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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1064호

2022.5.10. (음 4.10)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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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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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친구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욱더 천천히. ― 벤저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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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마그나 카르타

이 세상에는 기계를 다루거나 돈을 만지는 직업들도 많지만 ‘말’을 다루는 직업도 매우 많다. 말의 기능이 워낙에 다종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와 종교가 언어 없이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과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작가와 언론매체 종사자들은 말을 다루거나, 말을 사용하거나, 말에 대해 고민하거나 하는 등, 한시도 말과 떨어져 있을 수 없는 직종에 속한다.

독재 권력은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선전과 홍보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와글거리는 말, 곧 ‘의견’과 ‘질문’은 질색한다. 그래서인지 과거 독재 정부 때는 똑 부러진 말을 많이 하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수난’을 많이 당했다. 정치적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교육자들과 법조인들이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사에 끊임없이 ‘쟁점’을 찾아 정당함과 부당함을 논하려 했다. 역시 권력자들은 이들을 멀리하려 했다.

실무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말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와 언론인들이다. 이들에게 말이나 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한 숟가락의 밥도, 한 모금의 물도 허락하지 않는 폭력이다. 그동안 작가들에게는 권력에 의해 블랙리스트가 덧씌워졌으며, 대통령은 기자들을 기피했고, 방송 종사자들에게는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마이크를 빼앗기는 인사조치가 행해졌었다.

작가들의 글 쓸 권리를 방해한 블랙리스트 문제는 ‘재판’으로 결말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방송사의 문제는 ‘파업’으로 승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말과 글에 대한 권리를 ‘재판과 파업’으로 결말을 짓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말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서 승리했을 때 획득하게 될 권리는 곧 우리의 언어 사용권에 대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가 될 것이다. 자고로 허락받아 얻은 권리와 승리해 얻은 권리는 그 근본이 다른 법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성인의 세계

여중생들의 폭력, 참으로 낯설다. 그러면 남중생들은 지금 뭐 할까? 그들은 얌전하게 학교에 다니고 이 여중생들만이 겁도 없이 사고를 치고 있는 걸까? 아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더 큰 사회 변화가 이 자그마한 사건 뒤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길을 반대편으로 한번 돌려 보자. 요즘은 노인들이 취업도 열심히 하고 폭력과 범죄에도 많이 연루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스무 살부터 예순 살까지를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로 보고 10대 청소년과 60대 이후 노인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해해왔는데 어찌 보면 지금 그들이 몸부림치며 사회에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청소년들은 아직 아이들에 가깝고 60대 이상은 성인이란 말을 쓰기에는 나이가 초과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들은 지금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폭력을 사용할 수 있고, 취업도 하고 싶고, ‘정상적인 성인’ 대접 받으며 살고 싶다는 신호 말이다.

이미 청년, 장년, 중년, 초로 등과 같은 세대 구분 용어는 무의미해졌다. 다 같은 성인일 뿐이다. 여기에 청소년과 노인들이 끼어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같은 수준의 언어적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니 세대 간의 지식과 정보의 차이를 구분해내기 쉽지 않다. 사실 모두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동일한 ‘성인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사회 구조가 새로이 재편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초고령 노인들을 제외한 거대한 사회집단이 동일한 성인 세계를 공유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제 나이 몇 살 차이로 존댓말 써야 하는 낡은 언어 체계는 곧 ‘옛말’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오히려 동등한 성인으로서의 유대감과 친근감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경어법도 크게 약화되거나 단순화되어야 할 듯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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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PLASTER - 김수영

나의 천성은 깨어졌다
더러운 붓끝에서 흔들리는 오욕
바다보다 아름다운 세월을 건너와서
나는 태양을 줏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이런것이 올줄이야

괴물이여
지금 고갈시인의 절정에 서서
이름도 모르는 뼈와 뼈
어디까지나 뒤퉁그러져 나왔구나
--그것을 내가 아는 가장 비참한 친구가 붙이고 간 명칭으로 나는 정리하고 있는가

나의 명예는 부서졌다
비 대신 황사가 퍼붓는 하늘아래
누가 지어논 무덤이냐
그러나 그 속에서 부패하고 있는 것
--그것은 나의 앙상한 생명
PLASTER가 연상하는 냄새가 이러할 것이다

오욕·뼈·PLASTER·뼈·뼈
뼈·뼈······················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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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곧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뜻.         
《出典》'史記' 平原君列傳

 전국시대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 : 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自薦)하고 나섰다.

