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이란 이 시를 저는 좋아합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은 쓸모없게 된 나뭇잎입니다. 구멍이 뚫린 나뭇잎이므로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별로 도움 될 게 없는 나뭇잎입니다. 벌레가 먹고 남은 흔적이 흉하게 몸에 남아 있는 나뭇잎입니다. 그런 나뭇잎을 시인은 예쁘다고 말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뭇잎이 지닌 상처 때문에 예쁘다고 합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고도 말합니다. 시인은 '벌레가 갉아 먹어서 나뭇잎이 못쓰게 되었다'는 눈으로 나뭇잎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제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걸 알면서 벌레를 먹여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고, 제 몸을 덜어 남을 먹여 살린 흔적이기 때문에 벌레 먹은 구멍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 몇 장은 벌레에게도 주고 짐승에게도 줄줄 아는 게 나무입니다. 제가 지닌 나뭇잎을 저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나무는 없다고 합니다. 제 몸의 일부를 남을 먹여 살리는 데 쓰며 살아온 떡갈나무 잎, 그 떡갈나무 잎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남에게 베풀며 살아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도종환/시인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손택수ㆍ시인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기불에 비하면 촛불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전기불은 방 안의 어둠을 단번에 밀어내버리지만, 촛불은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어둠을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품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어머니는 그 부드러운 불로 밥을 짓고 있다. 촛불로 밥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지는 말 일이다. 거리에선 지금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피뢰침에 매달려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칼이 목에 꽂혀 있는 끔찍한 지옥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게 촛불이다. 비 속에서도 촛불은 타오르고, 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촛불은 타오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