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불사른다 불은 나무에서 생겨나 도리어 나무를 불사른다(火從木出還燒木)는 말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에 나오는 고승대덕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나무에 막대를 비벼 불을 얻었습니다. 나무에서 불을 얻었으니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나무들을 꺾어다 계속 불에 얹었고 그 불로 몸을 덥히고 먹을 것을 만들었습니다. 나무의 처지에서 보면 나무에서 불이 생겼으나 그 불 때문에 모든 나무들이 땔감이 되고 수없이 불태워지게 된 것입니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쇠를 갉아 먹습니다. 쇠로 만들어진 것은 비길 데 없이 단단하지만 쇠를 못 쓰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쇠 자신에게서 생겨납니다. 쇠로 만든 연모는 모든 것을 베고 쓰러뜨리고 갈아엎지만 그 자신은 정작 그의 내부에서 생긴 녹으로 스러지고 맙니다. 내 몸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내 자신의 내부에서 움틉니다. 외부의 자극과 시련에는 꿈쩍도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나를 녹슬게 만드는 것들로 끝내는 무너지고 맙니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좋아서 시작합니다. 그 일을 하며 기뻐하고 삶의 기쁨과 보람도 거기서 느꼈는데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로 결국은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때가 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몸에 자신 있어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분이 나이 들면 제일 먼저 고장 나고 병들게 됩니다. 사슴이 노루가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움 뿔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슴도 그렇게 크고 멋진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 또한 그 뿔입니다. 사슴은 알고 있을까요, 사냥꾼들이 그 뿔 때문에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명예를 얻고자 갖은 고초를 다 겪지만 명예를 얻고 나면 그 명예 때문에 늘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얻고자 뼈가 부스러지고 살이 짓뭉개지도록 고생을 하면서도 참지만 권력을 지키는 과정도 역시 뼈를 깎고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삶이어서 제 살과 남의 살로 깎아 만든 권력의 산꼭대기에서 외줄을 타듯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데 돈이 가장 전지전능한 물건인 것 같아서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치다 돈 때문에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사랑의 따뜻한 온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랑의 불길이 제 몸을 태우고 사랑하던 사람의 삶도 다 태워 결국 재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겪어서 압니다. 그러나 또 자신을 태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저를 태우는 것이 늘 저에게서 비롯되고 저를 녹슬게 하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도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고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그 바다는 누가 만들고 있는지요. 도종환/시인
우리가 함께하여 낮은 울타리가 되고 우리가 함께하여 도롱뇽의 친구가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먼저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 문득 쌀쌀해진 겨울의 초입입니다. 오랜만에 편지글을 드리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지금부터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제 마음에 거칠고 엉글게 엮여있던 이야기들을 드려보려합니다. 여러분들은 혹,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 곳의 신문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려 있었던 ‘천성산 손실에 관한 정정, 혹은 반론 보도문’ 을 본 일이 있으신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무심히 보아 넘겼을지도 모르는 단 몇 줄의 반론 보도문을 싣기 위해 꼬박 1년 동안 몸에서 떨어져 나간 깃털이 허공을 떠돌듯 세상을 부유하며 다녔습니다. 3000건이 넘는 천성산 관련기사를 정리하여 15개의 언론사에 3차례에 걸쳐 공문을 띄우고, 청와대 정책실을 비롯하여 170배나 과장된 천성산 손실 문제를 아무런 의심없이 인용하였던 대학과 연구소 등에 30통이 넘는 공문과 편지글을 띄우는 일도 그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잡습니다. 중앙일보 2008년 2월 25일자 E 면 ‘지표보다 현장 챙겨 기사 중’ 본지 2008년 2월 25일자 E 면 ‘지표보다 현장 챙겨라 립서비스 경제는 이제 그만 중’ 기사에서 천성산 터널 공사가 중단 된 기간은 10개월이 아니라 6개월 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공사가 중단 된 6개월 동안 시공업체가 입은 직접적인 손실은 145억 원이라고 밝혀왔습니다. 현제 대부분의 기관과 교수님들은 질문 자체를 무시하여 답신조차 않는 상황이며 간혹 답신 하신 분들도 자신들이 인용한 잘못된 추정치를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정황에 대한 변론으로 일관하고 있기에 때로는 분이나 속을 끓이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제 관용구가 되어 버린 천성산 손실 문제에 대한 반론 보도문이 실린 후, 오히려 지인들로 부터 '이제와서 다 끝난 일을 들추어 바로잡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아야 했으며, 거대 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며 나홀로 법정에 서는 저를 염려하는 눈길을 모른채 회피 해야 했습니다. 지인들의 염려는 현실적이어서 신문 한 모퉁이에 게재된 반론문은 그동안 과장된 수치 때문에 천성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로인하여 천성산 문제가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지, 현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비약 시키고 있는지, 한 비구니가 겪은 아픔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고, 법정에 선 조선은 여전히 "도대체 무슨 보도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고, 반론문까지 게재했던 동아는 역설적으로 "합의보도문의 게재를 이유로 위와 같은 수치를 인용 할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있을 수 없는 간섭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라고 변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 날의 굶주림도 한 끼의 배부름으로 잊는다지요. 