"대감,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이제 3년이 됩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것은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끝뿐 아니라 자루[柄]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이 재치있는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毛遂)를 20번째 수행원으로 뽑았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 받으면서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동의어】추처낭중(錐處囊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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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전체를 위하면 나도 위해진다 - 김애량

  1967년 이화여고 3학년 시절, 진학을 준비하는 다른 등기들과는 달리 나는 형편상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그때 마침 카이스트(KAIST)에서 여성 인력을 뽑는다는 추천장이 학교로 들어왔다.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열 명 정도 면접을 보았는데, 첫 취업 관문에서 나는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삶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갈등의 나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내 사정을 안 친구 혜경이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시청에서 공무원 공채를 한대. 너도 한 번 해봐."

  그러면서 시험 원서와 한법, 행정법 등의 책을 내놓는 것이었다. 혜경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단짝인 친구였다. 1968년 서울시 9급 국립 공채에 합격해 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성북구 동소문 동사무소였다. 서너 달 근무를 하는 동안 남성 위주의 조직 체계로 일관된 우리 나라의 공무 체게로 인해 내게는 갈등이 찾아왔다. 내가 아는 한 분은 금성사에 자리가 있다며 입사를 권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혜경이를 만났다.

  "글쎄. 내 생각엔 기업에서 일한다는 건 개인(사장)의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같아. 하지만 공무원은 시민 전체를 위한 것이면서 또 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잖니. 어느것이 인생에 더 큰 보람이겠니?"

  그후에도 직장 생활의 어려움은 어김없이 내게로 찾아들었다. 하지만 남성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버거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 혜경이의 말이 내가 뒤로 물러서지 않는데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시청 첫 여성 감사 담당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김영섭

  저문 날의 문턱에 서서 젊은 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바쁜 일상을 떠나 잠시 여유를 갖는 일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젊은 날의 초상이 장밋빛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어서 한 마디로 젊은 날이 좋았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서울의 모 법과대학을 다닐 때 박정희 씨의 대통령 3선 출마를 위한 개헌안에 반대 운동을 하다가 용공 혐의로 수배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경찰에 자진 출두하였지만 어린 나이에 데모 주동을 한 탓에 배후를캐려는 혹독한 조사를 받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정학 처분이 내려졌다. 그 시련의 시간에 나는 학업을 중지하고 모 무역회사 디자인실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후 2년 뒤 전공을 바꾸어 신설된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제1회 학생으로 입학하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정 사정으로 야간에는 회사에 다니는 생활을 4학년 때까지 계속했고 학교의 서클 활동에도 열심히었다. 그때 나의 은사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윤일주 교수님이셨다. 당시 학회장이었더 내가 다방면의 일에 관심을 갖고 생활하는 것을 보고 그분은 이렇게 타이르셨다.

  "자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이 말씀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고생스러운 건축가의 길을 선택하고 나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선생님의 그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중심을 잡곤 한다.

(교회 건축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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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이글저글

   


