이 찍어 내린 대청마루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허연 허깨비처럼 앉아 계시던 청암마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네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송구스러워하였다. (마님은 정신을 놓고 지심서도 얼매나 마음이 아푸시까잉...저어그,  이러어케 앉어 지시든 양반이, 당신 앉으시던 자리를 저렇게 내리찍으니, 말씸 한 마디도 못허시고, 얼매나  원퉁허고 설우실꼬...참말로 인심도 무섭구나...이  일을 어쩌끄나...무신 일이 날라고이러까잉.)

  평순네는 안절부절을 못하며 서성거린다. 차라리 청암부인이 이런 저런 꼴을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부인께서 못 보고 못 들으시니 이런 죄로 갈 일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평순네는 그만큼 심덕이 온순하기도 했으며, 이 원뜸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대하여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원한보다는 오히려 항상 공연히 송구하고 그 은덕이 하늘 같기만한 마음이었다. 더구나, 바로 지난 봄, 밭에서 풋고추와 애호박  한 덩이를 소쿠리에 따 담아 가지고 오다가, 청암부인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곡기를 통 못든다는 말이 생각나서 대갓집에 들렀던 일은 두고 두고 생각하여도 가슴이 벅차고 감격스러웠다. 가뭄에 딴 애호박이라 물도 제대로 안 오르고  살도 차지 않은 것이었으나, 어째서인지 한 덩이 드리고 싶었다. 이께잇 하찮은 것을...무신 천도 복송이라고...기양 가까...? 중문간을 들어설 때는 발걸음이 쭈밋쭈밋하여, 누가  볼까 싶어지면서 그냥 돌아설까 망설여졌다.

  산지 사방에서  일꾼들이 이고 지고 오는  온갖 곡물과 진귀한 물건,  새로 난 과일들도 누가 다  먹지를 못하여 썩어난다는 집안 아닌가, 거기다가  소식의 이기채 때문에, 바리 바리  싣고 오는 갈비짝이며 귀물단지 생선 상자가  몇 날 며칠을 가도 헛간에 산적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애호박 한 덩이를 소쿠리에 담아  가지고 가서, 무슨 우세를 당허려고 내가 이런 마음을 먹었을까. 평순네는 그만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대청에 나와 앉은 청암부인의 눈에 띄고 말았다. 옆에서 손부 효원이 부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답답하여 대청에라도 나와 앉아 바람을 쐬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냐, 들어오다 말고 왜 가?”
  “예...저...아무껏도 아닌디요.”
  “그래...?”

 

letter_bullet_1.gif

사진 / 그림

   

1024px-Laser_Towards_Milky_Ways_Centre.j

[2010년 8월 중순 유럽 남방 천문대(ESO)의 사진가 유리 벨렛스키(Yuri Beletsky)가 파라날 관측소에서 이 놀라운 사진을 촬영했다. 일단의 천문학자들이 남유럽천문대(VLT)의 4대 천체망원경 중 하나인 예푼 망원경(YEPUN: UT4)에서, 레이저 설비를 사용하여 은하수의 중심을 관찰하고 있다.]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1. 1.

banner2.gi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1070 【독서편지】 제1070호 new 2022.05.20
1069 【독서편지】 제1069호 2022.05.18
1068 【독서편지】 제1068호 2022.05.17
1067 【독서편지】 제1067호 2022.05.16
» 【독서편지】 제1066호 2022.05.12
1065 【독서편지】 제1065호 2022.05.11
1064 【독서편지】 제1064호 2022.05.10
1063 【독서편지】 제1063호 2022.05.09
1062 【독서편지】 제1062호 2022.05.09
1061 【독서편지】 제1061호 2022.04.28
1060 【독서편지】 제1060호 2022.02.24
1059 【독서편지】 제1059호 2022.02.13
1058 【독서편지】 제1058호 2022.02.10
1057 【독서편지】 제1057호 2022.02.08
1056 【독서편지】 제1056호 2022.02.0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72 Next
/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