저는 돌연히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끝에 얼마전 제가 주고 받은 한통의 편지 글을 소개하여 드릴까합니다. 이 편지글은 얼마전까지 가장 예리하고 혹독하게 천성산 문제를 비판했던 서울대 박효종 교수님께서 보내 오신 답신 글로 이 이야기를 옮겨 놓음으로 제가 왜 모두가 끝난 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붙잡고 아직도 세상을 깃털처럼 떠돌고 있는지, 다시 법정에 서는 천성산 이야기를 통하여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며 우리가 아직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답을 함께 찾아 보고 싶습니다. 정정해야 할 것은 손실 수치가 아니라 치유해야 할 상처가 아직 우리 가슴과 이 땅에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인용하는 것을 허락하여주신 교수님의 편지글과 제가 보내드린 멜을 조심스레 옮기며 한동안 머뭇거렸던 초록의 공명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환경친화적 정부를 자처하며 도롱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한 여승의 '로맨티시즘'을 살리느라 천성산 공사를 지연시켜 2조5000억원의 국고손실을 초래했다. <2008 신동아2월호 / 한국경제 2008년 1월 서울대 박효종교수> 박효종 교수님께 보낸날짜 2008년 10월 03일 귀의 삼보 하옵고, 저는 지난 7년 동안 천성산 환경 보존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도롱뇽 소송의 대변인으로 법정에 섰던 지율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지난 1월 16일자 한국경제 신문과 신동아 등에 천성산, 도롱뇽 소송 관련 기사와 기고를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에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또한 천성산 대책위원장으로서 천성산 문제의 이해를 위한 간략한 자료를 첨부하여 드립니다. 자료를 검토하여 보시고 교수님께서 주장하신 부분과 잘못 이해 된 부분에 대하여 회신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 중에 있으며 공식적으로 발표 된 모든 문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를 준비하기 전, 천성산 문제에 대하여 먼저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천성산 대책위 지율합장 첨부 : 천성산 손실문제 정리 자료.hwp 지율스님께 보낸날짜 2008년 10월 04일 안녕하십니까.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의 박효종교수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님의 글월을 받아보고 마음에 깊히 느낀 바가 있어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2008년 1월16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천성산공사를 지연시켜 2조5천억원의 국고손실을 초래했다고 쓴바 있습니다. 또한 신동아등에도 그같은 내용의 수치를 사용했습니다.그런 금액은 당시 언론에서 보도 된 내용을 인용하여 쓴 것이었습니다. 이제 스님의 글과 첨부된 내용을 보고 시공업체가 밝힌 직접적 손실금액은 145억이라고 밝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점과 관련, 그동안 과장된 수치를 사용하여 쓴 것에 대하여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그동안 스님께서 받으셨을 심적 고통에 대하여 정말로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또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쓸 때 상기와 같은 내용을 적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번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받아들여주십시요. 감사합니다. 박효종 교수드림 지율입니다. 보낸날짜 2008년 10월 25일 망설임 속에서 글을 드립니다. 지난번 제가 교수님께 반론의 글을 부탁 드린 일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혹, 언론을 통해서 보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 문제로 조선, 동아와 나홀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송을 결코 싸움이나 투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천성산 손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실관계의 인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고가 어렵다면 지난번 교수님께서 주신 답신 메일 글을 제가 인용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율합장 지율스님! 보낸날짜 2008년 10월 25일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지율스님께 보내드린 글속에 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당연히 물론 저의 답글을 인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관계에 있어서 잘못된 점을 늦게서나마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박효종 교수드림 www.chorok.org
세상은 아름다운 곳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 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 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곽재구 시인의 「겨울의 춤」이란 시입니다. 아직 겨울이 오지도 않았고 첫눈 소식도 없는데 오늘 아침 불쑥 이 시가 생각난 것은 이 시의 밑에서 네 번째 행에서 두 번째 행까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그렇습니다. 저는 이 말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실망스럽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지배 권력의 천박한 인식을 접할 때마다 탄식을 하게 되지만 세상은 이런 질곡을 겪으며 오히려 더 바른 방향을 잡아나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화합과 공존과 나눔과 대화를 선택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사회가 보여주었던 일방주의 패권주의 예외주의가 한계에 와 있다는 걸 미국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탄 내는지, 신보수주의가 어떻게 자기가 가진 것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신념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미국 중심의 시장전체주의와 그것을 뒷받침 하던 논리들이 낡은 이념으로 전락해 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새 세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현 정부가 가고자 하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의 정책 방향은 부시 행정부가 걸어간 실패와 파탄을 뒤따라가는 길입니다. 앞에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뒤에 가던 수레는 멈추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 먼지처럼 훌훌 털어 내고 / 삐걱이는 창틀 가장 자리에 / 기다림의 새 못을"치기로 합니다. 세상은 역시 아름다운 곳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기로 합니다. 도종환/시인