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비구니가 된 정순왕후

  서울 가까이 조선조의 마지막 임금인 고종과 순종 부자분의 홍릉과 유릉-흔히 아울러서 금곡릉이라 부른다- 을 찾을 때 조금이나마  뜻이 있는 분이라면, 거기서 몇 발자국 안되는 거리에 있으니 사릉을 한 번 찾아보아 주시길 권한다. 조선조 제6대 단종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되는 수양대군께 빼앗기고 영월땅으로 귀양 가, 거기서 17세의 어린 나이로 비명에 돌아간 이야기는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데, 그 단종의 왕비되는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라 감회가 깊겠기에 하는 말이다. 남편되는 왕이 폐위되었으니, 당연히 왕비에서 깎이어 일반평민의 신분으로 계시다 돌아 갔으니, 의지할 데 없이 친정댁 산소갓에 묻히었다가 수백년이 지나 숙종 조에 이르러 복위되었기 때문에, 능의 구조도 자연 초라하고, 능역에 친정댁 선대 산소들이 그냥 보존돼 있어서 이색적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  이상한 것이 능갓의 늘씬늘씬한 소나무가 모두 동남쪽 영월을 향해 휘우듬하게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영월 장릉에  가 보면, 능앞에 소나무가 모두 서울 쪽을 향해 기울어서 자라고 있다. 이것을 놓고 흔히 두 어른의 영혼이 서로를 잊지 못해 그렇게 마주 휘어져 있는 거라고 설명하며, 그것을 동정의 눈물을 짓는 이도 곧잘 있다. 물론 과학적인 설명은 못된다.  사릉 언저리는 서울지방의 서북 계절풍으로 자연히 휘어진 것이고, 장릉은 흔히들 보검출갑형이라고 하여 지형이 워낙 가파라 꼿꼿이 서서 자랄 수가 없어서 그리 되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것을 초월해 동정하는 심정으로 향해, 버스 한 정류장쯤 가면 왼쪽으로 창신동 골짜기가 틔어 있다. 밟음밟음 찾아 들어가면 창신초등학교가 있고, 차츰 더 올라가면 골짜기가 막히고, 거기 언덕 위에 당집 같은 건물이 있다. 안에 서 있는 비석에는 정업원 구기(옛터)라고 새겨져 있는데 영조대왕의 어필이다. 단종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허울좋은 상왕자리에 있다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귀양가게 되었을 때, 세조께는 충신되는 모씨가 사뢰었더란다.

  “젊은 것들을 한데 붙여 보냈다가, 소생이라도  생기면 뒷날 골칫거리가 아니오리까?”

  그리하여 왕만을 따로 때어 보내놓고 보니, 뒤에 남은 왕비의 처리가 문제다. 그래 왕비는 머리를 깍아 비구가 되어 부처님  가사폭에 안겨 여생을 보내게 되었는데, 가까이 모시던 궁녀들 몇이, 이 역시 여승의 차림으로 시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얼마동안은 몰라도  차츰 세인의 주의에서 희미해지자 시량을 대어 드리는 것마저 뜨막해지자 영영 끊기고 말았더란다. 

옛날엔 서울이 성벽으로 둘려 있고 4대문을 열어야 통행을 할 수 있었던 때문에, 서울 장안을 돌구멍이라고들 불렀다. 그런데 성안 사람은 성밖에서 물자가 들어와야 살 수가 있고, 성 가까운 시골 사람의 주민들은 양곡과 나무를 성안에 공급해야 생계를 이을 수 있었다. 그래 부지런한 시골 사람은 땔나무와  양식을 마소에 싣고, 찬거리를 지게에 지고 새벽 같이 성문 앞으로 모여 들었다. 그러나 성문을 열어야 들어가게 마련이라 둘레의 주민들 편의를 위해 거기서 새벽장 한차례를  치르고 나서, 성문이 열리자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그네들 인파속에 아리따운 여인 하나가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그것도 머리를 푸른 기가 나도록 밀어 깎은, 젊고 귀띠나는 여승이다. 검은 장삼자락으로 반쯤 얼굴을 가리었으나 그럴수록 화사한 모습은 더욱 빛났다. 자연히 군중 속에서 수군수군 귓속말이 오갔다.

  “새벽같이 웬 여승일까?”
  “뭐, 가까이 있는 정업원에 있는 스님이겠지.”
  “정업원이라니? 저 노산군 부인이 나와 있다는...?”
  “임마! 노산군이 뭐야? 어엿하게 왕으로 계셨는데. 부인도 왕비마마셨고!”
  “쉬잇! 말조심들 해.”

  나이 지긋한 영감이 타이르듯 하면서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양도가 끊긴 듯하이. 우리 자기 가진  것 중에서 조금씩 보시해 드리도록 하세. 그리고  삼봉아! 너 나뭇짐지고 뒤따라 가서  나무 광에 부려 드리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둘러 보고 오너라. 이런 일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라야 걸맞느니라.”

  그리고는 여승에게로 다가갔다.

  “스님! 어떻게 몸소 이렇게 탁발을 나오셨습니까? 여기 쌀이 있으니 이것을 좀...”
  "많이는 소용이 안되와요. 그저 조금만...“

  여승의 은방울 굴리는 것 같은 목소리는 여럿의 귀에 길이 남았다. 성문이 열릴 때나 되어 헐레벌떡 달려온 삼봉이는 코를 벌름거리며 너스레를 떤다.

 “요렇게 조그만 암자에 아련하게 불이 비치고, 목탁치며 염불하는 소리만이 들려오는데 광은커녕 부엌에도 나무 한 단 없는 것이 불도 며칠 못 땐 것 같아요. 나뭇짐을 부렸더니  아까 그 스님이  보고 생그레 웃는데  어떻게나 다정하고, 선녀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런 모습일 거예요.”
  “예끼놈! 수다도 잘 떤다.”

  그리고는 누가 나가서 이끈 것도 아닌데 동대문 밖 새벽장은 창신동 어귀로 옮겨져 서게 되었고 정업원의 스님이 다녀 올라가야 천천히 동대문 쪽으로 군중은 옮겨 갔다. 그러기를 수십년, 단종 왕비는 82세토록 골방같은  암자에서 아침 저녁 예불로 세월을 보내었다.  그동안 남편되는 왕을 핍박하던 많은 무리들이 차례대로 죽어가는 소식도 들었다. 궁중에서 일어난 갖가지 소식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중에도 연산군이 갖가지 난행 끝에 일으킨 갑자사화에는 여러 훈신이 화를 입었는데, 물론 자기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이지만,  귀에 한청회, 정창손의 이름이 부관참시 명단에 든 소식을 들었을  때, 파란많은 일생을 살어온 늙은 스님의 심증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주름 투성이의 아래윗턱을 오물거리며 읊조렸을 것이다.

  “인생은 무상도 해라.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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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예순여섯번째 이야기 - 지식과 지혜의 차이

 

  옛날에 신심이 두터운 두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인국에 물건을 팔러가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동생이 형에게 말했다.

  "형님, 듣자 하니 나인국은 아직 문명화된 나라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은 알몸으로 지내고, 또 풍습도 우리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그들의 풍습에 따라 알몸을 드러낸 채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네 정서로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만일 옷을 입은채 나인국에 들어간다면 그곳 사람들은 우리들을 괴물 바라보듯 하고, 상대하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 생각엔 그들의 풍습에 따라 알몸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동생의 말을 들은 형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떤 곳을 간다 해도, 설사 그곳이 제일 야만스러운 곳이라 해도 예의와 도덕을 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알몸으로 장사하러 가는 것은 분명 예의와 도덕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동생은 계속해서 형을 설득했다.

  "옛날부터 현자들은 수행할 때 겉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행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았다고 하니, 그것을 일러 '몸은 버리되  수행은 버리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계율이 허락하는 바입니다."

  형은 동생과 언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먼저 나인국에 가서 상황을 살펴본 후, 사람을 보내 알리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 먼저 나인국에 들어간 동생은 십여 일이 지나자 형에게 사람들 보내 그들의 풍습을 따라 장사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형은 크게 화를 냈다.

  "아무리 장사를 한다고 해도 짐승처럼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절대로  너처럼 할 수 없다."

  나인국의 풍습에 따르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축제를 벌였다. 사람들은 축제날 밤이 되면 얼굴에 기름을 바르고 온몸에는 백토로 갖가지  무늬를 그린 다음 머리에는 동물의 뼈로 만든 장신구를 달았다. 그리고 돌로 만든 악기를 두드리며 남녀노소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다. 동생은 그들의 모습을 흉내낸 채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다. 나인국 사람들은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동생을 좋아하지  않는자가 없었다. 나인국 국왕은 동생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충분한 값을 치르고 모조리 사들였다. 형은 마차를 타고 나인국에 들어왔다. 그는 옷을 단정히 입고 엄한 어조로 나인국 사람들의 풍습은 인의도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국왕과 백성들은  모두 크게 화를 내며 한꺼번에 달려들어 형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빼앗고 뭇매를 때렸다. 그때 동생이 달려나와 만류하자 나인국 사람들은 그제서야 겨우 형을 풀어주었다. 형과 동생이 나인국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러자 나인국 사람들은 모두 몰려나와 동생을 둘러싼 채 칭찬을 하며 환송했고, 형에게는 욕을 했다. 형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육도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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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국내소설