떨어지는 법 오늘은 낙엽이 모두 떠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몸을 날립니다. 우수수 우수수 나무의 몸을 빠져 나와 땅에 내리는 낙엽을 보며 나는 그저 "아아아!" 하고 소리 칠 뿐입니다. 나뭇잎이 거의 다 빠져나간 은행나무 밑은 황금의 옷감을 바닥에 쫙 깔아 놓은 것 같습니다. 구릿빛과 고동색 점묘로 그려나가는 산의 능선 위에 가을햇살이 찬란하게 내립니다. 자연은 떨어져 내리고 있는 동안에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투자한 재화의 가격이 떨어지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추락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미국의 작가 필립시먼스는 어느 날 여섯 살짜리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균형을 잃고 고꾸라진 뒤 일어서지 못하는 채로 누워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육체의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는 육신을 지켜보며 필립시먼스는 낙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떨어지는 것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떨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내버리는가? 우리는 에고를 내버리고, 애써 쌓아올린 정체성과 평판과 소중한 자아를 내버린다. 야망을 내버리고, 탐욕을 내버리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이성을 내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열정 속으로, 공포 속으로, 터무니없는 기쁨 속으로 떨어진다. (......) 그리고 마침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하게 된다. 신성, 신비, 더 훌륭하고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떨어지지 않으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동안 에고와 탐욕을 버릴 수 있으면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도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떨어진다는 말(falling)이 지니고 있는 비유적 의미 속에는 추락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체면을 구기는 일(falling on one's face), 누군가에게 홀딱 반하는 일(falling for someone), 사랑에 빠지는 일(fall in love)도 다 fall로 표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문합니다. "우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모두 높은 곳에서 떨어져 깊은 곳을 향해 한창 하강하고 있는 중이다. (......) 우리가 신의 은총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은총과 '함께' 은총을 '향해서'도 추락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우리가 고통과 나약함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즐거움과 강력함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우리가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삶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낙엽은 가을햇빛 하나씩 달고 찬란하게 떨어져 내리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까? 도종환/시인
안네 프랑크의 일기 "다른 여자 아이들과 같은 식으로는 살지 않기로 결심했어.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다른 부인들처럼 살지도 않을 거야. 난 너무 멋있게 태어났거든. 그러니까 이런 위기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거야. 내겐 아직도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좋은 점들이 많아. 난 젊고, 강하고, 커다란 모험 속에서 살고 있어. 하루 종일 불평만 투덜대면서 살 수는 없지. 난 좋은 운을 타고났어. 난 성격도 좋지, 명랑하고 힘도 세. 매일매일 나는 내면에서 성장하고 있는 걸 느껴. 해방의 순간이 가까워 오고 있잖아? 자연은 아름답고 인간은 착하고, 그런데 왜 내가 절망 속에 빠져 있어야만 하지?" 싱싱한 힘이 느껴지는 이글은 안네 프랑크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쓴 글입니다. 나치의 학살을 피해 식품회사 창고에 비밀문을 만들어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지내며 쓴 일기입니다. 안네는 그때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안네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를 피해 몇 년씩 숨어 살며 느끼는 답답함과 괴로움을 "날개가 부러져 캄캄한 밤에 혼자 둥우리를 지키며 노래를 부르는 새 같은 심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한 분위기, 납같이 무겁고 괴로운 마음,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죽음 같은 고요함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두렵고 불안하고 답답한 생활 속에서도 안네는 자신을 향해 따뜻하게 속삭입니다. 자신에겐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좋은 점들이 많다는 것, 젊고, 강하고, 커다란 모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하루 종일 불평만 투덜대면서 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좋은 운을 타고났다고 말합니다. 거기다 성격도 좋고, 명랑하고 힘도 세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아이들과 같은 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위기 속에서도 웃으며 살 줄 아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절망을 이기려고 합니다. 안네의 이런 태도는 같은 또래의 소녀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용기와 감동을 줍니다. 오늘은 학생의 날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런 안네의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도종환/시인