   


혼불2 - 최명희


   15. 가슴애피(2/7)

    암운

  십일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며 눈 오고 얼암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언마나(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자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언마는 제반미요 언마는 씨앗이며
  도조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계 돈 장리 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놀양이나 여투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줄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구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 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직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 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이나니

  태평한 시절의 이야기다. 하기는 그런 시절도 있기는 했었다. 그 무렵에는 한해의 저물녘에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이고는, 그 중에  몇 섬은 팔아서 돈으로 바꾼다. 그리고 제사 때  메를 지어 올릴 깨끗한 쌀을 따로  항아리에 담아 집안의 가장 정한 곳에 모셔 둔  다음, 도지에서는 도조를 덜어 낸다. 곡식의 쓸모란 많기도 하다.  거기서 시장의 곗돈도  장만하고 무엇보다도 원수스러운  장리 쌀도 되어 내야한다. 이 장리 벼만 생각하면 한 해 농사 헛지은 것 같아 애가 터진다.

  장리
  보통은 봄에 씨 뿌릴 때  빌려 주고 가을에 나락 거둘 때 받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이것은, 빌린 돈이나 곡식의 십분지 오의 변리를 덧붙여 갚아야 한다. 빌린 것의 반몫이나 더 붙는 이 엄청난 이자에 대하여 더  말하면 무엇하리. 봄철에는 한 종지도 못되게 빌린 것 같은데 가을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집채처럼 무거운 것이 바로  이 장리이다. 모자라는 곡식 때문에 농사꾼은  누구라도 장리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것만은 눈알이 쓰리나 아리나 갚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원뜸의 종가에서 장리를 빌어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옹골차지 못한 농사 때문에 늘 허기진 농사꾼들은 장리에, 공출에, 지은 것들을 다 바치고는 아무  나머지도 남기지 못한 채, 다음 농사까지의 양식으로한 됫박의 좁쌀을 애지중지 아껴서  봉다리에 담아 묶어, 천장에 매달아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기껏 호강하여 먹는 음식이란 것이 겨우 콩나물 우거지죽이었다. 멀겋게 풀어진 미음 같은 죽물에 몇 오라기 떠 있는 콩나물 건데기가 그래도 주린 창자를 진기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메주를 안 쓸 수 없고 동지에 팥죽을 걸러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메주는 띄워서 장을 담고, 장을 걸러 낸 된장이야말로 농가의 한 해 살림에 더할 나위 없는 반찬 아닌가. 또한  동지 팥죽은 상서로운 음식이니 흉내라도 내야 한다. 하늘에 걸린 해는 순간이 다르게 짧아져, 떴는가 하면 지고 만다. 그러자니 저절로 밤은  길어 새끼 꼬고 길쌈하는 일만이 소일이 될 수밖에. 거기다 길쌈은 손끝이 곧 돈이었다. 부지런히 북을 놀리고 밤새워 허리가 휘도록 짜 내면, 그저 종지쌀이나마 덜 축나는 것이다.

  그리고 외양간 마구간 닭둥우리에 깔아 준 짚북더미나 마른 풀을 틈나는 대로 걷어 내어 마당 귀퉁이에 쌓아 놓는 일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소중한 거름이 되는 때문이었다. 허나 이런 궁색하고도 번거로운 일조차도 지금보다는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만것이다. 그때는 쪼들리고  시달리면서도 변함 없는  세월이 찾아와 주는  것을 믿었고, 세월 또한 어김없이 되돌아와 주었다.

  농사꾼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늘을 믿었고  땅을 믿었다. 하늘은 절기가 되면 비를 내려 주고 뙤약볕에 곡식을 여물게 해 주었으며, 때가 차면 익어 넘치도록 지열을 다스리고 거기다가 거둘어들이기 알맞게 날씨마저 부조해 주었다.  그뿐이랴. 땅은  하늘의 음덕을 거스리지 않았다.  한번 떨어진 싹은 두말없이 품고 있다가, 욕심없이 지표로 토해 냈고, 묵묵히 자신의 젖을 먹여 살지게 길러 주었다. 거둔 뒤에 누구의 것으로 몫 지어지든지  아무 상관 없이 탐스럽게 알곡을 채워 주는 땅은, 곡식과 식물과 산과 강의 어미였다.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썩는다.  땅이 무엇을 거부하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사람이나 짐승이 내버린 똥.오줌도 땅에 스며들면  거름이 되고, 독이 올라  욕을 하며 내뱉은 침도  땅에 떨어지면 삭아서 물이 된다. 땅은 천한 것일수록 귀하게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준다. 땅에서는 무엇이든지 썩어야한다. 썩은 것은 거름이 되어 곡식도  기름지게 하고 풀도 무성하게 하고 나무도 단단하게 키운다. 썩혀서 비로소 다른 생명으로 물오르게 한다. 그래서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돌아간다’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하고 두발 없는 땅에다 한세상을 의탁하고 사는 농사꾼의 성정은 그대로 땅을 닮게 마련이었다.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는 것이다. 막바지의 비탈이나 낭떠러지에 강파르게 서서 결판을 낼 일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도 안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죽어서도 자식들은 남아서 그놈들끼리 또  마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이미 샅샅이  뒤져가 버린 공출의  뒤에다가 콩나물을 기를 콩마저도 남아 있지  않아. 요기가 될 만한 나무 뿌리를  삶은 물로 끼니를 때우는 거멍굴 사람들은 가까스로  가을을 넘기고 겨울에 들면서 까닭없이 뒤숭숭했다.

  ‘까닭없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자기네와 직접 피붙이가  아닌 남의 일인 데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남의  일인데도 단순히 남의 일만이  아니라 곧 자기들의 운명에도 무슨 바람이 끼칠  것만 같은 불길한 사건인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대갓집 서까래가 씨러지먼, 거그 귀영탱이다 집  짓고 살든 쥐새끼들도 따라서 쏟아져 부리제잉. 넘으 집 씨러지는디 내  둥지도 씨러지능거이 또 우리 같은 사람들 팔짜 아닝갑서?”

  평순네가 근심  어린 눈으로 원뜸 쪽을  항하여 말했을 때, 턱을 쳐들고 있던 옹구네는 댓바람에 맞받아서

  “아앗따아, 무신 씨러질 집칸이랑 물어나 논  곡식이랑 갓득갓득 쟁에 놨능게비이?”하고 쏘아 뱉었다.
  “이노무 호랭이 물어갈 예펜네야. 꼭 머엇을 그렇게  쟁에 놔서 그런다냐? 사흘 굶은 집구석에도 도적놈 가지갈 것은 있드라고,  이런 사람사는 꼬라지 머 사람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지마는, 그래도 다 이만치라도 목심 달고 사능 거이 청암마님 덕분이고, 그 댁으 기운이 여그 끄장 덮어 중게 우리가 안 죽고 사능 거잉게 하는 말이제. 사램이, 앞으로 오는 공은 몰라도 지내간 공은 잊어 부리지 말어야제잉.”
  “아이고 그리여. 충신 났고 열녀 났다.  깃대가 없어서 어쩌끄나. 북치고 장구 치고 동네방네 돌아댕김서, 내가 이런 사램이요오, 외었으면 꼭 쓰겄는디.”

  그 말에 평순네는 길게 눈을 플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옹구네는 그 등판에 대고 한 마디를 덧붙여 쏘았던 것이다.

  “아 어디 가먼 상전 없으께미 걱젱이냐 걱젱이? 천지에 쌔고 쌨는 거이 상전이다. 하이고매, 말도 마라 몸썰난다. 자고  새먼 손발톱이 모지라지게 해다 바쳐도 누가 눈 한 번이나 깜짝 허등게비. 매 발톱 같은 눈으로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헤집어 보고, 실밥 한 오래기만 빠져 나와도 패대기 치고, 나도 인자 이런 시상 신물나서 못 살겄다. 그렇게 떵떵 울리고  살든 대갓집도 망헐 운수 당허먼 벨 수 없이 망해야지 어쩌겄나고요.”

  아까 참에 평순네에게 해붙였던  말끝의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옹구네는 볼따구니가 빨개져서 춘복이 쪽으로 돌아눕는다. 얼기설기 얽은 농막이라 시린 외풍이 선뜩했다. 춘복이는 팔베개를 한 채로 멀거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밤이 기울어 그 모습이 보일 리 없지만, 이렇게 옆엣사람 생각도 안하고 한동안 말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러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아이 그렁게 원뜸에 새서방은 사랑으다 가돠 놔도 소용없고 인자는 전주로 아조 도망을 가 부렀다 그거이제?”

  아까도 한 말인데 다시 되짚는다. 춘복이는 대꾸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해도 골똘히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먼 그 기생 첩실은 어쩠스꼬? 데꼬 살으까?”
  “머 도망끄장 감서, 지집 내부리로 갔을라고요?”
  “아이고매 정나미야. 갔을라고요는 무신 쎄빠질 노무 갔을라고요오? 참 내.”

  옹구네는 샐쭉하여 핀잔을 준다. 그네로서는 이렇게 말을 올려붙이는 순간이 무단히 섭섭한 탓이었다. 춘복이가 투박한  대로 말을 놓을 때는  마치 자기와 한살인 듯 여겨지다가도, 이렇게 평상대로 말하면 별안간에 허망해지며 내쫓긴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그럿은 이제 그만 집으로 가 보라는 무언중의 신호이기도 한 셈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식었으니 이제

한 잠 잘 일만 남았다는 시늉 같기도 하여, 문득 가슴이 선뜩해지기까지 하는 말투였다. 어쩌면 그네는   “옹구네, 우리 기양 살어 부리제.”하는 말을 은연중 애가 잦게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춘복이는, 언제나 새로 만난  남정네처럼 어설프고 약간은 심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 심정을 말투로드러내고 마는 것이었다.

  “헐 일도 잔상도 없능갑소. 무신 애들맹이로 그께잇 거를 갖꼬  다 트집이다요?”
  “흥 허기사 머 나 같은  년은 마느래도 아니고 첩실도 아닝게 암칙게나 대거리헌들 따질거이 머 있당가?”
  “왜 또 그러시요?”
  “내가 머 무신 거마린 중 아능게빈디, 뒤집어 보먼 자개도 손해난 거없지 멀 그리여? 떠꺼머리가 맘만 먹으먼 엎어질 예펜네 공으로 챙게두고, 솔레솔레 꽂감 꼭지 빼먹는 것도 복이라먼 복인디, 맨날  그렇게 내 사정 봐  주는 사램맹이로 그리여?”
  “맨날 들어도 그 소리. 인자 알었응게 그만허시오. 아닝게 아니라 나도 품삯 안 주고 연장 갈응게 좋소, 좋아.”

  옹구네가 그 말에 발딱 일어나 앉는다.  짚수세미같이 엉클어진 머리채 뒤꼭지가 어둠 속에서도 우우 소리를 지르며 일어설 듯한 기세다. 그러나 그네는 아직도 아까 그 자세대로 누워 있는 춘복이를 눈이 돌아가게 흘기기만 할 쭌, 얼른 무어라고 입을 떼지 못한다. 아마 분이 치받치는데다가 야속한 생각에 몸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머머? 상놈 자식 안 날라고  펭상에 장개를 안 들겄다고? 핑계가 좋아서 떠을 사 먹겠네. 매급시 그러지 말드라고. 내가 홀메미라고  깜보능게빈디이. 이리 뜯어먹고, 저리 발러먹고, 공것잉게 맘대로 맛보시겨.  그러다 개뻬다구맹이로 고샅으다 동댕이쳐도 되게에. 누가 머래야?  내가 들러붙어서 찐드기맹이로 떨어지도 안허고 살자고 그러께미 장개 안 간다고 으름장 놓능거 내 다 안다고오. 그런디, 이건 알어 두어.  상놈은 상놈 낳고, 상년은 상년 낳능  게에. 그런디, 지 아무리 잘 났어도 상놈은 상년 만나 사능  거이여. 무신 천지개빅을 허겄다고 꿍꿍이여, 꿍꿍이가.”

  춘복이는 아예 귀를 봉창한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옹구네는 더욱더 약이 올라 말끝이 착착 감기게 찰져진다. 그네는 화가 난다고 말소리가 높아지거나 빨라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조근조근 누비듯이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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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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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 북부 마투아 섬 사리체프 산의 화산 분화. 2009년 7월 12일.]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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